뻔뻔? 하루살이!

6. 팥죽 앞에서,

by 하리

동지다. 동지는 일 년 24 절기 중에서 22번째로 오는 밤이 가장 긴 날 칭한다. 동지 이후로 낮이 점점 길어지니 태양의 부활을 의미하여 작은설이라 할 정도였단다. 그런 동지 때에 팥죽을 먹어야만 제대로 한 살을 더 먹는다 말은 어렸을 때도 종종 들었다. 그 동짓날은 어느 날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해와 달의 공존에 따라 변동이 조금씩 있다.

대부분 양력 11월 22일에서 하루 앞이거나 뒤가 된다는데 음력으로는 변동이 많아 11월 초순이면 애동지라 해서 팥죽 대신 팥떡을 해 먹기도 다.

어렸을 적엔 겨울 초입이면 연례행사처럼 먹던 그 팥죽을 결혼 전 한동안은 자취생활을 하다 보니 못 먹고 넘어갈 때가 많았다.

하지만 결혼한 뒤에는 해마다 동지가 되면 어머님께서 팥죽을 끓이셨다. 그럴 때면 나는 새알 수제비를 빚거나 팥물이 넘치지 않도록 젓는 게 내 일이었다. 어머님께서는 그 팥죽 국물을 들고 다니시면서 온 집 이구석 저구석에 조금씩 쏟고는 액막이를 하신다며 내게도 집 어느 한 곳도 놓치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어머님께서 한 낮이 되도록 아무런 말씀이 없으셔서 내려갔더니 부엌이 한산했다. 여든여섯이 되시도록 아직 선두 지휘를 하시고 싶을만치 마음은 앞서건만 지난번 김장 때 곤란을 겪으시고는 한 풀 꺾이셨나 보다. 그만 맏며느리인 나에게도 '끓일까! 말까?' 혹은 '네가 해볼래?라는 의논 한번 없이 포기하시고는 곧장 절로 가셨단다.

동작도 빠르지만 손이 큰 어머님께선 팥죽도 많이 끓이셨다. 어머님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도 대부분 어떤 일 앞에서건 본인 주장이 강했다.

나는 일도 어눌하지만 동작마저 느리니 지금껏 들일이나 집안일을 할 때 앞장서 본 적이 없다.

그런 이유는 아니었을 텐데도 이상하리만치 결혼 한 뒤에는 팥죽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막상 없어서 못 먹을 것 같자 그만 마음이 허전했다.



그런 미묘한 감정을 떠올리게 했지만 어렸을 때 기억나는 음식으로 단연 손꼽을 만한 것이 바로 팥죽이다. 나는 유약한 체질을 타고난 데다가 입성마저 까다로워서 열명이 넘는 식구 중에서도 음식 앞에서는 서열이 높아서 할아버지 다음이 내 차례였다.

동짓날이면 팥죽을 가마솥이 넘치도록 끓여서 자베기 여럿에다 보관을 했다. 팥죽 자베기를 광속에 넣어 두면 날이 추우니 표면이 얼곤 했기 때문에 맛이 변하지 않은 채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관된 팥죽을 하루 한 두 번씩 퍼내 와서 솥에다 넣고 데우면 밥물이 찰박하게 넘친 데다 부드럽기까지 해서 단맛이 더해 맛났었다.

그 팥죽 자배기의 바닥을 다 긁을 때까지 내 것은 남아 있었다. 그다음 어디 더 맛난 것이 없을까 하고 기다리는 사이에 설음식 준비가 시작되곤 했다.

옛 추억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때마침 어머님께서 절에서 받으셨다며 팥죽을 들고 오셨다.

간이나 새알 양이 적당해서 먹기 좋다 싶는데 예전 같으면 대면 대면하던 아이들마저 먹을만하다며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번번 어머님 곁에서 거들기만 했으면서도 속으로든 '간이 싱겁네, 농도가 안 맞네' 하면서 속으로 구시렁대던 나였다. 언제까지나 앞서서 호령하시고 이끄실 줄 알았던 어머님께서 하나 둘 포기하시는 모습에 슬그머니 미안함이 앞선다.

어머님 앞에서 뻔뻔하게 소리 내어 말씀드리지는 못했으나 앞으로는 더 건강해지도록 열심히 운동하고 노력해서 내년에는 내 손으로 직접 팥죽을 끓여 볼까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팦죽 앞에서 비록 초가집이었지만 한방에 옹기종기 앉아서 수저 달그락대며 응석 부리던 나를 보며 웃곤 하시던 내 어릴 적 풍경이 떠올렸다. 그 속에는 이제 기억만으로 남고 뵐 수 없는 분이 여럿 된다.

그러고 보면 오늘 하는 나의 작은 행위도 먼 후일에는 또 다른 추억이 되리라.

그러니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 주어지는 하루하루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것은 물론 소소하다 싶은 작은 행위의 순간들도 놓치지 않도록 의미를 부여하며 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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