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 하루살이!

9. 복권 같은 명절비

by 하리

설날은 마스크 끼고서도 윷 나와라 모 나와라 한바탕 흥 돋우고요.

한파가 몰아쳐서 춥거나 말거나 설 명절이 후다닥 지나갔다. 말이 '후다닥'이지 시어른께서 건재하셔서 우리 집 설은 코로나 시대에도 대충 넘어가지 않았다. 함께 모여서 세배랑 제사에다 윷놀이도 잠깐 했다.

가족수도 많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있어서 음식 양도 늘려야 다. 그래도 동서들과 함께 상 차리고 치우느라 힘들긴 했지만 무사히 넘어갔다. 무엇보다 올 설에는 큰 이변이 있었으니 친정까지 갔다 온 다음날 남편으로부터 명절비를 받은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특별 보너스를 받고 보니 그동안 아직도 그린벨트 같이 경계심이 묶여있어 미개발된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나 기억장치에 저장된 것을 리셋할 필요성을 느꼈다.


시부모님의 큰 아들인 남편은 환갑이 지난 지 몇 년 된 지금도 하루에 한두 번 모친과 상봉하지 않으면 입맛이 확 사라질 정도다. 혼자서도 바깥나들이하기 좋아하시는 아버님 대신 남편은 어머님께서 건강하실 때는 일을 하거나 쉴 때에도 거의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근래엔 어머님께서 연로하셔서 같이 일 할 짬은 별로 없으나 휴식 때면 거의 같이 지낸다. 그런데 모자간의 대화가 참 독특하다 할 것이다.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는 어머님 생각을 따르다가도 불교교리 얘기라면 번번 남편의 목소리가 점점 올라간다. 설득도 설교도 아닌 자기주장일 때가 더 많아서 소귀에 경 읽기 같지만 남편 생각은 언젠가는 콩나물시루처럼 어머님 마음의 키도 자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거듭 이야기한다.

둘째 아들인 큰 시동생도 거의 매주 시어른 댁을 들렀다 가는 게 생활이 된 지 오래다. 애초에 어머님과 오래 같이 지내면서 늦장가를 들었기에 사소한 일에도 티격태격하기가 일쑤다. 그렇더라도 어머님 호출이면 거절 못하고 달려오는 효자 아들 서열 두 번째다. 더구나 요즈음은 일 년 앞당겨 퇴직하고 보니 갈 곳이 없어 주중에도 수시로 오간다. 게다가 짝으로 만난 동서는 안팎이 다 정리 정돈되어야 마음이 평할만치 조용하고 차분해서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한번 스쳐 지나간 곳은 먼지 하나 없다. 한 마디로 일 있어도 오고 없어도 와서 쓰레기라도 치울만치 부지런하다. 하나 아쉽다면 뭐든 할 때마다 어떻게든 티를 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어떨 때는 모친인 어머님과도 언쟁을 하기에 형수라 해도 한 살 아래인 나로선 불편할 때도 종종 있었다. 이젠 그마저도 온 가족이 이력이 났다. 그렇거나 말거나 집안 정리 책임자임엔 틀림없다.


시동생 아래로는 큰 시누가 있다.

큰 시누는 정리정돈뿐 아니라 검소하고 야무져서 매사 철저한 성격이라 언제든 시어른께나 친정 식구들에게 물심양면 든든한 지원군이요, 응원자다. 마음에 맞는 짝을 만나느라 결혼이 좀 지체되어 가족 구성원이 단출한 것이 아쉽다. 친가에서는 살림 밑천이요, 시가에서는 맏며느리 버금갈 정도로 책임지며 사느라 직장에서의 고단함을 풀 짬이 별로 없을 정도다.

그다음 어머님께는 넷째 자녀지만 내게는 두 번째인 시동생은 한마디로 기계를 만지는 손재주가 남다르다. 지역에서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사장이요, 애법 벌이도 좋은 알토란 같은 실속파다. 일을 하다 보면 배고픈 줄 모르고 하게 되며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맺어야 손에서 놓는다. 그러다 보니 몸이 다른 사람에 비해 빨리 문제가 생기고 있긴 하다. 조용한 성격에다 한번 화가 나면 목소리는 더 낮아지는 대신 꼼꼼 따지기도 하니 후속타 감당이 안될까 봐 동서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가족의 평화를 위해 손 들고 말 때기 많다고 한다.


어머님의 다섯째 자녀로 둘째 딸인 작은 시누는 한마디로 약방의 감초같이 살아내고 있다. 여학교를 다닐 때는 들에 가고 없는 시어머니 대신 일찍 일어나서 밥하고 청소하고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고 한다. 하교 후에는 온 가족 빨래를 도맡아 했다 할 부지런하고 싹싹한 성격을 지녔다. 언제나 활기하고 명랑해서 어디서든 빛이 난다. 하여 시집에서는 맏며느리인데도 근래엔 매주 하루를 정해 놓고 퇴근길에 어머님 댁에 들러서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효녀 역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인 막내 시동생은 고만고만한 형들을 제치고 키가 제일 크고 인물도 좋은 편이요,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형성하는 편이다. 적절한 때에 좋은 짝을 만나서 결혼했으며 내외간에 뜻이 맞아 열심히 일하면서 가정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


이런 든든하고 당당하고 씩씩한 아들 딸들에 비해 처음으로 낯선 존재지만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맏 며느리요, 형수요, 올케인 나는 한마디로 키만 껑충하고 뭐하나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었다. 아니, 한 가지는 있다. 둘 다 늦은 만혼인 데다가 맏이이고 보니 손자녀 출생에 좀 민감할 수 있을 법했지만 결혼하고 한 달여 만에 태기가 있었고 연이어 아들 딸을 더 낳았으니 말이다.

그래서인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늘 주변이 어수선하며 출타가 많고 몸 관리도 제대로 못해서 병치례로 세월이 가고 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지금껏 별문제 없이 자라주더니 하나 둘 제 일 찾아 나서고 있다.

어쩌면 곱게 봐줄 건더기가 없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나 기대를 포기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으리라! 무엇보다 부지런함과 집중력을 큰 장점으로 지닌 어머님의 성향을 물려받았던 시동생과 시누들은 나의 대충 어슬렁대거나 무엇을 하건 전부를 걸지 않음이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살갑기를 하나, 잘못된 게 있다고 고칠 생각을 하나, 무슨 일을 할 때도 누군가가 와서 마무리할 때까지 미루어도 상관없던 성격을 못 견뎌했던 게 어쩜 당연했을 것 같다는 것도 늦은 이해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말들은 그들에게는 화풀이용의 속 시원할 재료였을지 모르나 내게는 한동안 삭여야 할 아픔이고 불편함이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할 가족이란 숙제 해결에 번번 애로사항이 많았다. 한마디로 그냥 볼 때마다 또다시 쏟아지는 태풍 비 같다 할 것이다.

이것 또한 부정적인 부분을 먼저 떠올리는 내 성격상의 문제이기도 했다. 근래에는 누구든 이전처럼 면전에다 쏟아 내거나 혹은 뒷전에서라도 소곤대는 소리가 별로 없다. 그런데도 표정이나 눈빛이나 말 한마디에 내 안의 나는 채 지우지 못하고 남아있는 상처가 살아난다. 그냥 아무 말 없는데도 제 스스로 다시 건드려서 흠집을 내곤 불안해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괜한 두려움과 열등감을 집어넣고 얼마 간 속을 끓이고 있음을 직감하면서 당황해할 때가 있다.

참말 어렵다. 생활인으로 당당하게 살아내지 못하고 있으나 어쩌면 나 스스로 키우는 내밀한 부정적인 요인이 아직 남아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는 많은 발전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아직 숙제 해결의 길은 멀고도 복잡하다 할 것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여름보다 몸무게가 빠지고 두 달 전 검진에서는 이전보다 못한 상태였지만 동서들과 함께 제사와 생신과 설 명절까지 무사히 치러낸 것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비록 복 짓는데 쓰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시집온 지 삼십여 년만에 남편으로부터 처음으로 명절비를 받았다. 그것도 오천 원 신권을 한 묶음이나 말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선 단 한 푼도 아끼며 내게도 그리 살기를 바라던 구두쇠지만 언제부턴가 남에게 건넬 때는 선뜻 지갑을 여는 남편의 씀씀이를 알기에 잘 써야지 싶다. 하여 이래저래 감사한 마음에 미사예물로 제일 먼저 썼다. 생활비와 별도로 남에게 쓸 돈이 따로 있다 생각하니 부자 같다.

하지만 마음과는 반대로 지금 난 명절 지난 지 며칠이나 되어도 기력이 쇠하니 어쩌니 하면서 문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대신 방 안에서 팔다리 흔드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어쩌면 앞으로도 여전히 별로 하는 것 없이도 뻔뻔하리만치 다가오는 하루하루 복지수는 올라갈 일만 남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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