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 하루살이!

살아 있어 행복해

by 하리

봄비 예보로 주말 산불예방 당직이 취소되었다며 아들이 집에 왔다.

큰딸 또한 직장 앞뒤 직원들의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가 되고 보니 그간 업무 비중이 늘어나 힘들었다고 쉬고 싶다며 집으로 왔다..

어머님께서는 얼마만의 외출이신지 모르겠다며 올라오는 동안 몇 번 쉬었다며 숨을 몰아쉬셨다고 하셨다. 그래도 힘겹게 밀고 온 밀차 안에는 잘 손질된 닭 한 마리와 며칠 전에 보내드린 나박 무김치 대신 시래기 삶은 거와 며칠이나 기다리며 찾던 유채 씨앗까지 야무지게 구하셔서 올라오셨다.

잡은 수탉은 지난해로 실제 퇴직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시동생이 닭장을 짓더니 중닭을 사다 놓고 키운 것을 잡은 것이었다.

때마침 봄비 덕에 아버님께서 동네 뒷산에서 자작나무 수액을 받아둔 게 있었다.

그 물에다 닭과 엄나무와 인삼을 넣고 삶았다.

닭이 어느 정도 삶겼다 싶을 때에 찹쌀을 넣고서 닭죽을 끓였더니 달짝지근하니 맛이 좋았다. 닭이 커다 보니 아이들과 먹고도 남아서 조금씩 싸갔다.


셀프 요양이란 명명하에 쉬다 보니 어디 시간에 얽매여가며 살지 않건만 그래도 나름 할 일은 많고 은근히 바쁘다.

봄 가뭄에 단비가 내리고 보니 그간 안간힘 쓰며 버티던 봄나물이 쑥쑥 올라오고 덩달아 온갖 풀들도 싹을 틔운다.

닭죽 먹은 힘으로 한바탕 호미 들고 잡풀과 씨름한 뒤에 이리저리 흙을 긁고는 꽃씨를 좀 뿌렸다. 딸아이 회사에서 남은 것이라고 들고 온 것이라 양이 애법 되었다. 집 주변에 골고루 뿌리고 보니 얼마나 예쁠지 기대가 크다. 그래도 한해살이인지라 날씨가 더울 땐 피어 있는 시간이 짧다고 하니 좀 오래 보려면 조금씩 나눠가며 뿌릴까 싶다. 꽃씨 뿌리느라 한바탕 움직이고 나니 등이 다 젖었다. 비록 땀은 나서 불편해도 뿌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벚꽃이 동네 입구에서부터 피고 있는 데다 벽화도 있으니 구경 오란 마을 홍보까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한껏 부푼다.


마음 깊은 곳에 닫혀있던 창까지 열고서 맞은 이 봄은 살아 숨 쉬는 순간순간들이 꽃같이 화사하고 설렌다.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조용조용 흘러가 하루하루가 마음에다 몸까지 치유가 될 것 같다.

낮엔 마당에서 거의 종일 라디오를 켜놓은 채 놀다가 걷다가 가끔 호미를 잡는 거로 소일하고 있다. 밤마저도 라디오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조금씩 한다.

비록 몸속은 이상세포가 자리 잡고 있으며 기타 의심되는 부분도 있어 추가 검진을 예약해 둔 상태요, 멀리서 가까이서 마음 아픈 일들이 종종 들려오지만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와 찬미가 절로 나오는 이 계절은 뻔뻔하게도 내겐 진정 꽃 같은 봄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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