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 하루살이!

11. 더 다급해

by 하리

신장암 추정 99퍼센트 이상으로 점점 자라고 있다고 해도 병원 처방을 따르지 않았으나 검진은 때가 되면 하곤 했다. 작년에 이어 남편이 소속된 조합에서 올해도 검진비 지원이 되었다.

셀프 요양 일 년 반 가까이된 중간 상태를 알아야 했다. 그렇게 예약된 날에 도착한 검진센터에서 거의 반년만에 복부와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연락이 왔다.

작년보다 더 나빠진 것은 갑상선에 있는 혹이 불량하니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신장는 이전과 크기가 비슷해도 신 사구체 여과율이 나아지고 있단다.

주말이 지나면 병원에다 신장과 갑상선의 정밀검사를 위해 화예약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월요일 채 눈도 뜨기 전에 연신 전화가 걸려온다. 개학을 해서 학교에 간 막내딸이었다. 온몸 근육이랑 목이 아파서 자가 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하니 두줄이 뜨면서 양성 일 것 같아 집으로 내려온다는 것이다.


평소 하던 기도나 스트레칭 대신에 허겁지겁한 것은 방 정리였다. 혼자 지낼 때 필요한 것은 챙겨 놓고 내 물건은 빼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코로나 발발 전에 집수리를 제안했을 때 남편은 아랫채를 새로 들일 작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뜻이 달라 한동안 옥신각신 하다 결정한 것이 위채는 삼십 년 가까이된 집이라 고쳐도 별 변화 없다고 출입문과 창문을 교체하는 거로 마무리되고 대신에 아랫채를 컨테이너 방으로 들이되 마루를 달아내고 화장실을 넣었었다.


그때 들인 독립된 공간이 코로나 시대에 유용하게 쓰일 줄 어이 알았을까?

여하튼 발생한 상황은 상황이니 대처가 중요했다. 학교서 출발하면서 보건소에 들러서 검사를 해놓고 기차를 탔다는데 문제는 읍내에서 집에 오는 거였다.

집에 차가 두대라도 부부 둘 다 코로나 미접종 자라 어찌하면 좋을지 난감했다. 다행히 아이들끼리 카톡을 하면서 결정하고는 택시 타고 왔다. 딸이 격리된 아랫채로 식사만 제공하면 되었다. 밥그릇도 비닐장갑을 끼고 사용하라 하고 다 먹은 뒤에는 직접 씻어내어 놓으면 삶아 쓰기로 만반의 대응을 했다.

대신 열이 나는지 간식은 먹을 만 한지 등의 궁금증은 전화로 통화했다.

그렇게 하루 밤낮이 지나갔다.

그런데 학교 근처 보건소에서 온 문자는 음성이란다.

몸은 점점 더 아프고 학교를 나와서 이래저래 불편한데 음성이면 앞으로 어쩌냐며 딸은 다시 온몸을 둘둘 감싸고 남편의 트럭 뒤 화물칸에 오른 채 지역 보건소에 검사하러 나갔다.


그제야 마당에서 쉴까 하고 컴퓨터도 내어놓고 마루에 앉아 있자니 아버님이 탄 전기오토바이가 집 앞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어디 볼일이 있으시나 했다. 그런 얼마쯤 되었을까? 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 내용인즉 어머님께서 마실 나가셨다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먼저 가 보라고 하셨다. 막 열었던 컴퓨터를 닫고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움직임보다 말씀이 더 바쁘신 어머님을 모시고 읍내로 나가면서 연신 물을 드시라, 혀를 굴려라, 이런저런 요구를 계속했다. 다행히 어머님께서는 듣고 따라 하시니 좀은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평소에 혈압이 높아 드시던 약을 끊은 지 좀 되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속이 답답해서 마루에 잠깐 누웠는데 언제 그랬는지 넘어지는 줄도 모르고 마당에 엎으려 있는 걸 동네 친구분께서 일어나게 하셨다는데 그사이 느낌도 없었건만 바지가 다 젖어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코피까지 났다니 뇌출혈인가! 혹은 뇌경색?

설마 하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는 중에 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대기자가 많아서 순서를 기다리자니 속이 타들어갔다.

상식적으로 뇌에 문제가 생기면 두 시간 내에 진단과 해결이 이뤄져야 한다는데 싶어 연신 진찰실을 기웃하며 간호사와 의사에게 요구했다

틈새 혈압을 재니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급한 환자라고 새치기 상담이 이뤄졌으며 곧장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보란 의사의 말을 따라 차를 몰았다.

긴박하게 상황은 전개되고 있건만 어쩐지 마음 깊은 곳은 외려 차분했다.

그래도 어머님 상태를 알아보고 싶어 차를 몰면서도 멀리 있는 의사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안 되었다. 번에는 한창 일하고 있는 아이들의 단체톡에다 한 손으로 운전하며 문자를 올고서 알아보라고 했다. 그런 뒤에야 가장 가까이 사는 동서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병원을 가는 내내 핸드폰을 바쁘게 만지며 도착한 응급실 이건만 어찌나 대처가 느긋한지 화가 날 지경이었다. 마침 코로나 확진자로 응급실에 오신 환자분 때문에 소독하느라 더 지체되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상담을 치고 뇌 MRI와 CT를 찍고 인지능력 상담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 사이에 내 몸도 걱정이라 병원 밖을 연신 오가며 걸었다. 그 후 다행히 큰 탈은 아닌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라는 감사 기도도 잠시였다. 휴게실에서 어머님께서 링거 달고 회복 중이신데 종일 조바심친 것은 간데없이 뻔뻔하게도 그만 배가 고팠다. 제야 막내가 오전에 잠깐 검사한 뒤 종일 아래채에 갇혀있다는 게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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