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부터 마당놀이하며 지낸 지 석 달 열흘쯤 지나자 또 다른 놀이터인 텃밭도 애법 테가 나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손목은 색상이 다른 경계 부분이 뚜렷해지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만나는 사람들마다 건강 걱정을 해주셨다. 그런 중에도 맨 얼굴로 그냥 마당에 나서곤 했으니 이젠 팔뿐 아니라 얼굴과 목도 마치 일부러 색칠이라도 한 듯했다. 그러나 마냥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반복적인 동작으로 인해 아주 조금씩 자신감이 붙은 걸까? 수년간 방치해둔 밭에도 한 번씩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풀을 죄다 처리하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아 대신 호미로 흙을 대충 긁고는 꽃씨를 아무렇게나 뿌려 두었었다
그 꽃씨가 올라오나 하고 틈틈 봤지만 긴 가뭄에 풀조차 간신히 버티는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마음이 동하기 시작할 무렵엔 집안 행사가 많아서 짬도 안 나고 힘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봤더니 그야말로 온통 기새 등등한 풀들로덮여있어무서운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사이에 들깨가 몇 올라오고 있다. 군데군데 뿌려놓은 꽃씨도 궁금해서 불쑥 손으로 풀을 움켜쥐었다. 마침 비가 잠깐 온 뒤여서인지 힘을 좀 썼더니 흙 뿌리가 꿈틀거렸다. 용기를 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그렇게 볼 때마다 속이 불편해질 즈음 엎드려서 괭이로 풀을 뽑기 시작했다. 보자기만 한 흙을 보는데 온몸이 흥건하도록 땀에 젖었다. 땀 때문에 눈이 따가워져서야 몸을 일으켰다. 겨우 보자기만 했지만 풀이 뽑려 나간 자리는 고맙고도 반가웠다. 아침저녁으로 틈만 나면 풀과 한바탕 힘겨루기를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나간 듯해도 어쩐지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온통 어지럽기만 하던 풀밭이텃밭으로 바뀌어가며 꽃과 들깨가 보이니 마음도 편안해져 갔다.
그간 풀과의 실랑이만큼이나 마음속 갈등과 불안과 미움이란 잡초와 싸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좀은 비워진 마음 자세가 된 것일까? 하도 나오지 않아서 다 포기하고 싶다고 뱉어낸 말 대신 손가락 사이에선 오기가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