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톺아봐1

꽃보다 오기

by 하리

지난봄부터 마당놀이하며 지낸 지 석 달 열흘쯤 지나자 또 다른 놀이터인 텃밭도 애법 테가 나기 시작했다.

사이에 손목은 색상이 다른 경계 부분이 뚜렷해지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본 만나는 사람들마다 건강 걱정을 해주셨다. 그런 중에도 맨 얼굴로 그냥 마당에 나서곤 했으니 이젠 팔뿐 아니라 얼굴과 목도 마치 일부러 색칠이라도 한 듯했다. 그러나 마냥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일 반복적인 동작으로 인해 아주 조금씩 자신감이 붙은 걸까? 수년간 방치해둔 밭에도 한 번씩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풀을 죄다 처리하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아 대신 호미로 흙을 대충 긁고는 꽃씨를 아무렇게나 뿌려 두었었다

그 꽃씨가 올라오나 하고 틈틈 봤지만 긴 가뭄에 풀조차 간신히 버티는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마음이 동하기 시작할 무렵엔 집안 행사가 많아서 짬도 안 나고 힘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봤더니 그야말로 온통 기새 등등한 풀들로 덮여있어 무서운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사이에 들깨가 몇 올라오고 있다. 군데군데 뿌려놓은 꽃씨도 궁금해서 불쑥 손으로 풀을 움켜쥐었다. 마침 비가 잠깐 온 뒤여서인지 힘을 좀 썼더니 흙 뿌리가 꿈틀거렸다. 용기를 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그렇게 볼 때마다 속이 불편해질 즈음 엎드려서 괭이로 풀을 뽑기 시작했다. 보자기만 한 흙을 보는데 온몸이 흥건하도록 땀에 젖었다. 땀 때문에 눈이 따가워져서야 몸을 일으켰다. 겨우 보자기만 했지만 풀이 뽑려 나간 자리는 고맙고도 반가웠다. 아침저녁으로 틈만 나면 풀과 한바탕 힘겨루기를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나간 듯해도 어쩐지 속이 시원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온통 어지럽기만 하던 풀밭이 텃밭으로 바뀌어가며 꽃과 들깨가 보이니 마음도 편안해져 갔다.


그간 풀과의 실랑이만큼이나 마음속 갈등과 불안과 미움이란 잡초와 싸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좀은 비워진 마음 자세가 된 것일까? 하도 나오지 않아서 다 포기하고 싶다고 뱉어낸 말 대신 손가락 사이에선 오기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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