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놀이터

2. 소꿉동무 대신 아버지

by 하리

'아부지, ' 하고 입만 떼면 그날은 또 다른 놀잇감이 필요하다는 나만의 표시였어요.

스물다섯에 각시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아버지는 사흘이 멀다 하고 처갓집 나들이를 즐겼답니다. 하긴 집에는 장성한 동생들이 여럿 있어서 농사일을 애법 거들고 있었고요. 이웃마을까지 소문이 자자한 할아버지의 농사짓는 실력 앞에 명함도 못 내밀 손재간인 데다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으니 어찌 농사일이 눈에 들어왔겠어요?

아버지는 첫 결혼에서 얻은 아내를 잃었어요. 그 사이에 난 아들마저 하늘나라로 보냈고요.

그다음 해에 나를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할아버지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서 또다시 결혼을 했기 때문이랍니다.

나는 입만 뾰롱하게 튀어나오고 새침데기였는데요. 그런데도 어찌나 말이 없었던지 다섯 살이 되도록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아 벙어리인 줄 알았데요. 하지만 그런 나를 아버지께선 아주 귀하게 여겼답니다.

그렇게 귀한 딸인 제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아부지' 였으니 얼마나 예뻤을까요?

말은 없어도 볼우물에다 손가락을 쏙 넣질 않나, 걸음마를 떼자마자 닭을 따라다니며 갓 낳은 달걀을 줍다가 종종 깨뜨리곤 했었어요.

이후 남동생이 셋이나 줄줄이 태어났지만 언제까지나 달걀은 내 달걀이었어요.

고 따끈한 달걀 한쪽에다 구멍을 내고 바른쪽으로 후루룩 들이마시면 그 맛이 정말 기가 막혔지요.

그런 제가 '아부지'라고 불렀으니 아버지는 제게 다른 놀잇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챘어요.

가을바람이 불자 아버지는 누런 벼도 안 보이고 오로지 나와 무엇을 하고 놀까 가 제일 큰 고민입니다.

'옳지, 감을 따 먹어야겠군!, 그런데 장대뿐이니 봉지를 만들어서 매달면 감 따기 좋을 거야'

할머니께서 밤새 길쌈하며 짠 삼베를 쓰윽 잘랐어요. 그리고 옥화네 집 뒤 대밭으로 가서 긴 대나무를 베어왔지요.

생전 처음이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죠. 가위로 삼배를 자르고 바늘로 꿰매서 커다란 주머니를 만들었어요. 그다음 장대 끝에다 굵은 철사로 동그랗게 만들어서 메달고는 삼베천 주머니를 달았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른이 쓸 것도 만들었지요. 하지만 벼를 베고 올 할아버지 눈에 띄면 안 되니 얼른 숨겨야 하지만요.

가을 놀이라 하면 콩서리도 좋고 타작마당에서 볏단 쌓기 놀이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놀이 중의 놀이는 연날리기가 아니겠어요?

해마다 늦가을부터 이듬해 정월대보름 때까지 만들어서 날린 연만도 수십 개는 될 거예요.

그렇게 내 아버지는 해를 거듭할수록 나를 위한 놀잇감 준비로 바빴어요. 오로지 제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만들고 또 만들어서 같이 놀아주다 보니 어느새 딸은 소녀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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