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서 골, 그곳은 동네를 한참 벗어나야 도착할 수 있을만치 집에서 제일 멀었던 논이었습니다.
그 논으로 온 식구들이 나서는 날은 모내기가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했어요.
농서 골*은 동네 사람들이 지칭하길 농수바였습니다.
"야야, 태희야, 자야 데리고 가 거래 이?"
태희는 시집가기 전에 부른 고모 이름입니다.
아직 젖먹이인 동생을 업은 엄마는 머리에다 점심밥 소쿠리를 이고서 가야 했어요.
소쿠리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콩장에서 새참으로 먹을 감자가 가득 들어 있었지요.
물론 찌그러진 주전자에 이른 아침 거른 막걸리가 있었겠지요.
고모 등에 업혀서 도착한 농서 골은 논이 참 넓었어요. 집만 다닥다닥 붙은 동네와는 달리 언덕 아래 커다란 기와집이 한 채 있을 뿐, 마주 보이는 언덕에는 봉긋한 무덤이 어린 내 눈에도 참 잘 보였어요.
농서 골은 천수답은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니 섣불리 덤비는 사람이 없어 장골인 할아버지께서 농사를 짓게 된 것이었어요.
소를 모는 할아버지 목소리와 소 방울 소리에다 이산 저산에서 뻐꾸기와 개구리들까지 합세해서 조용한 것은 아니지만 심심해지기 시작했아요.
저만치서 할머니와 엄마와 고모는 모를 심기 시작하고 아버진 다른 논에서 할아버지 뒤를 따라다니며 논바닥을 고르고 있었어요.
동생은 밥 소쿠리 옆에서 자고 있고요. 모두들 일 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나는 아장아장 논둑을 걸었지요.
배가 고파지자 소쿠리 속에서 감자를 꺼내 먹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목이 말라서 누런 주전자 주둥이에다 입을 가져다 댔어요. 하지만 어찌나 무거운지 꿈쩍도 않네요. 어찌 요리조리 낑낑대다 그만 주둥이로 막걸리가 쏟아지는 줄도 몰랐어요. 그저 남은 것을 쫄쫄 빨라먹다가 잠이 들었지요.
그것이 제가 세상에 태어나서 한 행동으로 여직 머리에 남아있는 첫 기억입니다.
그때가 4살 되던 봄이란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요.
* 농서 골 : 경북 성주 옥련리 소재 - 성주 이 씨의 시조 및 중시조 농서군 묘소와 재실이 있는 동네를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