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금융치료 07화

[금융치료7] 스타킹으로 치유

결핍은 사소한 것에서 생긴다


내가 걸스카우트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스타킹 때문이었다.


얻어 입은 걸스카우트 단복에 벨트가 없어 허리가 펄렁한 것은 얼마든지 괜찮았다.


아이들이 겉도는 나의 걸스카우스 복장을 보고, 태극기라고 놀리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감지덕지였다. 걸스카우스 뱃지 값도 겨우겨우 내야하는 처지에 단복을 얻어서


입었으니 흡족했다.


담당선생님께 징징거려서 명분이 뚜렷한 것은 모두 양해를 구할 수 있었다.


단복을 얻어 걸 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런데 하얀 스타킹을 신어야 하는 규정을 지킬 수 없다고 선생님께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너무도 사소한 규정이라는 사실을 6학년이면 충분히 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하얀 스타킹을 사달라고 조를 수는 없었다.


마침 동생이 벗어놓은 하얀 스타킹을 입었다.


4살이나 어린 동생의 스타킹은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계속 미끄러져 내렸다.


억지로 늘려서 입은 스타킹은 급기야 속옷까지 함께 끌고 흘러내렸다.


작은 스타킹은 가난처럼 불편했다.


몸에 맞지 않는 스타킹은 가난처럼 쪽팔렸다.


가난은 몸에 맞지 않아 작아서 쪼이는 스타킹처럼 사람을 꼼짝하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았다.


어린 아이에게 가난은 온몸을 조이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게 옥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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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인 나.


6학년은 충분히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나이다.


나는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학교 화장실에 가서 스타킹을 조용히 벗었다.


결핍은 푸세식 화장실에 득실거리는 구더기처럼 징그럽고 역겨웠다.


그날 화장실에서 토했는데 구더기가 더러워 토했는지, 가난이 더러워 토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 길로 걸스카우스를 그만두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걸스카우스는 너무도 불편했다.

돈이 한푼이라도 들어가는 일은 너무도 무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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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타킹을 내 마음껏 살 수 있는 부자?가 되었다.


다리도 짧으면서 항상 가장 사이즈가 긴~~~ 인 스타킹을 박스로 사둔다.


요즘의 봄날에 넉넉한 스타킹을 신고 꽃원피스를 입으면 기분이 날아간다.


해년마다 사이즈가 넉넉한 스타킹을 박스로 살 때면


나의 유년의 가난이 치유된다.



몸을 조이지 않는 넉넉한 스타킹의 감촉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결핍은 유년기에 생긴 흔적이다.


무엇인가 늘 가지고 싶고


늘 허기져서 무엇을 먹고 싶을 때마다


유년기의 스타킹을 생각한다.


조르고, 조이고, 흘러내렸던 몸에 맞지 않는 스타킹!


징그럽고 역겨운 스타킹!


어쩌면 결핍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너무 사소해서 말로 표현도 할 수 없는 쪼잔스러운 것들이

결핍으로 잔재한다.


그 사소한 것을 넉넉하게 채워서 늘 몸을 조이고 마음을 조였던 결핍에서 벗어나볼까.

나는 스타킹 한 박스면 충분하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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