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엔 우리가 함께 고른 마음이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앞두자 마음이 붕 떴다.
여느 이삿날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조금 오래 살 생각이었다.
아이도 컸고, 나도 이제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벽지 샘플을 뒤적이며 설레고 있었다.
남편은 계약서를 조용히 읽고 있었고.
“이 벽지 너무 예쁘지 않아?”
“응, 예뻐. 근데 이거 하나만 넣자.”
남편은 (말하지 않으면 절대 모를) 변호사다.
늘 수더분하고, 낯가림이 심하고, 말도 적다.
커피숍에선 늘 내 뒤에 서고,
택배아저씨 전화가 오면 내 귀에 수화기를 갖다 대는 사람.
그저 말없이 웃으며 무엇이든 괜찮다고 말하는 그는.. 변호사다.
그런 남편이 말없이 계약서 한 귀퉁이에
볼펜으로 조심스레 적은 문장.
‘계약된 자재 외에는 시공 전 소비자의 서면 동의를 받는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이런 거 적으면… 괜히 불편해하지 않을까?”
남편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나중에 우리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하려는 거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우리를 지켜주는 문장을
내 대신 누군가 써준다는 건
꽤 든든한 일이었다.
며칠 뒤,
가장 설레는 일정이 찾아왔다.
아이와 함께 벽지와 몰딩을 고르러 가는 날.
아이 손에 들린 샘플북은
말 그대로 '색감의 우주' 같았다.
작은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세상이 한 장 한 장 새롭게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엄마, 이거 완전 나 같지 않아?”
“이건 밤에 불 끄면 별빛궁전 같을 것 같아!”
아이의 말은 하나하나 소설 같았고,
나는 그 말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고른 건,
반짝이는 크림색 바탕에 반짝이는 별빛벽지와
나무색 몰딩이었다.
아이의 손끝에서 고른 색이
우리 집 안에 차곡차곡 채워지는 순간.
그 날의 설렘은,
이 집이 진짜 우리 집이 되어가는 첫걸음이었다.
공사가 한창일 무렵,
업체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객님, 기존 벽지가 품절이라 다른 걸로 바꿔야 해서요.
근데 이건 원래보다 조금 더 비싸거든요…”
머뭇거리는 내 옆에서,
남편은 조용히 전화를 바꿔들었다.
“저.. 죄송하지만 사장님, 그건 저희가 동의하지 않은 자재인데요.
계약서에 특약 있으니,
동급 자재로 교체하시고 비용은 조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업체 쪽은 한 박자 쉬더니, “네,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왠일~ 나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장난스러운 얼굴과 함께 엄지를 치켜들었다.
쑥쓰러워 하는 남편.
그가 써둔 한 문장이
우리 가족을 얼마나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는지를
매일 새로이 체감했다.
나중에 계산서를 받아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자잘한 자재 변경, 추가 요청, 업체 측 실수까지 포함해
우리가 아낀 비용은 300만원 가량이었다.
이사한 후 어느 날 밤,
아이 방을 슬쩍 열어보았다.
은은한 조명 아래,
벽지가 정말 별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의 방,
남편이 지킨 계약서,
그리고 내가 고른 커튼이 함께 있는 이 공간.
어쩌면 ‘집’이라는 건,
우리가 함께 고른 마음이 쌓여 만든 구조물 아닐까.
그래. 이 집엔 우리가 함께 고른 마음이 있다.
고마워 남편.
오늘의 상황: “인테리어 계약서에 특약, 꼭 넣어야 할까요?”
“괜히 업체가 불편해하진 않을까?”
“이런 말까지 적어야 하나… 너무 예민하게 보이지 않을까?”
사실 저도 그런 생각에
특약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조금 주춤했어요.
하지만 이번엔 남편이 조용히 적어준 한 문장이
우리 가족의 시간과 마음을 지켜줬습니다.
“계약된 자재 외에는 시공 전 소비자의 서면 동의를 받는다.”
이 문장 하나로
- 업체의 임의 자재 변경 방지
- 동의 없는 추가 비용 요구 차단
- 예상치 못한 오해나 분쟁 예방
인테리어 업체는 진행 중 자재 변경을 자연스럽게 제안하는 경우가 많아요.
“더 좋은 거예요~”라는 말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추가 비용이 청구되거나, 내가 원하지 않은 자재가 시공될 수 있어요.
특약은 ‘예민한 요구’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걸 끝까지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합의’입니다.
특약은 단호하게, 그러나 정중하게 적는 것이 포인트예요.
계약서에 손글씨로 직접 써도 법적 효력 있습니다.
구두 약속은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합니다.
시공 전 자재 실물 or 사진 확인도 요청해 두세요
좋은 집은 예쁜 벽지로만 만들어지지 않아요.
때로는 말없이 써둔 문장 하나가,
내 선택을 끝까지 지켜주는 작은 보호막이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