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야라인(siljaline)*
바람 불고 하늘 청명한 가을날
문득 핀란드 어느 항구에 들러
크루즈 여객선을 타고 싶네.
올림피아 터미널을 떠난 커다란 여객선은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리.
20층 아파트 높이의 선상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상어 물고기 같은 핀란드의 경비정이 실야라인을 뒤따르겠지.
육중한 선체는 넉넉히 받쳐주는 바다의 부력으로 스웨덴 스톡홀름 항구를 향해
전진해 나아가리.
바닷길 옆 작은 섬마다 하얀 펜션들
저마다의 사연을 남기며 사람들이 살아가리.
그리움이란 것은 하얀 포말처럼 솟아올랐다가 부서져 가는 것
낯선 발트해 위에서 북유럽의 풍광을 보며
상념에 젖어보리.
실야라인 여객선 뱃머리에서
빙하에 부딪혀 침몰해 갔던 타이태닉이나
맹골수도 바다 위에서 심연으로 빠져들어 간
세월호도 떠오르겠지.
인생이란 깊은 수로 위를 떠가는 배처럼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가끔은 곁눈질하며 발걸음을 헛디디기도 하지만
항구를 향해 달려가는 나그네라네.
그곳엔 나를 기다려줄 사람 없어도
이 길 멈추지 않고 가보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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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야라인(siljaline)-핀란드 헬싱키에서 스웨텐 스톡홀름항까지 운행하는 크루즈 여객선
버스를 기다리며
수요일 아침 신갈 고속버스정류장에서
안동 연수 가는 버스를 기다리네.
가을 아침 햇살이 바삐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 유리창에 튕겨 빛나고
어딘가를 향해 떠나갈 관광버스를 기다리는 여행자들
나는 유리창 안 긴 의자에 앉아
도종환 시인의 시집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를 읽고 있네.
하나둘씩 여행객들은 버스를 타고 떠나가고
나 홀로 버스를 기다리며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의 거친 소음을 듣네.
인생이란 어차피 간이역이나 정류장에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것
물질이나 명예를 손에 쥐려고 아등바등하는 인간들
놓지 않으려는 자와 끌어내리려 악을 쓰는 자
자신의 차선만 정직하게 타고 가면 될 것을
남의 차선까지 심지어 전용차선까지 위반하는 자들
남의 집에 들어가 11시간이나 수색*하며 자장면을 시켜 먹은
2019년 9월 대한민국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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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27일 검찰은 법무부장관인 조국 자택을 압수 수색을 했다.
고구마
추운 겨울을 무사히 넘긴 어미 고구마
몸에선 수많은 새순이 자라나고
줄기는 어느 날 밭으로 간다.
뿌리는 깊이깊이 수분을 찾아 번져가며
6월 가뭄 힘겹게 버티니
어느새 무성하게 번져가는 줄기와 잎들
비가 오고 햇빛이 빛나는 날들이 지나자
땅속에서는 씨알들이 자라
든든한 믿음의 열매로 자라났네.
늦가을 수확의 시간
농부의 손에 올라오는 고구마들
혼자만 자라 비대해진 고구마
잎과 줄기만 무성해 잔뿌리만 무성해진 고구마
여러 형제 사이좋게 튼실하게 자란 고구마
우리 삶의 모습이었구나.
너는 어떤 지금 고구마로 살아가고 있느냐!
해바라기
뜨거운 햇살 이겨내고 쑥쑥 자라
수줍게 얼굴을 드러낸 사춘기 소녀
혼자가 아니라 무더기로 피기에 더 반가운 오늘
까만 주근깨 가득한 날까지 그 자리에서 태양과 맞서보자
추억
어린 시절 하굣길
군것질거리도 없어 허전한 뱃속에
아이들은 가을 텃밭에서 자라는 개똥참외나
까마중 봉지 땡꼴을 찾아 따 먹었다.
노랗게 익은 개똥참외나
까만 까마중
봉지 속에 숨어있는 땡꼴까지
입 안에 넣으면 퍼지는 시큼하고 달콤한 맛
그 맛을 보며 허기를 달래고
넘어오던 고갯길
혹시나 서울 간 삼촌 과자봉지 들고
오지 않을까 바라보던 신작로
이제는 희미한 기억 속에
가물가물 사라지는 추억으로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