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안면도 출생으로 공주고, 공주교대,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했고, 이심훈, 안태영, 유병국, 심장근, 김희숙, 정혜실, 유훈근 등과 1986년부터 〈터〉 시문학동인회를 결성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3집까지 발간, 199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시 「누군가 그리우면」이 당선하여 등단하였다. 1994년 어린이를 위한 신나는 논술독서여행 『동시랑나랑』을 공동저술 했으며, 1995년 시집 『시인과 어머니』, 2017년 제2시집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한 방향만 바라보고 있다』, 2019년 제3시집 『사라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2020년 전자책 제4시집 『바람의 언덕』을 출간했고, 허균문학상(1995), 한반도문학상(2017), 성호문학상 대상(2019)을 수상하였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교원문학회 회원이고, 한반도문인협회 회장, 한중문예콘텐츠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경기도안산교육지원청에서 다문화 장학사로 근무하였으며, 2013년부터 안산창촌초 교감을 거쳐 2016년 안산 본오초등학교 교장, 2020년 부천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2021년 화성오산교육지원청 미래국 장학관을 거쳐 2023년 현재 화성시 동탄 반석초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신수연申琇然
sooyuni@dreamwiz.com
동화작가, 체육학(발레)박사.
동국대 사범대 및 동덕여대대학원 박사,
[문예운동] 장편동화 당선(2015년)
영국 SOAS 대학 영어연수, 중국 북경대 중국어연수
(사)한중문예콘텐츠협회 이사, 한반도문학 회원,
신한대 겸임교수, 손재현 발레단 등에서 창작공연 등 다수
저서; 『발레를 재미있게 보기』(아시아예술출판사) 등이 있다.
* 목차
P.4/ 1. 원곡동 다문화거리
P.14/ 2. 한국 속의 외국
P.28/ 3. 시나나 남매의 고통
P.41/ 4. 시나나 가족의 잠적
P.53/ 5. 전국초등학교 축구시합
* 개요
이 동화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어린이 이야기입니다. ‘시나나 라오스 남매’는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 마을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한국도 이제 약 2백만 외국인들이 들어와 우리 이웃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수도권 최대 다문화 특구 원곡동에는 많은 어린이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 동화책과 같이 우리 어린이들이 다문화 어린이들과 행복하게 살도록 따듯하게 손잡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유엔 어린이헌장과 같이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계 속의 한국 어린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한국 속의 외국
두경이와 친구들은 새날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학교 주변의 작은 공원에도 천사 같은 봄꽃들이 두 손을 번쩍 들고 두경이 일행을 반겨주었습니다. 근처의 원곡고등학교는 현수와 두경이 엄마 그리고 외삼촌인 민근이 아빠가 어린 시절 다니던 모교이기도 합니다.
세 가정 어린이의 부모님들은 모두 한 가족 남매들입니다. 부모님들이 같이 나들명거리며 다니던 원곡고등학교 거리를 이제는 현수와 두경이, 왕짱구가 또 걷게 되었습니다. 모두 안산이 고향입니다. 감격적입니다.
“엉, 뚜껑이양? 한창 기다려 어엉는디?”
“왜 벌써 나와 있어? 내가 너희 집으로 바로 간다고 했잖아?”
“앙이야, 방가요.”
얼굴이 까무잡잡한 어린이가 서툰 한국어로 반겼습니다. ‘두경’이 발음이 잘 안되어 ‘뚜껑’이라고 해서 모두 한바탕 웃었습니다. 두경이도 뚜껑은 항상 머리 위에 있는 것이니까, 리더이고 지도자라며 사슴같이 목을 길게 빼주어서 더 웃겼습니다.
‘시나나’ Cienana는 두경이가 새날유치원에서 자원봉사 활동하던 ‘라오라오’라는 꼬맹이의 언니입니다. 유치원이 끝날 때쯤이면 그 언니가 늘 동생 라오라오를 데리러 와서 알게 된 것입니다. 시나나의 엄마는 근처의 반월공단 공장에 나간답니다. 자정이 넘어야 집에 돌아오시기 때문에 라오라오를 보살펴 주는 것은 시나나 몫입니다.
라오스어린이 생일 잔치
시나나는 어린 여동생 라오라오 손을 꼬옥 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맹꽁이와 같이 생긴 꼬맹이도 두경이를 보자 얼른 달려와 품에 안겼습니다. 두경이는 얼른 안아서 라오라오를 어깨에 무동을 태워 주었습니다. 좁고 냄새나는 골목길을 몇 개 돌아서 원곡 연립주택 5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가파른 5층까지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라오라오가 너무 무거워 현수가 대신 무동 태우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5층이 끝인 줄 알았는데 5층 위 조그만 문으로 또 들어갔습니다.
옥상에 또 옥탑방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 옥탑방은 처음이어서 신기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좁은 골목길이지만 아침 햇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라오라오가 옥탑방 찌그러진 합판 문을 확 밀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또 하나의 까무잡잡한 소년이 해바라기같이 환한 웃음으로 두 팔을 벌리며 맞이해 주었습니다. 부엌이자 단칸방에서 곰팡이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어서 옹세용, 반가습니당! 시나나 옷빵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영어로 인사를 덧붙였습니다.
“하우 두유두! 아이 엠 ‘짬룽’ Chabrom”
“오케이! 아이 엠 권두경! 베리베리 나이스!”
두경이, 현수, 왕짱구 등 차례대로 악수하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오빠를 ‘옷 빠는 방인지’ ‘옷빵’이라고 해서 또 한바탕 폭소가 터졌습니다. 피부 빛깔만 약간 다를 뿐 모두 같은 세계인 어린이들입니다. 특히 아시아인들은 대개 달걀형 얼굴에 까만 눈동자, 까만 머리가 비슷해서 유럽인들과 달리 분명히 구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가까이 친척 같은 동질감도 있습니다.
라오스 형제
시나나는 동화에 나오는 ‘신데렐라’ 같이 깜찍한 공주 같아서 학교에서 인기가 많답니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한국의 ‘콩쥐팥쥐’ 이야기와 비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어요. 시나나가 그 한국 영화도 보았는데 아주 감동적이었답니다.
“내가 더욱 놀란 것은 우리 반에 베트남 친구가 있는데 그 나라 5학년 국어책에도 콩쥐팥쥐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해.”
왕짱구도 한 마디 끼어들었습니다. 아시아 각 나라 전설과 민화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신기한 게 많아요. 그래서 예전에 담임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국과 라오스, 베트남과 같은 나라에서 콩쥐팥쥐 이야기가 왜 비슷한가요?”
“아, 그 이야기 원형은 원래 인도의 히말라야 고원에 신데렐라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해지게 된 거야, 동남아시아 쪽으로 흘러가 ‘콩쥐팥쥐’가 되고 또 유럽 쪽으로 흘러가 ‘왕자와 유리구두’ 이야기로 변형된 것이란다.”
“아, 오랜 옛날부터 전해진 이야기이네요.”
“이렇게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이곳 원곡동에 모이다 보니 어쩐지 친척같이 같이 느껴지기도 하네.”
“우리 동네 라오스, 베트남, 몽골, 파키스탄 친구들이 주말이면 새날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을 많이 해.”
“아, 그래? 그럼 다음 주에는 새날초등학교에서 축구 시합 한번 해볼까?”
“그거 아주 좋은 제안이네, 내가 우리 반 친구들과 의논한 뒤 짬룽에게 연락해 줄게.”
현수와 짬룽 그리고 왕짱구 남자 친구들은 월드컵 축구 등 이야기에 빠졌습니다.
“현수야! 너는 축구도 맨날 헛발질하면서 무슨 축구 시합이냐?”
두경이가 끼어들어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니까, 축구부를 부르지 말고 우리끼리 하자는 거야, 하하….”
유년 축구 꿈
두경이는 부모님들이 마련해준 김밥과 김치 등을 펼쳐 놓았습니다. 여기에 떡볶이와 라면을 추가해 보자며 두경이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었습니다. 라오라오는 한쪽 구석에서 김밥을 먹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때 시나나가 가만히 다가와 말했습니다.
“두경이 언니, 나는 요즘 세상이 싫어졌어!”
“응? 시나나 지금 너 무슨 소리야?”
두경이는 가스레인지를 끄고 시나나 손목을 끌고 옥탑방 밖으로 급히 나왔습니다. 나지막한 담에 기대어 시나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래? 너 아직도 따돌림당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라오스 할머니 댁으로 그냥 보내달라고 해도 엄마는 비행기표 살 돈이 없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해.”
시나나의 눈물방울이 두경이의 손등에 툭툭! 떨어졌습니다. 새날초등학교 아이들이 시나나를 지난달부터 따돌린 것입니다. 비슷한 외국인 아이들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선녀 같은 시나나를 따돌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빠도 왕따 당하고 있니?”
“짬룽 오빠도 말은 안 하지만 탱크 같이 씩씩해서 잘 참아내고 있어.”
“지난주 금요일에는 우리 반 아이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고, 물감통을 내 머리에 쏟아붓고 했어.”
“그리고 어제는 유치원에서 라오라오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때 동네 애들이 막대기로 막 오빠를 때리는 거야, 오빠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도망가는데도 계속 따라다니며 돌멩이를 던지기도 했어.”
“나는 이제 한국이 싫어졌어!”
그때 시나나의 코에서 붉은 코피가 터져 흘러내렸습니다. 두경이가 집안으로 달려가 휴지통을 찾았습니다. 두루마리 화장지로 시나나의 코와 얼굴을 닦아주었습니다.
“친구들이 왜 집단으로 우리 남매를 놀려대고 따돌리는지 모르겠어?”
단지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따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불쌍하지만 두경이로서는 어찌해볼 방안이 없었습니다.
“야, 너희들. 라면 안 먹고 뭐 해? 빨리 식기 전에 들어와.”
현수가 불렀습니다. 시나나가 휴지로 얼굴과 코를 얼른 닦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 라면과 떡볶이 등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김밥은 이미 절반이나 없어졌습니다. 라오라오가 혼자서 절반을 먹은 것입니다.
이제 6살짜리 어린애가 언니의 두 배 분량을 먹어 치운 것입니다. 얼마나 평소에 배가 고팠으면 멧돼지같이 먹어대었을까…?, 그리고 라오라오는 지금 한쪽 구석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저거 KBS TV ‘창’ 프로그램 아냐?”
“맞아, 초등학교 왕따 문제로 지금 학부모님들이 공포야”
현수가 TV 화면을 가리켰습니다. 빗금이 흘러내리는 작고 낡은 화면에는 초등학교 남학생들이 삥 둘러섰습니다. 그 포위 속에 두 명의 여학생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현수가 짬룽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화면을 끌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TV와는 관계없이 월드컵 축구 얘기로 떠들던 짬룽은 방금 밖에서 들어온 누이동생의 젖은 눈물을 눈치채었습니다. 갑자기 입술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나는 끝까지 참아낼 거야!”
“갑자기 무슨 말이야, 뭘 참겠다는 거야?”
왕짱구가 의아하게 물었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나를 괴롭혀도 나는 끝까지 견딜 거야,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할 거야!”
시나나가 오빠에게 달려가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나는 졸업하면 내 고향 루앙 프라방에 가서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무역 사업을 할 거야, 그래서 성공하면 우리 부모님도 라오스로 모셔갈 거야.”
“짬룽아!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은 나쁜 친구들이야, 우리 같은 좋은 친구들도 또 있잖아?”
“많은 한국 친구들은 착하고 친절해.”
“맞아, 우리가 있잖아?”
“여기 두경이, 현수, 왕짱구도 있고, 다음 주에 새날초등학교에서 축구 시합도 하면 더 많은 새 친구들이 생길 거야”
“오빠 말이 맞아, 두경이 언니가 있어서 그나마 우리 남매들이 버티는 거야.”
시나나가 눈물을 씻고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결심한 듯 활짝 웃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메콩강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야. 훗날 우리가 너희들을 초대하면 메콩강 물고기 매운탕으로 대접할 거야.”
환하게 웃는 시나나의 얼굴이 눈물과 얼룩져 더욱 재미있게 보였습니다. 모두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그러자 짬룽은 BTS 춤까지 추며 웃겼습니다. 그 소동에 잠에서 깨어난 라오라오도 자기 오빠를 따라 무조건 춤을 추었습니다.
“야, 이왕 신나게 다 같이 춤을 추며 기분전환 해보자고.”
왕짱구도 큰 짱구 머리통을 흔들었습니다.
“여긴 방이 너무 좁아, 넓은 사막으로 가자.”
그들은 옥탑방 밖으로 나와 옥상에서 마음껏 흔들었습니다. 짬룽이 핸드폰을 들고나와 BTS 배경음악을 틀었습니다.
메콩강은 남지나 반도를 관통하는 매우 큰 강이지만 라오스까지 연결이 안 되었습니다. 다만 크고 작은 에메랄드빛 호수가 많았습니다. 메콩강은 길고 긴 강으로 동남아시아에선 어머니 젖줄 같은 생명의 강입니다. 한강보다 10배는 더 긴 강입니다.
라오스 어부들
원곡동 끄트머리에는 대부도 방조제가 있습니다. 약 12km에 이르는 바닷길입니다. 이곳 안산역 뒤로는 국가산업단지인 반월공단과 시화공단도 있어서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보물 창고입니다. 원곡동 중국과 동남아 이주민들은 거의 다 이 공단에서 일한답니다.
시나나 어머님도 이곳 플라스틱 공장에서 매일 자정까지 일합니다. 아버지도 이곳에서 같이 일하다가 이제는 건축공사장에서 중노동을 합니다. 두 분이 한국에서 몇 년간 월급을 모으면 라오스 고향에 돌아가 가게를 하나 열 수 있다고 합니다. 라오스 국내회사에서 받는 월급의 10배나 더 벌기 때문에 큰돈이 된답니다.
그러나 시나나 아버지가 수원의 빌딩 건축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발을 헛디뎌 추락했습니다. 팔과 다리가 하나씩 부러졌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는지 시나나는 얼굴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아빠는 다행히 병원에서 외과수술이 잘 되어서 얼마 동안 치료를 하시고 퇴원하셨지.”
그것은 한국 정부에서 유엔 국제노동규약을 잘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반월공단은 국제규약에 철저했습니다. 그래서 그 배경단지인 원곡동은 약 40년이 넘는 동안 줄기차게 발전하여 이렇게 대규모 ‘아시아 다문화 특구 마을’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그때 너무 놀랐어, 돈이고 가게고 다 포기하고 그냥 라오스로 돌아가자고 했어!”
“그래도 아버지는 4개월 만에 병원에서 퇴원하자 얼마 후 또 건축공사장에 나가셨어, 다른 곳보다 건축공사장이 월급을 훨씬 더 많이 주거든!”
“오히려 한국 체류를 더 연장하겠다는 거야, 그런데 한국 정부에서 아직 재허가가 안 나온 지 벌써 1년이 넘었어, 지금 불법체류자가 되었어.”
대개의 동남아 이주민 노동자들은 몇 년간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귀국하면 아파트도 사고 또는 시골의 큰 땅을 사서 과수원 등도 할 수 있어서 귀국하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안산은 외국인 인구만 약 110여 개국 3만 1,000명이며, 유동 인구까지 하면 약 10만 명이나 되는 이주민 지구촌이 되었습니다.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에는 이주민들의 숨은 노고를 무시해선 안 될 것이라고 담임선생님이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학부모회장인 현수 엄마도 새롬초등학교 학부모 회의 때마다 다문화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을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