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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권태주 Dec 09. 2022

교직 단상斷想

  올해가 기해년, 나의 교직 생활이 32년째를 맞이한다. 교사로 20년, 장학사로 5년, 교감 3년, 교장 4년째이다. 1988년 3월 1년간의 발령 대기를 거친 후 초임발령을 경기도 시흥군 장곡리 장곡초등학교로 받았다. 안양에서 하루에 네 번 밖에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바닷가 시골 마을이었다. 학교 앞에는 논이고 멀리 염전이 있었다. 발령장을 들고 찾아간 초등학교 교무실에는 금복주에 나오는 사진과 흡사하게 생긴 포동포동한 교감선생님이 조개탄 난로 위에 삼겹살을 구워가며 고량주를 마시고 있었다. 학교 앞에는 메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 한옥집 사랑방에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초임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5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절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정 형편을 파악하기 위해 방과 후에 집집마다 방문을 했다. 어느 날은 학부모가 권한 막걸리를 마시고 집에 오다가 자전거가 넘어져 얼굴을 다치기도 했고, 협괘열차가 다니던 소래포구까지 체험학습을 다녀오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아이를 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픈 기억은 모시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일이다. 막내아들을 위해 궂은일 마다하지 않으시고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사별死別   


       

풀잎 서걱이는 소리에 놀라
 당신인 줄 알고
 창문 열어 보니
 바람이더군요.
 이제는 볼 수 없는
 너무 먼 곳으로 떠나신 임이여.
 자전거를 타고 가는 출근길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
 흔들리는 꽃잎에 어리는 당신 모습
 염려 말라고 다짐해 주며
 나를 보고 웃고 있는 코스모스
 또다시 뵈올 날 언제일까요.
 이 세상 사라질 때까지도
 잊지 못할 것 같은데
 꿈에서는 뵙겠지요.
 그리운 임이여.  

   

  장곡초등학교에서 2년을 근무하고 시흥시에 있는 소래초와 대야초를 거쳐 시흥은행초에서 10년을 근무하였다. 이 시기에는 결혼도 했고, 첫 아이와 둘째 아이를 낳았다. 또한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하며 성기조 펜클럽이사장님과의 인연을 갖게 된다. 또한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첫 시집인 『시인과 어머니』를 발간하여 허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00년에는 안산시 대부도의 대남초등학교로 전근을 가게 된다. 교직에 있는 교사들이라면 누구나 승진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나에게도 대부도 3년의 기간이 그러한 시기였다. 하지만 함께 출퇴근하던 선생님 한 분은 암에 걸려 돌아가시고, 풍도에 근무하던 선생님 한 분도 승진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풍도의 야생화가 되고 말았다.
   안산시에 있는 별망초에서 5년을 근무하며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여 2008년부터 5년간 안산교육지원청에서 전문직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이렇게 교직에서의 생활이 문학에 대한 나의 욕구를 누르지는 못했다. 2013년 안산창촌초 교감으로 근무하면서 그동안의 작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2016년 본오초등학교 교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재개하였다. 학교에서는 안산시문인협회와 협약을 맺어 상록수문예학교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전문 강사를 통한 문예 수업이 가능하게 했고, 2017년에는 22년 만에 제2 시집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한 방향만 바라보고 있다』를 발간하여 한반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제 교직 7년 반이 남아 있다. 앞으로 내 인생에 펼쳐질 일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당당하고 멋지게 이 길을 가고 싶다. 내 발자국을 바라보고 뒤따라오는 후배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직의 길과 문학의 길이 나에게는 한 길이기 때문이다.  

   

모래시계     


     

유리 플라스크에 가득 찬 모래
내 인생은 어느덧 오십 대 중반

가늘게 흘러내리는 모래를 보면
너무나도 쉽게 지나간 세월

습식 사우나 안에서
뜨거운 열기에 땀을 흘리며
가늘게 내려오는 모래를 보니
벌써 절반이 흘러내렸구나.

지금 하나님께 간다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변명할까.

네가 낭비한 세월의 찌꺼기를 보아라.
너는 인생을 얼마나 쉽게 흘려보냈느냐.

모래는 멈추지 않고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아직 나에게 남아 있는
절반의 삶

하나님이 좋아하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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