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은 개인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 에바
마감 기한을 지키지 못한 데에는 몇 가지 개인적 이유가 있다.
첫째,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아주 예전에 페이스북에 투정 부리는 댓글을 썼다가 비난당하는 경험을 하고 나서 공개적인 글쓰기는 아예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연구직으로 분류되는 아카이브 일을 하기로 한 이상 글쓰기를 더 이상 피할 수는 없었다. 『월간 문익환』 독자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많지 않다는 것에 위안 아닌 위안을 받고 두려움을 점차 극복할 수 있었다. 나중에 회의록을 살펴보니 참여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가 한 답은 ‘글쓰기 두려움 극복’이었다.*
*2022년 5월 3일 회의록에서. 다른 사람의 동기는 다음과 같다. 몰랐던 것을 배워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코스모스), 봉사,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과 가능성(만당), 은퇴 후 활력과 자신감, 단행본 출판의 성과(백총),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닌 기꺼운 마음으로(지노)
둘째, 회피하고 미루는 습관이 있다. 내 안에는 끝내지 않으면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망하는 ‘찐 데드라인’ 감지 타이머가 따로 존재한다. 이 센서는 공포탄식 대외용 데드라인에는 반응하지 않기에 자 발적인 행동을 끌어내지 못한다. 글쓰기라는 과업은 어떤가? 고도의 집중력을 폭발적으로 발휘해야 하는 고난의 작업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마감일을 무시하면서 마냥 노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성실한 구석이 있어서 좋은 글 쓰는 법, 인터뷰 잘하는 법 같은 내용의 책이나 유튜브를 보면서 뇌를 예열하는(회피에 대한 변명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셋째, 퇴근 후 하는 일이 많다. 아카이브 일은 일주일에 이틀만 하는 파트직이다. 그 외 시간은 알바, 봉사, 문화생활, 여행, 자격증 공부, 인터넷 강의 등이 차지하고 있다. 『월간 문익환』 발행은 주요 업무로 당당히 자리 잡긴 했지만 근무 시간에는 회의와 공동작업으로 꽉 차 있어 혼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어렵다. 찐 데드라인과 개인 일정이 겹쳐 둘 다 아주 엉망이 된 일이 가끔 있었는데 한번은 한국어교실에서 친해진 외국인 학생 3명과 에버랜드에 갔을 때였다. 그 전날에도 콘텐츠 올리느라 밤을 새워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완료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커져서 중간에 놀이기구 대기 줄에서 이탈해서 스타벅스 에버랜드지점에서 노트북을 켜는 사태를 일으키고 말았다. 3kg이나 되는 노트북을 배낭에 싸간 것부터가 잘못이다. 같이 간 친구들에게도 에버랜드에도(?) 아주 큰 무례를 저질렀다.
‘놀 땐 놀고! 일할 땐 일하자!’ 같은 모드 전환 스위치가 잘 작동하는 사람이었다면 통근 직장인 외의 다른 대안을 진즉 선택했을 것이다. 그래도 놀거나 다른 일을 할 때 오히려 번뜩이는 콘텐츠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좋은 점도 있다.
마감은 개인 성향, 컨디션, 일정, 인생관 등등을 봐주지 않고 봐줄 이유도 없다. 다만 프로젝트를 지속하게 하는 생명은 마감과 자율성이라고 늘 강조하는 편집장 백총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마감 후에는 퇴고의 안도감과 홀가분함을 만끽할 새도 없이 개인 사정을 주장하기 더욱 어렵다. 필자에서 부편집장으로 역할을 전환하여 원고 교열, 디자인 수정요청, 수정사항 검수 등 편집장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작업이 이어지기 때문에 계속 카톡방을 주시해야 한다. ―하필 수정 시기와 휴가가 겹쳐 캠핑장에서 노트북을 꺼내는 만행을 벌여 망한 여행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된다.― 대략 4번 정도 수정을 거치면 인쇄소에서 올컬러 고중량 『월간 문익환』 타블로이드판(생활정보지 크기)이 인쇄된다.
이제 오프라인판 끝났고! 온라인 아카이브 관리자의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온라인 콘텐츠 편집 규칙에 맞게 콘텐츠를 올리고 사진을 첨부한다. 콘텐츠는 이야기와 해설을 통해 1차 자료인 기록물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한 콘텐츠 말미에 원사료를 연결해 준다. 관련 기록이 아직 안 올라가 있으면 새로 등록한다. 아카이브는 그 어떤 웹사이트보다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올리면 기사 8개에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린다. 나머지 반나절은 아카이브 메인페이지를 주제에 맞게 구성하고 목차를 업데이트한다.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에 각 기사 링크를 첨부해 게시글을 예약하고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이라이트를 만든다. 드디어 진정한 마감이다! 그리고 곧 다음 호 기획회의이다. 이걸 열두 번 반복한다. 시즌제를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핼쑥).
※마감 이후의 일들
집필마감 → 데스킹 → 교정교열 → 조판디자인 → 디자인 수정요청 → 수정사항 검토 → 사업회 직원들에게 공유, 팩트체크 → 인쇄 발주 → 온라인 아카이브 콘텐츠 업로드 → 관련 기록 연결, 아카이브 메인 페이지 및 목차 업데이트 → SNS-아카이브 링크 연결 → 다음 호 기획 회의 → 진행회의 → 자료 조사 → 집필 마감 … ×12회
글쓴이_에바
중심보다 주변에 눈이 가 밖으로 도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 『월간 문익환』에서 <이웃 아카이브 탐방>과 <수장고 통신> 등을 썼다. 고치고 깨끗하게 하는 걸 좋아해서 문화재 보존 공부를 시작했다.
● 아카이브에서 『월간 문익환』 기사 읽기
https://archivecenter.net/tongilhouse/archive/CollectionGroupView.do?con_group_id=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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