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세 번째 핵심 요소: 대학 네트워크에서 질 높은 교육 제공 -3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여러 대학들이 모여 공동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각 대학이 가진 교육 자원들을 공유하면서 역량이 검증된 학생들에게 공동 인증 학위를 부여한다. 학생들은 네트워크 내의 여러 대학에서 원하는 교과목을 모듈화된 교육과정에 따라 선택하여 수강한다. 소속 대학의 칸막이가 무의미한 활발한 학점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대학 간의 학점 교류라고 하면 이미 적지 않은 시도가 있었고 현재도 여러 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흔하게 주변 대학들에서 볼 수 있는 학점 교류와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의 교육 자원 공유는 어떻게 다를까?
한국교육개발원이 2019년에 펴낸 연구보고서인 ‘대학의 공유성장을 위한 대학체제 개편 방안 연구’에는 그동안 국내 대학들 간에 이루어진 다양한 학점 교류와 교육 자원 공유의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보고서에 의하면, “그동안 국내 대학 간의 공유 활동은 각 대학이 특별한 노력을 들이지 않고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대학 간 학점인정 정책’에 의해서 주로 이루어지다가,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상생 전략으로 ‘대학 간 공유’가 주요 전략으로 대두”(각주1)되었다.
대학 간 공유는 전임교원의 타교 출강을 허가하는 ‘인적 자원 공유’, 대학 간 복수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교육과정 공유’, 학점과 교육과정은 물론 생활관, 도서관, 실험실 등 캠퍼스의 물적 인프라까지 공유하는 ‘포괄적 공유’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사례들을 비교 분석하면 <표8-11>(각주2)과 같다.
표8-11 대학 공유 사례 분석
자료: 한국교육개발원(2019). 대학의 공유성장을 위한 대학체제 개편 방안 연구.
<표8-1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학은 교육 자원의 공유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것이 아니다.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공유하고 연합해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다. 공유의 형태도 수업만 공유하는 형태부터, 대학들이 연합하여 공동 학위를 운영하는 형태, 심지어 서로의 물적 인프라까지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교육부에서도 이러한 공유 대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미 2017년에 둘 이상의 대학에 설치된 학과나 학부에서 연계·융합하여 전공을 개설하고 공동 학위를 수여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 시행령도 개정하였다. 대학의 교육 자원 공유를 위한 시도와 법령의 정비 작업까지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림8-1>과 <표8-12>(각주3)는 대학 간 융합·공유 전공을 인정하는 교육부 보도자료와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내용이다.
그림8-1 융합·공유 전공제 도입
자료: 교육부 보도자료(2016). 창의혁신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
표8-12 융합·공유 전공제를 허용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내용
자료: 교육부 보도자료(2016). 창의혁신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
<그림8-1>과 <표8-12>에서 보듯 이미 우리나라는 대학 간의 다양한 교육 자원 공유를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는 만반의 조치를 하였고 실제 <표8-11>에서 보듯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고, 다양한 공유 대학의 시도들이 의미 있는 노력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 개혁의 사례로 널리 알려진 경우는 드물다. 대학들 간의 교육 자원을 공유하는 공유대학은 오늘날 한국 대학 교육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에 가장 근접한 정책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요인이 이 정책의 활성화를 제한하고 있는 것일까? 아래의 <그림8-2>(각주4)를 보면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림8-2 대학체제가 공유성장과 부합하지 않는 이유(1순위)
자료: 한국교육개발원(2019). 대학의 공유성장을 위한 대학체제 개편 방안 연구.
<그림8-2>는 총 65개 대학의 업무담당자들에게 대학의 공유 현황에 대해 물은 설문조사 결과이다. 현재의 대학체제가 공유성장에 적합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그 첫 번째 이유를 ‘대학의 서열구조(37.33%)’라고 답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서열화된 대학구조가 공유 대학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대학의 업무담당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서열구조가 공유대학의 더 활발한 발전을 막고 있는 사례는 교육부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는 ‘지역 혁신 플랫폼’에서도 나타난다. ‘지역 혁신 플랫폼’은 “지자체와 지역 대학이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우수인재를 양성하고 청년이 지역에 취업 및 정주하도록 지원하는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각주5)이다. 다시 말해, 지역 대학은 해당 지역 기업이 원하는 교육 과정을 개설하고 기업은 일정 인원의 학생 취업을 약속하는 데 이 과정을 지자체가 나서서 적극 협력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실질적으로 대학과 기업이 서로의 요구를 수용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유익이 돌아가고 이 과정을 지자체에서 중간 역할을 하기 때문에 행정적인 편의까지 더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 대학 육성에 매우 기대를 받고 있는 정책이다. 지역 혁신 플랫폼은 2020년에 경남, 충북, 광주·전남이 첫 시행지역으로 선정되어 2021년 한 해에만 1,71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았다. <그림8-3>(각주6)은 지역 혁신 플랫폼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평가받는 경남형 공유대학(USG: University System of Gyeongnam)의 사례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그림8-3 경남형 공유대학(USG) 운영 개요
자료: 교육부 보도자료(2021). ‘2021년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 기본계획 확정 및 신규참여 지역 공모.
경남형 공유대학(USG)은 경남 지역의 17개 대학이 참여하여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USG학생으로 선발되면 교통비, 식비, 숙박비까지 지원받으며 안정적으로 공부한 후 지역의 우수 기업에 취업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지역 혁신 플랫폼에서도 대학 서열화는 방해 요인이 되고 있다. 경남형 공유대학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손정우 교수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개최한 간담회에서 “학생들의 경우 이미 사회적으로 정해져 있는 대학 서열화로 인해 자기보다 못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다”(각주7)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즉, 공유대학 내에서 상대적으로 서열이 높은 대학 학생들이 다른 참여 대학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에 불만이 있으며 이는 공유대학이 더욱 활성화되는 데 방해요인이 되고 있음을 뜻한다.
앞서 <그림8-2>에서 보았던 공유 대학 관계자들의 설문 응답, 그리고 지역 혁신 플랫폼 공유 대학 학생들의 인식을 통해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가 진정한 공유대학의 성공 사례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입학할 때 동일한 성적 기준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학생들 간에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없다. 그래서 학점 교류나 교육과정 공유가 거리낌 없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전폭적인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모든 전공 분야에서 공유 대학이 실현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지역 혁신 플랫폼은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주로 이공계 계통의 일부 학과에만 적용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전 전공영역에서 다양한 공유와 연합이 일어날 것이므로 지역 혁신 플랫폼의 한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대학 교육 혁신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고 인식되는 공유 대학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입학 성적 순으로 서열화된 현재의 대학 체제가 타파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더 이상 어느 대학에 들어가는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서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대학 체제가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에서는 가능하다.
각주
1) 한국교육개발원(2019). 대학의 공유성장을 위한 대학체제 개편 방안 연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보고 RR 2019-15. p.78.
2) 한국교육개발원(2019). 위의 자료. p.83.
3) 교육부 보도자료(2016). 창의혁신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2016.12.6.일자). p.12,14.
4) 한국교육개발원(2019). 위의 자료. p.224.
5) 교육부 보도자료(2021). ‘2021년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 기본계획 확정 및 신규참여 지역 공모.
6) 교육부 보도자료(2021). 위의 자료. p.4.
7) 손정우(2021). 공유대학이 가져온 대학의 변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학서열해소 방안 정교화를 위한 연속 간담회’ 제3차 간담회 자료집. p.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