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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온 편지!

상상에 빠진 동화 0317

by 동화작가 김동석

도쿄에서 온 편지!




할머니 <키쿠>는

시장에서 돌아온 뒤 도시에서 온 손녀를 찾았다.

도쿄 외곽에 사는 할머니는 넓은 들판을 보며 살아가는 게 좋았다.


“나오미!”

할머니는 나오미가 보이지 않자 크게 불렀어요.


“어디 갔을까!”

혼자 두고 아침 일찍 시장에 다녀온 할머니는 나오미가 보이지 않자 걱정이 되었어요.


“뒷산에 올라갔나!”

할머니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어요.

뒷산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들어선 할머니는 나오미를 크게 불렀어요.


“나오미!”

할머니 목소리는 뒷산 대나무를 흔들리게 할 정도로 컸어요.


“나오미!”

할머니 목소리만 크게 들리고 나오미 대답은 들리지 않았어요.


“흐흣!

할머니가 날 못 찾을 거야!”

거실에 있는 큰 백자 항아리에 들어가 숨은 나오미는 손으로 입을 막고 웃음을 참았어요.


“이 녀석이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는 옆집 울타리 근처로 가더니


“우리 손녀 봤어요?”

하고 물었어요.


“안 왔어!

<키쿠>.

나오미가 없어?”

감나무가 유난히 큰 집에 사는 <미치코> 할머니가 대답했어요.


“응.”

할머니는 대답하고 뒤돌아 섰어요.


나오미는

옆집 미치코 할머니 집 감나무에도 올라가서 놀 때도 있었어요.


“이 녀석이 어디에 갔지!”

할머니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왔어요.


“나오미!

어디 숨은 거야?”

하고 말하면서 부엌으로 갔어요.


나오미는 숨을 꾹 참았어요.

할머니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들킬지도 몰랐어요.


“경찰서에 전화해야 할까!”

할머니는 시장바구니에서 무엇인가 꺼내면서 말했어요.


“어디 숨은 걸까?”

숨어 있다가 나타난 적이 많아서 할머니는 또 이런 생각을 했어요.


“분명히!

어디 숨었을 거야.”

하지만 할머니는 찾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집안 어딘가에 나오미가 숨어 있는지 알면서도 찾지 않았어요.


“나오미!

어디 숨었지?”

할머니는 조용히 나오미가 들으라고 말했어요.


“장롱 속에 숨었나!

장롱 속에는 뱀 한 마리 있을 텐데!”

이 말을 들은 나오미는 갑자기 무서웠어요.


“냉장고 속에 숨었나!

그곳에는 상어가 한 마리 있는데!”

나오미는 갑자기 온몸이 떨렸어요.


“할머니!”

무서워서 더 이상 숨어 있을 수가 없어 나오미가 소리쳤어요.


“이게 무슨 소리지!

도깨비 소리인가!”

할머니는 손녀 목소리를 듣고도 모른 척했어요.


“키쿠 할머니!

나오미 여기 있어요.”

하고 나오미가 말했지만


“우리 집에 도깨비가 살고 있는가!

아이고 무서워라!”

할머니는 모른척하고 살금살금 달 항아리 쪽으로 걸어갔어요.


“나오미가 좋아하는 다코야끼 사 왔는데 어떡하지!

도깨비를 줄까!”

하고 할머니가 말하자


“할머니!

나오미 여기 있다니까?”

하고 나오미는 달 항아리 속에서 더 크게 외쳤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달 항아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어요.


호호호!

나오미를 깜짝 놀라게 해야지.”

할머니도 나오미를 깜짝 놀라게 할 계획이었어요.


“이제 나가야겠다!”

달 항아리 속에서 움츠리고 있던 나오미가 나가려고 했어요.

그때

가까이 다가 온 할머니가 달 항아리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크아!”

하고 소리쳤어요.


“엄마야!”

나오미는 깜짝 놀랐어요.


“이 녀석 여기 숨었구나!

잡아먹어야겠다.”

하고 눈을 부릅뜨고 악마 같은 표정을 하며 나오미를 잡으려고 했어요.


“안 돼! 안 돼!”

나오미는 더 몸을 움츠리며 소리쳤어요.

하지만

할머니의 긴 손에 나오미는 잡히고 말았어요.


“널!

잡아먹어야겠다.”

할머니는 입을 크게 벌리고 나오미의 볼을 물어뜯으려고 했어요.


“안 돼!

안 된다니까.”

나오미는 발버둥 쳤어요.

하지만

할머니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크크!

무섭지.”

하고 할머니가 말하자


“하나도 안 무서워!”

하고 나오미가 말했어요.


“안 무섭다고!”

할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리면서 나오미를 물으려고 했어요.


“하나도 안 무섭다니깐!”

나오미는 웃으면서 말했어요.


오늘도

나오미는 할머니에게 잡혔어요.


“나오미!

할머니는 언제든지 널 찾을 수 있어.”

하고 할머니가 말하자


“어떻게?”

하고 나오미가 물었어요.


“할머니는 나오미 향기를 맡을 수 있거든!”


“치!

무슨 냄새인데?”


“음!

그건 말할 수 없지.”


“거짓말!”


“진짜야!

할머니는 지금까지 다 찾았잖아.”


“내가 할머니 부르니까 찾았지!”


“그랬던가!”


“그래!”

나오미는 할머니가 웃으면서 말하는 게 웃겼어요.


나오미는

할머니가 사 온 다코야끼를 맛있게 먹었어요.


“할머니!

다음에 또 사다 줘.”


“알았다!”

나오미는 방학이 되면 할머니 집에 와서 노는 게 너무 좋았어요.

엄마 아빠가 없어도 할머니랑 신나게 놀면서 즐겁게 지냈어요.

할머니 손잡고 뒷산에 올라가기도 하고 마당을 청소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방학이 끝나면 다시 도쿄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할머니!

여기서 학교 다니고 싶어요?”


“그건 안 돼!”


“왜?”


“할머니가 꿈이 없으니까!”


“할머니도 꿈을 가지면 되잖아요?”


“이제 늙어서 싫어.”


“나는 할머니가 좋은 데.”


“그래도

엄마 아빠 곁에서 학교에 다니고 방학하면 또 와.”


“치!”

나오미는 정말 할머니 집에서 학교 다니고 싶었어요.


나오미는 할머니 곁에서 떠나는 게 싫었어요.

내일 엄마 아빠가 오면 다시 도쿄로 가야 했어요.


“할머니!

방학하면 또 올게.”


“그래.”

할머니는 그날 밤 나오미를 꼭 안고 잠이 들었어요.


아침 일찍 일어난 나오미는

책상에 앉아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어요.


“할머니가 찾아서 읽을 거야!”

그리고

달 항아리 안에 넣어두었어요.


할머니는

나오미가 써 논 편지를 찾아 읽고 언제나 편지함에 잘 보관해 두었어요.

나오미가 보고 싶을 때마다 편지를 꺼내 읽곤 했어요.


“나오미!

예쁜 드레스 입어야지.

엄마 아빠 오니까!”


“알겠어요!”

나오미는 할머니가 꺼내 논 예쁜 드레스를 입고 밖으로 나갔어요.


“나무들아 안녕!

겨울 방학이 되면 올게.

잘 있어!”


“안녕!

나오미.

또 놀러 와.”


“대나무야 안녕!

바람소리가 너무 좋았어.”


“안녕!

건강하게 잘 지내고 또 와.”


“알았어!”

나오미는 할머니 집에 있는 많은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했어요.


나오미는

아침을 먹고 미치코 할머니에게 달려갔어요.


“할머니!

오늘 도쿄에 가요.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벌써 가는 거야?”


“네!”


“나오미!

잠깐 기다려.”

하고 말한 미치코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갔어요.


“네!”


미치코 할머니는

방에 들어가 작은 봉지에 무엇인가를 담아 나왔어요.


“이거!

가면서 먹어.”


“감사합니다!”

나오미는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어른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했어요.



사진 김동석/영광군 창녕조씨 제각 입구

도쿄에서

아침에 도착한 나오미 엄마 아빠는 할머니와 점심을 함께 먹었어요.


“어머니!

나오미가 말썽 많이 피웠지요?”


“말썽!”


“네!

어머니.”

아빠가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나오미는 내 친구란다!

말썽은 하나도 안 피웠다.”


“정말인가요?”


“그래!”

할머니는 나오미가 가는 게 너무 싫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때라 어쩔 수 없이 도쿄로 보내야 했어요.


“나오미!”


“네!

할머니.”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해라!”


“네!

할머니.”

할머니는 나오미를 꼭 안아주었어요.


“겨울 방학에 또 올게요!”


“그래!”

나오미는 할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엄마 아빠랑 도쿄로 떠났어요.


“어디다 숨겨놨을까!”

할머니는 나오미가 떠나자마자 편지를 찾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몇 개나 숨겼을까!”

나오미가 간 뒤

편지를 찾아서 읽고 또 읽는 게 할머니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었어요.


“찾았다!”

할머니는 작은 서랍장 위에 있는 편지를 한 통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크크. 예쁜 녀석! 뭐라고 썼는지 읽어볼까?”

편지를 펴는 할머니 손이 떨렸어요.



<사랑하는 키쿠 할머니께!>


할머니가 늙어가는 게 싫어요.

나오미가 늙지 않는 약을 만들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가 늙지 않고 나오미랑 오래오래 살게 할 거예요.

할머니 조금만 더 기다 주세요.

밥도 잘 먹고

나오미 생각도 많이 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세요.

시간을 빨리빨리 돌려서 빨리 방학이 오게 할게요.


할머니 사랑해요.

나오미!



할머니는

눈물샘이 터졌는지 편지를 읽고 난 뒤 눈에서 눈물이 났어요.


“나오미!”

할머니는 읽은 편지를 곱게 접어 편지함에 넣었어요.


“다음 편지를 찾아볼까!”

할머니는 다시 편지를 찾아 나셨어요.


“분명히!

대나무 가지에도 숨겨놨을 거야.”

작년에도

대나무 가지에서 마지막 편지를 찾은 할머니는

곧바로 대나무 숲으로 달려갔어요.


“키쿠!

어디 가는 거야?”

옆집에 사는 미치코 할머니가 뒷산으로 가는 할머니를 보고 불렀어요.


“대나무 소리가 듣고 싶어서!”


“뭐라고?

대나무 소리!”


“그래!”


“키쿠!

정신이 이상한 거 아냐?”


“맞아!

정신이 이상해.”


“큰일이군!

손녀가 간 지 몇 시간도 안 되었는데.”


할머니는

미치코 할머니 말을 듣지도 않고 대나무 숲으로 달려갔어요.

대나무 숲 깊숙이 들어간 할머니는 하늘을 쳐다봤어요.


“와!”

할머니는 한 참을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세상에나!”

구부러진 대나무 가지마다 하얀 편지가 풍선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어요.


“몇 개나 될까!”

할머니 가슴에 예쁜 나오미 얼굴이 가득했어요.


“천천히 대나무 가지를 잡아당겨야겠다!”

할머니는 한 참을 대나무 숲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키쿠 할머니께!>


할머니가 시장에 가면

나오미가 좋아하는 것만 사 오는 거 다 알아요.

할머니가 좋아하는 홍시는 하나도 안 사 오고

나오미가 좋아하는 사탕, 카스텔라, 다코야끼만 사 오는 거 다 알아요.

빨리 커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 많이 사줄게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셔야 해요.

아프지 말고,

낮에는 따뜻한 햇볕도 많이 쬐고 지내세요.

대나무 소리에 맞춰 노래도 불러보고,

밤에는 달빛과도 친구 하며 행복하게 살고 계세요.


할머니 손녀

나오미!



할머니는 대나무 숲에 앉아서 한 참을 울었어요.

울고 싶지 않은 데 눈물이 자꾸만 나왔어요.


“나오미!”

편지 하나를 다 읽고 다시 대나무 가지에서 편지를 하나 따서 주머니에 넣었어요.


“내일!

또 와서 하나 따서 읽어야지!”

대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편지를 그대로 두고 할머니는 집으로 내려왔어요.


나오미는

엄마 아빠와 집에 잘 도착했어요.


‘따르릉!’

도쿄에서 나오미가 전화를 했어요.


“여보세요!”


“할머니!

나오미예요.”


“나오미!

잘 도착했지?”


“네!

할머니.”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또 와?”


“네!

할머니. 건강하세요.”


“그래!”

전화를 끊고 할머니는 또 한참을 울었어요.


“왜 자꾸 눈물이 나지!”

하며 안방에 들어온 할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어요.


“이 편지에는 또 무슨 이야기를 썼을까!”

저녁에는 안경을 써야 글을 읽을 수 있는 할머니는

다시 일어나

장롱 서랍에서 안경을 꺼내 들고 흔들의자에 앉았어요.


“읽어볼까!”

편지 하나를 들은 할머니 손이 또 떨렸어요.



<사랑하는 키쿠 할머니께!>


할머니!

대나무는 천 년을 산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대나무에 편지를 묶어놨어요.

할머니도

천 년 만 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대나무는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또 햇볕이 내리쬐는 방향으로 머리를 높이 들고,

태풍이 와도 넘어지지 않게 뿌리는 멀리멀리 내려 뻗고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할머니도 자연에 순응해야 오래오래 사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자연이 주는 것에 항상 고마워해야 한다!”

하고 할머니가 말했잖아요.

나오미도 자연에 항상 감사하고 살아갈게요.


사랑해요 할머니

나오미!


할머니는

편지를 가슴에 안았다.


“이 녀석이 벌써 이런 생각을 다하다니!”

할머니는 나오미 편지를 읽을 때마다 감동받았어요.


“장난만 치고 놀 줄만 알았더니 벌써 다 컸구나!”

그날 밤

할머니는 꿈속에서 나오미를 만났어요.


“나오미!

학교 잘 다니지?”


“네!

할머니.”


“할머니도 건강하시죠?”


“그럼!

대나무도 올라가고 그래.”


“정말!”


“그렇다니까!”

할머니는 꿈속에서 나오미와 재미있게 놀았어요.


한 달이 지난 뒤

할머니는 달 항아리를 닦다가 편지를 발견했어요.


“이 녀석이 이곳에도 편지를 숨겼구나!”

할머니 입가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어요.


“뭐라고 썼을까!”

할머니는 걸레를 한쪽에 내려놓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어요.



<사랑하는 키쿠 할머니께!>


할머니!

할머니가 만든 달 항아리에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엄마 품속같이 너무 포근하고 행복했어요.

할머니가 들어가 쉴 수 있는 커다란 달 항아리를 나오미가 만들어 드릴게요.

백자, 청자, 또 다른 색깔의 달 항아리를 만들게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사세요.

할머니가 달 항아리에 숨으면 나오미가 찾을게요.

“할머니! 어디 숨었어요?”

할머니가 그곳에서 잠이 들어도 좋아요.

그래도 나오미는 할머니를 밤새도록 찾을 거예요.


사랑해요 할머니.

나오미!


할머니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나오미!”

곧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데


“운동도 열심히 해야지!”

할머니는 나오미를 기다리며 열심히 살기로 했어요.


“미치코!

체육관에 가자.”


“키쿠!

조금만 기다려.”

할머니는 미치코 할머니와 오후에 체육관에 가서 배드민턴도 치고 달리기도 하고 집에 왔어요.


다음 주에!

도쿄에서 나오미가 내려온다고

벌써!

좋아하는 음식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만들어 넣어 두었어요.


“나오미!

빨리 오렴.”

할머니는 해가 질 무렵이면 흔들의자에 앉아 멀리 바라보며 나오미를 생각하다 들어와 잠을 자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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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오미 G 작가의 일기를 읽고 동화를 쓴 것입니다.

나오미 G 작가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일본 무사비(무사시노)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동양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조각가 도흥록 선생님과 결혼 후 한국에서 30년을 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미술 강의를 하며 한국에서의 작가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일본 문학이 세계적으로 호평받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일기와 편지를 쓰는 습관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동화책에 일러스트를 그려주는 관계를 유지하며

지금도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하는 나오미 G작가를 위한 동화이기도 합니다.

추억의 일기!

읽을 기회를 준 나오미 G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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