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밤!

달콤시리즈 420

by 동화작가 김동석

눈 오는 밤!




그날도 함박눈이 내렸다.

밤나무골에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할머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눈 치울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질 않았다.


들판에 서있는 허수아비는 함박눈이 내려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날 같으면 들판에서 신나게 춤추며 놀았을 텐데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밤나무골에 홀로 사는 할머니 때문이었다.

허수아비는 할머니가 걱정되어 빗자루를 들고 밤나무골로 향했다.


"눈을 치워줘야 해!"
허수아비는 수북이 쌓인 눈길을 걸으며 비틀거렸다.

넘어질 듯하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창문 너머로 호롱불이 희미하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할머니!

걱정 말고 주무세요.

마당에 쌓인 눈과 우물까지 가는 길목은 제가 눈을 치울 테니 어서 주무세요."

허수아비는 마당을 쓸며 할머니방을 향해 속삭였다.


'크응! 크응!'

가끔 할머니 방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허수아비는 걱정이 되었지만 마당에 쌓인 눈을 열심히 치웠다.


"이제!

우물까지 가는 길만 눈을 치우면 되겠다."

허수아비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옷소매로 닦고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우물로 가는 길목에

작은 호수가 있는데 그곳도 얼음이 얼고 그 위로 눈이 쌓여갔다.

얼음 위로

훌쩍 얼굴을 내민 연꽃잎 위에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와!

샘물은 얼지 않았다."

허수아비는 샘물이 얼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했다.


"물 한 모금 먹어야지!"

허수아비는 눈 위에 앉아 샘물을 손으로 떠 한 모금 마셨다.


"와!

너무 시원하다."

수백 년을 한결같이 마실 물을 주는 샘터 유령은 허수아비를 처음 봤다.


"넌!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샘터를 지키는 샘터 유령이 물었다.


"네!

저기 고추밭에 사는 허수아비입니다."


"그래!

허수아비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네!

할머니가 눈 오는 날이 되면 눈 치울 걱정으로 잠을 설쳐서 눈 치워주러 왔습니다."

하고 허수아비가 말하자


"눈을 치워주다니!

할머니가 좋아하겠구나."


"네!

할머니가 더 오래 살아야 저도 고추밭에서 오래 살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할머니가 만들어준 허수아비니까 할머니 자식이나 다름없지."


"네!

저는 할머니 자식이에요.

할머니가 없었으면 태어나지도 않았고 또 지금까지 살아올 수도 없었어요."

하고 허수아비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샘터 유령에게 말해주었다.


"이런!

작년 여름 태풍에 죽을 뻔했구나."


"네!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전 죽었을 거예요."

허수아비는 할머니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자주 와서 물 마시고 가!"

샘터 유령은 허수아비가 맘에 들었다.

할머니를 도와주는 허수아비에게

샘터는 물이라도 줄 수 있어 좋았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그래!

몸조심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다 또 와."

샘터 유령은 무엇이라도 허수아비에게 더 주고 싶었지만 시원한 물 밖에 없었다.


아침이 되자

허수아비는 밭으로 돌아갔다.


"누가 눈을 치웠지?"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려고 했었다.

지난밤에 허수아비가 와서 눈 치운 걸 알리 없는 할머니는 궁금했다.


"도깨비들이 와서 치웠나!"

할머니는 가끔 집에 도깨비들이 놀러 오는 걸 알았다.

감나무 밑에서

한 바탕 놀다가는 도깨비를 본 적도 있었다.


"이상하지!

눈 오는 밤에는 도깨비들이 오지 않는 데."

할머니는 눈 오는 밤에 잠도 잘 안 자며 밤을 지새우는 적이 많았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깜박깜박 졸다가 쓰러져 잠이 들었다.


"도깨비가 아니라면!

누가 와서 이렇게 깨끗이 눈을 치웠을까."

할머니는 아침을 준비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죽은 남편이 와서 치웠을까!

아니면

샘터 유령이 와서 치웠을까.

아침 먹고

샘터에 가서 물어봐야지."

할머니는 밥과 김치 하나를 놓고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밥상을 치우고 할머니는 물통을 들고 샘터로 향했다.


"잘 있었어요!"

할머니가 샘터 앞에 앉으며 인사하자


"잘 있었지!

눈이 오니까 아주 좋아.

새들이 노래 부르는 소리도 더 잘 들려.

눈이 소복이 쌓이며 내는 소리도 잘 들리서 좋아."

샘터 유령은 할머니와 벌써 팔십 년을 만나며 생활했다.


"어젯밤에 누가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갔어요.

샘터 오는 길도 눈을 치웠던데 혹시 누가 온 지 아세요?"

하고 할머니가 샘터 유령에게 물었다.


"허허허!

그거야 나보다 더 잘 알 텐데."

하고 샘터 유령이 말했다.


"내가 뭘 안다고 그러시오!

난 밤에 코 골며 잠잤는데 밤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알겠어요."

할머니가 지난밤에 잠잔 이야기를 하자


"그렇다면 모르겠군!

어젯밤에 당신 아들이 왔었지."


"뭐!

우리 아들이 왔다고.

아니

서울에 사는 우리 아들이 와서 눈 치워주고 갔단 말이에요?"


"아니!

여기 사는 아들이 와서 눈 치우고 갔어."


"여기 아들!

난 아들이 하나뿐인데."

할머니는 정말 자손이라곤 아들 하나뿐이었다.


"허허허!

그러니까 잘 생각해 봐.

여기서 잘 키우고 있는 아들 있잖아!"

샘터 유령은 할머니를 재촉했다.


"아들은 무슨!"

하고 말한 할머니는 샘터에서 물을 떠 물통에 담았다.


"그 녀석!

밤새 눈을 치우고 물 한 모금 먹고 돌아갔어."


"그 녀석이라니!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거예요?"

할머니는 더 궁금했다.


"이런!

자기 자식도 이제 못 알아보고 사니 걱정이군."

샘터 유령도 할머니가 걱정되었다.


"내가 자식을 못 알아보다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할머니는 짜증석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고추밭을 지키는 자식 있잖아."


"뭐!
고추밭에.

아니!

그럼 고추밭에 있는 허수아비가 왔었단 말이에요?"


"그래!

그 녀석이 밤새 눈 치우고 갔어."

샘터 유령이 더 크게 말해주었다.


"세상에!

그 녀석이 이제는 걸어 다니기까지 한다니."

할머니는 눈 치운 것보다 허수아비가 걸어 다닌다는 말에 더 놀랐다.


"정말!

허수아비가 와서 눈 치우고 갔다고요?"

할머니는 다시 샘터 유령에게 물었다.


"그렇다니까!"


"세상에!

그 녀석이 살아있었구먼.

이 추운 겨울에 눈을 치우러 왔다니!"

할머니는 허수아비가 사람처럼 걸어 다니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또 올게요!"

할머니가 샘터 유령에게 인사하고 물통을 이고 집으로 향했다.


"조심해!

미끄러우니까."

샘터 유령은 눈길에 할머니가 미끄러질까 걱정했다.



그림 나오미 G

"따뜻한 옷을 입혀야지!"

할머니는 장롱을 뒤지며 입지 않는 옷을 찾았다.


"이건!

이제 입지 않겠지.

작년 겨울에 아들이 휴가 와서 두고 간 두툼한 반코트였다.

할머니는 옷과 장갑을 바구니에 담고 고추밭으로 향했다.


"허수야!

잘 있었지?"


"네!

할머니."

눈썹 위로 쌓인 눈을 호호 불며 허수아비가 할머니에게 인사했다.


"밤새 추웠지!"


"아니요.

눈이 와서 좋았어요."


"눈 치우면서 힘들었지!"

할머니가 묻자

허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말할 때마다 가슴이 울컥했다.


"말 안 해도 다 알아!

밤새 눈 치우며 힘들었지.

날씨도 이렇게 추운데 뭐 하러 왔어.

여기 가만히 있지!"

할머니는 이야기를 하며 가져온 반코트를 허수에게 입혔다.


"고맙습니다!"

허수는 몸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다음에 오면!

눈만 치우고 가지 말고 방에 들어와."

할머니가 말하자


"네!"

허수는 짧게 대답했다.


"그만 오면 좋겠구먼!"

할머니는 계속 내리는 눈이 싫었다.


"할머니!

눈이 많이 내리면 내년에 풍년이라고 하잖아요."


"풍년은!

농사지을 땅도 없는데 풍년이 오면 무슨 소용 있겠어."

할머니가 농사지을 땅은 고추밭과 뒷마당 텃밭이 전부였다.


"고추 농사라도 잘 되면 좋잖아요!"


"그렇지!

고추농사야 허수아비가 지켜주니 잘 될 거야."

할머니는 고추밭을 지켜주는 허수아비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다.


"오늘 밤에도 눈이 내리면 치우러 갈게요!"


"그래!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고."


"네!

조심할게요."

허수아비는 할머니가 좋았다.

자식처럼 생각하고 보살펴줘서 너무 좋았다.


"샘터 유령도 찾아가서 인사하고 물도 마시고 가!

그곳 물을 오래 마시면 기적처럼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니까."


"네!

물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었어요."

허수아비는 목이 말라도 꾹 참고 고추밭을 지켰다.

하지만 지난밤에 샘터에 가서 마신 물은 생명수 같았다.


할머니는 허수아비에게 옷을 입혀준 뒤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누군가 마법을 부린 듯 들판이 온통 하얗게 채색되고 있었다.


허수아비는 눈 오는 밤마다 밤나무골에 가서 눈을 치웠다.

샘터에 가서 물을 마시는 것과 샘터 유령을 만나는 것도 즐거웠다.


"혹시!

물통에 물을 받아가도 될까요?"

허수아비가 작은 페트병을 보여주며 샘터 유령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고추밭에 물이 없으니 목마를 거야.

매일 와서 물을 담아가도 괜찮아."

하고 샘터 유령이 말했다.

허수아비는 그 뒤로 밤나무골 할머니 집에 갈 때마다 샘터에서 물통에 물을 담아 갈 수 있었다.


"왜 안 오지!"

샘터 유령은 허수아비가 보고 싶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허수아비는 눈이 오지 않으면 고추밭을 지켰다.


"내일은 내가 찾아가 봐야지!"

샘터 유령은 허수아비가 걱정되었다.

물 한 통 들고 고추밭으로 허수아비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잘 지냈어요?"

할머니가 물을 길어 샘터에 왔다.

샘터 유령은 매일 보는 할머니지만 아침마다 물 길러와서 인사하는 할머니가 좋았다.

밤나무골에 할머니마저 없다면 샘터는 사라질 것이고 샘터 유령도 죽거나 어딘가로 떠나야만 했다.


"허수아비는 잘 있지?"

하고 샘터 유령이 물었다.


"잘 있지!

그 녀석이 걱정할 게 뭐 있겠어요."

하고 할머니가 말하자


"무슨 소리야!

할머니 걱정을 많이 하던데."

샘터 유령이 말하자


"그거야!

내 자식이니까 당연한 것이죠."

하고 할머니가 말했다.


"그렇지!

허수아비를 잘 키워주고 입혀주고 하니 자식이지."

샘터 유령은

착하고 고운 마음씨를 가진 할머니가 허수아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다.


"내일!

내가 허수아비를 찾아가도 될까?"

샘터 유령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니!

샘터는 누가 지키고요."


"아무도 오지 않을 거야!

고추밭에서 누가 오면 달려올 게."

하고 샘터 유령이 말하자


"알았어요!

내일은 내가 샘터를 지킬게요."

하고 할머니가 말했다.

샘터 유령이 허수아비를 만나러 간다니 할머니는 더 좋았다.


"고마워!

허수아비에게 물만 갖다주고 금방 올게."


"알았어요."

할머니는 대답하고 물통을 머리에 이고 집으로 향했다.


"좋아!

내일은 물통을 들고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겠다."

샘터 유령은 물통에 물을 채웠다.


"허수아비가 좋아할 거야!"

샘터 유령은

몇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샘터를 나와 들판으로 나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샘터 유령은 물 한 통을 들고 고추밭으로 향했다.

바깥세상을 처음 보는 샘터 유령은 너무 좋았다.


"들판이 이렇게 생겼구나!"

산이 보이고 호수가 보이는 들판을 걸으며 샘터 유령은 놀랐다.

샘터에서만

몇백 년을 살아오며 이야기만 들었지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허수(허수아비)야!"

멀리 고추밭이 보였다.

고추밭 한가운데 허수아비가 서 있는 것도 보였다.


"유령님!

잘 지내셨죠."

허수아비가 샘터 유령을 보고 인사하자


"나야!

샘터에서 잘 지냈지."

하고 샘터 유령이 다가오며 말했다.


"할머니도 잘 계시죠?"

허수아비는 밤나무골에 사는 할머니 안부도 물었다.


"오늘 아침에도

일찍 물 길러 왔었지!

너무 건강해서 탈이야."

하고 샘터 유령이 말하자


"물이 좋으니까!

샘터에서 생명수를 주니까 할머니가 건강한 거예요."

하고 허수아비가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


"정말이에요!

그 샘물을 마신 저도 이렇게 건강하게 겨울을 잘 지내고 있잖아요."

하고 허수아비가 말했다.


"그렇지!

샘터가 생긴 지 벌써 오백 년이 되었으니 생명수지."

샘터 유령도

지키고 있는 샘터가

수많은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젖줄이라는 걸 알았다.


"물 가져왔어!"

하며 샘터 유령이 물 한 통을 허수아비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허수아비는 물을 받아 내려놓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어디 보자!"

언덕 위에 고추밭이 있어서 아주 좋구나."


"네!

여기서 들판이 다 보여서 너무 좋아요."


"저기!

호수까지 보이니 너무 좋다."


"이번 겨울에는

호수가 얼어서 오리들이 날아오지 않았어요."

허수아비가 말하자


"호수가 얼다니!"

몇백 년이 지나도 샘터는 언 적이 없었다.


"신기하죠!

호수는 얼고 샘터는 얼지 않아서."


"정말!

신기한 세상이구나."

샘터 유령은 한 참을 구경한 뒤 다시 샘터로 돌아갔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또 보자!"


"네!

유령님도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허수아비는 들판에서 만난 샘터 유령과 오랜 시간 이야기하며 지낸 일이 꿈만 같았다.


그날 밤,

어두워지자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밤에도

눈을 치우러 밤나무골에 가야겠다!"

허수아비는 함박눈이 내리는 게 좋았다.

할머니 집에 갈 생각과

샘터에 가 유령을 만날 생각을 하니 좋았다.


"많이 내려!

함박눈이 많이 내리면 나는 좋아!

눈 오는 날이 매일매일이면 좋겠다."

허수아비는 고추밭에 눈이 쌓여가는 것을 지켜보며 달이 뜨길 기다렸다.


"달이 떴다!"

밤나무골 뒷산에서 보름달이 떠올랐다.

허수아비는 빗자루를 들고 밤나무골을 향해 달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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