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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솔 Aug 19. 2022

나는 그곳에서 서연고이기도, '지잡대'이기도 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제목에 지방대학을 비하하는 멸칭인 '지잡대'를 쓴 것은 제목에 자극적인 단어를 넣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는 나의 비겁함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지방대를 졸업한 줄 알고 나를 비웃으려던 모 계장님의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해는 말아달라. 나는 학벌주의자가 아니다. 애초에 나는 누군가를 성적으로 비웃을 수 있을 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중경외시 라인이다.) 대학생 때 사회학자 오찬호가 쓴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학벌주의의 문제점을 꼬집는 책을 읽고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낀 일도 있으니. (그리고 내 브런치의 다른 글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나는 '중경외시 후려치기'만 신나게 당하고 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글은 곧 제목이 내용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구청의 모 과에서 한 분은 내가 서연고생일 거라 생각했고, 또 다른 한 분은 나를 지방대생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 생각보단 '단정을 지었다'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 테다. 글을 쓰는 나도 믿기 힘들지만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에겐 서연고생, 누군가에겐 지방대생으로 보인 비법(?)은 무엇일까?



 지금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우선 서연고생으로 보인 비법 먼저. 내가 면직을 한 후에 나를 포함해 4명이 모인 식사자리에서(나를 제외한 세 분은 공무원이었다.) 내 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한 분이 내 모교를 듣자마자 '어, 세솔 씨, 서연고(중 한 곳) 아니었어요?'라 물어보시는 게 아닌가? 나는 거기다 대고 '중경외시라 죄송합니다.'라 할 수는 없어 입을 닫았다.


 나를 왜 서연고생이라 알았는지 그 이유가 짐작은 갔다. 내가 발령난 시기로부터 멀지 않은 때에 들어온 9급 신규 중에 고려대생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는데, 그래서 이 분이 나를 그 소문의 고려대생이라 추측하신 듯 했다. 고려대생이니 공무원을 그만둘 수 있었겠지 하는 계산이 깔려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렇게 학벌을 중요하게 보는 구시대적인 조직에서, 고려대생을 내가 있던 기피부서에 보낼 만큼 고려대가 '그저 그렇게 공부를 잘한 대학' 취급받는 듯 보여 진짜로 '그저 그렇게 공부를 잘한' 나는 고려대생을 대신해 슬픔을 느꼈다. 





 다음은 지방대생으로 오해받은 비법을 풀어보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묘사엔  치의 과장도 없음을 맹세한다.


 그날은 내가 못다한 일을 정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구청에 출근한 날이었다. 주말인 만큼 사무실엔 직원이 많지 않았고 나와 A계장님, 그리고 공무직이 몇 분 계실 뿐이었다. A계장님은 나의 면직이 처리되었단 공문이 뜬 직후(=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온 이후)에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라며 나의 짧은 판단력을 다그치신 분이었다. 자리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던 나에게 계장님은 또 다시 당신이 하고 싶은 말씀만 쏟아내셨다. 세솔 씨가 힘든 부서로 와서 그만두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고. 당신의 딸도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흘리며.


 그리고 내가 짐을 챙기며 돌아갈 낌새가 보이자 갑자기 A계장님이 씨익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셨다. 단언컨대 그 입꼬리의 각도는 누군가를 비웃기 위해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각도였다. A계장님이 물었다.


"니 B대 나왔제?"

 나는 내가 일했던 B시와는 연고가 부족하다 못해 전멸한 수준이었다. 초중고, 대학은커녕 B시로 여행을 와본 적도 없었다. 이런 나에게 B대학이란 교명으로 추측하건대 그저 B시에 있는 대학일 뿐이었고 B대학의 입결에도 관심이 없었다. 하다못해 B대학이 사립인지 공립인지도 몰랐으니까. 


 그렇지만 A계장님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B대학은 공부를 못한 아이들이 가는 대학이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걸 모를 수는 없었다. 


 이에 내가 '아니요. 저 중경외시예요.' 라고 대답하자마자 A계장님은 정말 '화들짝'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조, 좋은 데 나왔네?"

내가 중경외시생인 것이 A계장님껜 놀랄 일이었나? 나는 지금도 종종 궁금해진다. 어째서 계장님은 내가 당연히 B대생일 거라 앞서나간 것이며, B대생이 공무원을 그만둔다니 비웃어주고 싶으셨던 것일지. 우리 계의 계장님이 (이유없이) 내가 일을 못한다고 나를 갈구셨는데 그걸 보시고 쟤는 당연히 명문대생은 아니겠구나 생각하셨던 건지.





 여기까지가 내가 같은 직장의 누군가에겐 서연고생, 누군가에겐 지방대생이라 오해를 받은 비법이다. 적어놓고 보니 당연히 특별한 비법이랄 건 없었다. 그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뿌린 MSG라 양해해주시길. 다만 분명하게 얻은 깨달음은 있다. 학벌주의자들은 생각 외로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늦어도 20대 중반까지 학벌 콤플렉스를 극복해놓지 못하면 나중에 본인보다 어린 사람에게 경멸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그 조직에 계속해서 남아있었더라면 나도 그 평범한 학벌주의자의 얼굴에 순응하고 그들의 방식을 따라갔을지 모른다. B대학이면 비웃어도 되고 중경외시면 상상도 못한 정체 ㄴㅇㄱ 포즈를 취하는 게 어째서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는 어른이 될 가능성이 줄어들었음에 나는 지금도 감사한다. 

 

 그러니까 대학은 중요하지만, 다들 그 중요함에 눈이 멀어 소중한 걸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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