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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솔 Aug 29. 2022

명품 하나 없이 지역유지의 딸이라고 소문나는 법

차라리 '9급 아니면 할 거 없는 애'라고 욕을 하지 그랬어요



 나의 부모님은 7  아버지의 고향으로 귀농을 하시기 전까지 쭈욱 생계형 자영업자로 지내오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쯔음부터 형편이 괜찮아졌으나  전까지는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 살던 적도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렇듯 우리 부모님도 자식들이 당신의 고된 인생을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셨다. 그래서 학교 다니는 내내 사고 한번  치고 성적도 제법  받아오는 우리 자매들을 많이 자랑스러워하셨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얘기고 자라오면서 아버지에게 좋은 얘길 들은 기억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지만.





 공무원을 면직하고 3개월 정도가 났을 무렵 나는 같은 주민센터에서 일하며 친해진 A 만나 식사자리를 가졌다. A 2  결혼을 했지만 나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축의금도 보내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 나는 그날 A에게  선물을 준비해갔다. 품목을 밝혀보자면 그건 러쉬의 배쓰밤 선물세트였다. '  주고 사긴 조금 아깝지만 누가 사준다면 엄청    있는 ' 선물을 고르는 나의 기준이었기 때문에 신혼집에서  살림을 시작한 A 새로운 욕실도 한껏 즐기기를 하는 마음에서였다.


 우리는 A의 차를 타고 A가 봐둔 일식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내가 농담조로 이 말을 던졌다. '나 잘 안 풀리면 다시 공무원 하려고요. 우리 부모님 지금 B군에 계시니까 거기로.' 그러더니 A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런 답을 내놓았다. '그래, 너희 아버님 지역 유지라며~' 내가 그 얘길 듣자마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벙찔 수밖에 없던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 내가 들은 게 우리 아버지에 관한 얘기가 맞는지 믿을 수가 없어서.





https://brunch.co.kr/@eedbd8465764447/14


 나는 3주 전에 브런치에 <자취러 9급 1호봉이 1년에 1,000만원 모은 후기> 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공무원'과 '돈 모으기'라는 최강 어그로 조합이 뭉친 글이라 그런지 감사하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정보글이라기엔 너무 기본적인 방법들만 나열되어 있어 쑥스럽지만, 아무튼 위의 글에서 나는 내가 돈을 모을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로 '옷을 사지 않은 것'을 꼽았다. 일하는 동안 나는 같은 옷을 돌려입고 또 돌려입었다.


 A가 한 얘기로 돌아가서. A가 '너희 아버님 지역 유지라며'라 말한 것으로 보아 A는 어딘가에서 헛소문을 듣고 나에게 전해준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억하심정을 품고 헛소문을 퍼뜨린 누군가는 분명 나와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닐 것이었다. '지역 유지'라는 표현으로 봤을 때 우리 부모님이 계신 곳이 나의 근무지였던 C시가 아니라 B군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명품은커녕 항상 싸구려 티가 팍팍 나는 옷만 입고 다니던 내 모습도 기억을 하고 있을 텐데, 세상 어느 지역 유지의 딸이 이렇게 추레한 모습으로 다니냐고 나는 따져 물을 수 있으면 따져 묻고 싶었다.


 소문이 퍼진 경위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1) 누가 공무원을 그만뒀대.

(2) 근데 걔네 부모님이 지금 시골에 계신대.

(3) 그럼 집이 잘 사니까 그만둔거겠네?

(4) 아버지가 지역유지는 되나 봐!


 아버지가 지역 유지 정도는 되어야 공무원을 그만둘  있다는 확증편향에  사는  딸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나의 행색 따윈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테고. 나이는 20대에 출신학교도 나쁘지 않은 나라는 사람의 신상도 '공무원을 그만둘  있는 이유' 전혀 고려되지 못했을 테다.


 결국 이로부터 내가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얼마나 9급 공무원 아니면 할 거 없는 애로 보였길래, 차라리 우리 집이 부자라 그만둘 수 있던 거라고 믿고 싶었던 걸까, 하는.




 나는 아직도 그 소문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 조직에선 내가 막내뻘이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그 사람은 나보다 연상일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일 텐데, 본인보다 더 어린 사람을 상대로 그러는 게 부끄럽진 않은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만 나는 A에게 섭섭하기는 했어도(그날 내가 사간 선물의 진심도 왜곡되었겠지?) A를 탓할 수는 없었다. 입장을 바꿔 내가 A였더라도 직장에서 그런 팝콘 같은 소문이 떠돌았다면 단번에 믿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의 선택을, 성취를, 100퍼센트 그 사람의 환경에서 기인한 것이라 속 편하게 믿으며 열등감만 키워가던 못난 사람이었으니까.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사람이 되어보니 나 또한 타인의 굴뚝에 연기를 때며 그 사람을 상처입혀 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누군가에게 따라붙는 '금수저라 걱정 없이 편하게 사는 애'라는 소문이 진실일지라도, 이에 대해 파고들어가는 게 스스로에게 무슨 이득일까. 내가 비로소 타인의 삶에 너무나 많은 시간과 감정을 쏟아왔단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지역유지의 '이라는 헛소문의 근원지일 누군가에게 동정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는 내가 공무원을 그만둔다는 이야기에  미래의 안녕을 빌어주기보다는, 나의 속마음을 듣고싶어 하기보다는, 적절치 않은 방법으로 부러움을 해소하는 길을 택했다. 물론 나도 그의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를 정말 순수하게 골탕먹이고픈 마음에 작정하고 헛소문을 퍼뜨린 걸 수도 있겠지.


 허나 나는  의도를 추측하진 못하겠어도 이것만은 확신할  있다. 그건 스스로만 좀먹는 행동일 뿐이라는 것을. 내가 부러워서 그랬든, 내가 싫어서 그랬든, 그런 방식으로 나를 폄하하고 다니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되느냐고.




 나는 요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정확히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타고난 이들을 부러워하는 일엔 끝이 없음을 알고 이 세상에 마냥 부러워해도 되는 인생을 지닌 누군가가 없음을 알아서 관심이 없어졌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 인생의 긍정적인 변화는 '남 생각'이 아닌 '내 생각'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집이 잘 살아서 내가 9급 공무원을 관뒀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떠한 해명을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그걸 믿을지 말지는 본인의 선택이고 헛된 소문에 패배의식을 느끼는 것도 본인이 감당해야할 몫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이제 누가 집이 잘살든 말든, 그래서 직장을 그만뒀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살아갈 계획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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