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섬 우체국 집배원이 전하는 편지
반복에 무료함 실정을 느끼는 날이면 이유 없는 짜증도 함께 생긴다. 애써 갱년기라 그렇다고 달래보지만 근거 없는 생각은 빨리 사라진다.
5년 뒤에 나는 어떤 모습을 꿈꾸는가? 꿈꿀 여유도 없다면 오늘을 살아 내보는 것도 방법이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 내볼까? 모든 것이 나의 생각과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먹고 살 곡식이 고구마 밖에 없었다는 욕지는 지금도 고구마가 유명하다. 우체국 일이 끝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구마 밭에 산다.
고구마 살수 있냐며 지나가던 등산객이 묻는다. 택배로 보내 주겠다며 주소를 주고받고, 캐는 일에만 온 힘을 쏟아 낸다. 이시기는 부모님도 돌아가시면 안 된다는 투박한 섬 말투는 자연이 주는 섭리에 살아가는 법을 끼어 맞추려 애쓰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 들면 골병 밖에 남는 것이 없다지만 자연이 주는 만큼 받는 것이 익숙해져 있는 농부에겐 남는 장사에 억울함뿐이다.
매번 새로운 종자에 대박의 꿈을 더하는 것이 희망이다.
첫사랑을 다시 만나 고구마 농사꾼이 되기까지 35년 세월이 흘렀다. 여기 섬은 바람도 제주 못 지 않게 많이 분다. 고구마 농사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해 새 품종 고구마 이름이 35번이다. 이름의 숨은 뜻도 모른 체 이집 저집 생산 출하를 한다. 배고파 먹던 고구마가 맺어준 인고의 시간 35년이 35번으로, 욕지농부가 배불리 먹자는 의미를 담아 새 품종 번식에 앞장선 열정이다.
똑같은 품종을 도시가 아닌 이 섬에 심어면 맛이나 컬리티가 도시 것들과 비교가 안 된다. 이유는 자연 환경이다.농부의 손길은 두 번째다.하지만 대량생산 문제는 기대할 수 없다. 비탈진 언덕 밭은 암반 위에 흙들이 부식되어 덮어져있다. 도시는 평지에 기계화 생산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가격도 당연히 쌀 수밖에 없다.
작은 양의 생산이지만 높은 가격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농기계 혜택은 멀리한 체, 사람 손 ‘수제’라는 말이 딱 맞다. 이고된 일들을 요즘 젊은이들은 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생각엔 노동 대가가 턱없이 맞지 않는 계산미달이다. 도시 사람들의 냉정한 잣대는 욕지도 고구마 생산이 쉽게 많이, 언제까지 생산될 줄 안다. 한 시대가 지나가면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 넓은 비탈진 밭에 농사꾼이 되어 욕지고구마의 명맥을 잊고 있는 지금의 나를 들여다본다. 생산은 적고 가격은 비싸고 도시사람들로부터 이미 외면 받고 있다.
“힘들게 농사짓는 목적이 돈 벌려고 하는 것을, 남의 입에 고생을 기부하고 싶지 않다”
“명맥을 잇는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돈은 잠시 잘 벌지 몰라도 명맥을 잇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밤을 세어도 끝이 없는 욕지농부들의 토론이다.
이곳에 살아남기 위해선 끈임 없이 고구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집배원아저씨는 고구마 박사라고 할 만큼 풍부한 실패의 경험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농어촌진흥청 연구실 박사들과 함께하는 고구마연구는, 농번기가 끝나면 다음해 심을 새 품종 연구에 초심으로 몰두 한다. 신품종이야 말로 새 생명이다. 우리나라 농어촌 박사님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해마다 우성인자를 뽑아 새로운 품종을 개발한다. 그 지역에 맞는 안착만이 개발과 연구의 목적이다.
새 품종 고구마 이름이 왜 35번인지 아는 사람이 없어도 된다. 아니 몰라도 된다.
욕지도 섬 ‘고구마’의 명맥이 후대 계속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바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삶도 계획적 이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짹각짹각’ 시계바늘이 거침없이 돈다. 그 시간에 맞춰 무언가 하지 않으면 도태 되겠다는 압박이 쉼 없이 조여 온다. 일주일 무엇을 하든 정신없이 계획대로 육신을 움직여 일들을 한다. 주말이면 지친 육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휴식을 갖는다.
섬살이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자연이 그 계획에 맞게 허락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쉰다. 바람이 불어도 쉰다. 햇볕이 너무 강해도 쉰다. 그리고 추우면 쉰다.
몸이 피곤하다고 내 맘대로 쉬었다간 먹고사는 일을 망친다. 하늘이 허락해야만 쉴 수 있다. 그래서 부지런하다는 소리를 듣나 보다. 섬사람들은 참 거칠다. 하지만 정은 많다. 그리고 계산적이지 않다. 저녁에 씻고 잠만 잤는데 다시 아침에 씻는 것을 거부하는 것, 농민이 흙 묻혀 다녀야지 도시 나갈 때 깨끗하면 된다는 섬사람 집배원아저씨 말에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는다.
저녁 늦은 시간 씻고 잠자리 들기가 무섭게 새벽이면 밭으로 나가 일들을 한다. 땀범벅이 되어 겨우 옷만 갈아입고 우편배달을 간다. 여유롭게 지체할 시간도 없다. 배달이 끝나면 다시 밭으로 간다. 겨울이 아니고서야 이런 날들이 일상이다.
휴식이라고 정해주는 사람도 계속 일하라고 부추기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오로지 자연에 길들여져 쉬고 일하고 반복 할 뿐이다. 나에게 만족한 삶이 아니라도 크게 상관없다. 하루 열심히 일하고 걱정 없는 삶이면 그것으로 된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다.
매순간 감사함이 행복의 일상이 되도록 나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노력 없이는 어느 무엇 하나 그저 주어지는 것도 없다는 나의 경험 속 진리다.
비움이 아름다운 것은 그 비움의 목적이 채움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비우다보면 채우는 것을 까먹어 버린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