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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어두었던 걱정

by 날마다 하루살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작은 아이의 다리는 휘어져 있었다. 흔하게 말하는 O다리 형상이었다. 그런 모양새로도 어찌나 힘차게 아장거리고 뛰고 하는지 마냥 귀엽고 신기하기만했었다. 우리 엄마의 다리가 휘어진 것을 그대로 유전받았다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아니 우리 엄마를 닮은 부분이 있어 이상하게 흐뭇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난 엄마를 너무 좋아했다. 엄마를 닮는다는 것은 무엇이라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 때 어느 엄마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이의 다리가 많이 휘어져 보인다며 병원을 찾아보라고 얘길 건네주었다. 그 뒤 다니던 소아과 선생님께 상담을 해보니 두 돌 되기 전까지는 지켜보는 게 원칙이라며 지켜볼 것을 권해주셨다. 정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아이는 자랐고 소아과는 문을 닫아 다른 병원으로 다니게 되었는데, 새로 옮긴 병원 선생님께서 큰 병원을 찾아가 보라고 권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놀랐지만 병원엘 가야 방법을 찾을 수 있겠거니 하여 근처 대학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아이는 서너 살 쯤이었고 병원이란 낯선 곳에서 피도 뽑고 여러 촬영 기계들에 둘러싸여 공포의 시간을 맞게 되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움직이지 못하게 아빠가 잡고 있어야 했었는데 그 공포심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방사선 촬영 기사님까지 어른 장정 둘이서 붙어있었는데도 원하는 촬영을 다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몸부림과 절규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여러 검사를 마치고 교수라는 사람은 자세한 설명은 뒤로하고 대뜸 포스트잍에 "브라운트병"이라고 적어주며 궁금하면 인터넷에 검색해 보라는 말도 안 되는 소견을 전해주었다. 그 교수의 태도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 않다. 너무도 기가 막힌 상황이었지만 나의 아이를 치료해 줄 수 있는 분이었기에 다음 예약을 정하고 돌아왔다. 다리가 휘는 각도가 심해지면 수술까지 해야 한다는 걱정스러운 소견을 들었고 좀 더 지켜보자고 하여 1년마다 정기 검사를 받아오던 차였다.


병원 가는 날이면 아이가 얼마나 울어댈까.. 결과는 괜찮을까.. 여러 복잡한 심정으로 그 막돼먹은 교수를 만났다. 통증은 없고 달리 불편한 점이 없어 보여 계속 지켜보는 소견이 이어지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우리는 별문제 없겠거니 안심하게 되었고 코로나로 병원 방문 절차도 복잡하여 정기검사 날짜를 건너뛰게 되었다. 아이는 초등학교를 입학했고 별문제 없이 잘 생활하고 있는 듯보여 우리에겐 잊히는 문제로 여겨지고 있었다.


문제는 지난여름 방학 (그 어린 꼬맹이는 초3이 되어 있었다) 즈음부터였다. 조금씩 걸을 때 절뚝이는 모습이 보였다. 며칠 그러다 말기를 반복했다. 마음이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혹시 병이 진행된 것일까.. 불안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엄마, 괜찮아. 많이 아프지 않아~"


아이의 말과 그러길 바라는 나의 바람이 맞물려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다 말기를 반복하던 것이 계속 "그런"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었다. 나의 눈을 의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에서도 미세하게 절뚝이는 모습이 계속 보였고 증상이 어떤지 물어보니 오른쪽 다리가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이번 겨울 방학이 지나기 전에 병원을 다시 방문해 보기로 했다.


전화로 예약을 하고 방문 절차를 설명 들었다. 3차 병원 방문하려면 진료의뢰서를 지참해야 한다고 한다. 지난 몇 해 동안 관련 규정이 바뀌었나 보다. 좀 번거롭지만 따르지 않을 수는 없다.




몇 해전 그 어린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드나들던 나는 지금의 나보다는 젊고 걱정이 많지 않았던 거 같다. 병원에서 또 다른 어떤 소견(교정이든 수술이든)을 들은 것도 아닌데 난 벌써 겁을 먹고 있다. 괜찮을 줄로 마음 놓았다가 다시 문제가 생기니 더 큰 문제로 인식되어 그런 거 같다. 아이와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이었으면 좋겠다. 다음 주엔 근처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아야 하고 그 다음 주엔 예약된 큰 병원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일상적이지 않을 일상이 예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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