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하루살이 Jul 10. 2024

특별한 선물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초입이었다. 같은 반 친구에게서 생일 초대를 받았다며 작은 쪽지를 하나 보여줬다. 삐뚤빼뚤 귀여운 글씨로 진짜 초대장이 작성되어 있었다.  나이 마흔. 느즈막에 얻게 된 아들의 모든 인생 처음을 리도 다 같이 함께 했다.


'요즘은 이런 곳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구나~~'


장소가 적혀 있었는데 집이 아니라 키즈카페 같은 장소였다. 늙은,  나이 많은 엄마는 이 낯선 문화에 어색함을 먼저 지워야 했다.

초등학교 1학년들의 생일 파티니 엄마들도 함께 모이는 가족 파티였다. 내겐 낯선 풍경이었지만 적응해야 했다.


그 친구 생일 파티가 좋았는지 본인도 생일 때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단다. 우리 큰 아이의 생일은 한 겨울 그로부터 약 한 달 남짓 후. 딱 3명만 초대한 4 가족이 모인 단출한 식사 자리였다. 난 내 나름의 파티를 마련했다.


아이들을 위한 돈가스를 준비하고 어른들을 위한 주꾸미 소고기 샤브샤브도 준비했다. 날짜에 맞춰 예쁘게 담을 수 있는 깔별 토끼그릇도 주문했다.

집안 분위기도 파티 기분 나게 꾸며야 했다. 가렌더도 미리 주문하고 케이크를 꾸밀 양초 및 이름표도 준비했다. 모든 과정을 아이와 함께 했다.

 기분이 업 될 수 있도록 인사말도 써서 붙였다.

"와.줘.서.고.마.워."

생일 당사자는 어떤 맘일지 모르겠지만 내 맘을 전하고 싶었다.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다고.

파티 전날 한 자 한 자, 가족 모두 같이 쓰고 꽃 장식까지 더해서 집안 한쪽 벽을 장식했다. 새롭고 야릇한 기분은 생일 전날부터 시작되었다. 파티든 여행이든 준비과정이 더 설렌다. 그 설렘을 우린 만끽했다.


좋은 장소에서 파티를 해주진 못해도 좁은 집에서 우리들 만의 특별한 생일 파티가 준비되었다.


"우린 뭐 이렇게 살아요~ 집에서 하는 파티라 좀 그렇죠?"

나의 수줍은 인사말에 친구 엄마가 말한다.

"아니에요. 무슨 대단한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말도 이쁘게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집 남자가 이끄는 대화에 다들 빠져 들면서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우린 첫만남이었던 그 자리에서 서로의 결혼 스토리를 공개했고 정기 모임이라도 만들어야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그날은 아이들을 위한 자리였지만 그 자리에 함께 모인 두 명의 엄마와 더욱 가깝게 지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도 우리 시댁에서 주꾸미를 가져오는 날이면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고 둘째 녀석 생일에도 형아 생일 파티 때 그 멤버를 초대해 또 시간을 보내는 등 급격히 가까워졌다. 가끔 만나서 샤브샤브도 해 먹고 내가 준비해서 조금씩 나눠줬던 우리 외갓집표 오징어전이 맛있다며 하루는 요리 강습을 열기도 했다.

그중 가까이에 살았던 ○○이네는 포도 농사를 크게 지었는데 때가 되면 한 보따리씩 보내줘서 아주 잘 먹기도 하고, 한 밤중에 김밥이며 연어초밥이 날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각별한 사이로 지냈었는데 이들 교육 문제로 또 직장 문제로 두 집안이 각각 청주로 대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많이 아쉬웠지만 이별을 맞았다.

난 우리 집에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담은 액자를 정성껏 만들어 각자 이사 갈 때 선물로 주었다. 예쁜 추억이 두 아이의 책상에 놓여 있을 것이다. 한 이는 그렇다고 들었다.


그 후 청주로 이사 갔던 ♤♤엄마는 어느 해 추석에 남편이 직접 담근 술을 들고  가족이 찾아와 명절 인사도 나누었다.

"새환이 아빠랑 의남매라도 맺어야겠어요"

라는 기분 좋은 인사말도 전해주고 오랜만에 그간의 회포도 풀었다.


오늘은 포도밭주인 ○○이 아빠가 찾아왔다.

"좋은 건 아니에요.  영동 살 때 ○○이 엄마가 엄청 힘든 시기였는데 새환이 엄마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꼭 전해드리래요"

손에 들려있는 포도가 보였다.


포도를 받아 들고는 기쁘다.  유난히 포도를 좋아하는 둘째 녀석이 좋아할 걸 생각해서도 기쁘지만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더 기쁘다. 마음이 담긴 선물은 그래서  특별하다. 그게 값이 비싸고 좋은 물건이어서가 아니다.


난 오늘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고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도 받았다.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사는 세상]




작가의 이전글 진단평가 결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