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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Aug 29. 2024

아직까지는 순항이야

2011. 7. 21  /  2011. 8. 4

~2011. 7. 21~

이 날은 <산모 기본 검사 + 자궁암 검사>를 했다. 자궁암 검사라길래 조직이라도 떼어내면 아프지 않을까 했는데 아프진 않았다. 나중에 님이(간호사인 여동생)에게 물어보니까 면봉으로 조금 긁어내는 정도란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한동안 멈췄던 분비물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며칠간 또다시 걱정스러운 날들이 지나갔다.

~2011. 8. 4~

처음으로 본 복부 초음파.
선생님은 복부로 보면 아직은 선명하지 않다며.
날 안심시키는 듯했다.

우리 서방은 벌써 코가 오똑하다나?


기분 좋은 날 들이 지나갔다. 남동생과 병원 가는 날엔 아버님께서 병원에 미리 나와 날 반겨 주시기도했다. 미리 병원 대기실에 오셔서 빵 같은 것을 한 봉지 챙겨서 주시곤 진료 마치고 나오면 간단히 정황을 듣고 가셨다. 짧은 만남을 위해 걸음을 하신 것이다. 흡족한 마음이 아버님을 움직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집안에서 심하게 반대하는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 때문인지 시부모님과도 사이가 어색했었다. 어색함이 가시기도 전에 첫 번째 유산을 경험했다. 늦게 결혼한 맏아들의 유산 소식. 둘째 세째 아들들에게서는 손주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토록 바라던 맏아들에게선 유산 소식이라니. 그분들의 실망감은 헤아릴 수 없었다. 숨길 수 없는 실망감은 내게도 전해져 마치 내가 뭘 잘못이라도 한 듯 자꾸만 시어른들 앞에서 작아졌다. 그런 분위기에서의 임신 소식은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임신 기간 아버님 어머님께서 열어주시는 마음을 살짝 받아들였다. 조금은 편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남편과 같이 병원에 가는 날엔 대학병원 근처 시댁에 들러서 점심을 얻어 먹고 돌아오기도 했다.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거실 바닥에 튀는 기름 때문에 집에서는 후라이 팬에 구워서 먹다 보니 바로바로 구워서 먹는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여 아쉬웠었다. 시댁에 들러서 점심을 얻어 먹고 올 때는 어머님께서 매번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두고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게 해 주셨다. 시댁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 날은 그래서 좋았다. 금방 구운 삼겹살을 먹을 수 있어서.

 차려주는 밥 먹으니 좋았고 내가 조금 더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대접을 받으니 마음도 한결 편해졌었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편한 성품들은 아니셔서 마주할 때마다 어려운 기운이 흘렀다. 특별히 필요한 말 말고는 대화도 없었는데 임신 소식 이후엔 대화의 소재가 부드럽고 다양해진 것이다. 나를 라보시는 눈빛도 부드러워지셨다. 이래저래 내겐 행복한 날들이었다. 남편에게 난 계속 임신 중으로 살아야 할까 보다고 뼈아픈 농담을 건네기도 했었다.


행복한 시간들은 계속 이어졌을까.

다음 장을 또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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