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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였을까

옥수수 선물

by 날마다 하루살이

오전에 일어나면 현관문부터 열어젖힌다. 집안의 모든 문을 열어두고 바람이 조금이라도 더 잘 통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오전부터 에어컨을 틀 수는 없으니 오전 시간은 이렇게 열어두고 선풍기에 의지해 생활한다.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미안하지만 오전에는 선풍기로도 견딜 만하다.


내가 공부하는 시간 (나는 집에서 방 한 칸 내어 수학 개인 교습을 한다) 동안 우리 아이들은 보통 안방이나 거실을 드나들며 조용히 자신들의 시간을 보낸다. 보통은 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지내는데 공부방이 적당히 분리되어서 공부에 방해가 되진 않는다. 혹시 거실에서 소음이 크게 들리면 주의를 주고 학생과 서로 이해하면서 공부를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땐 폰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떨어지려 하지 않는 녀석을 폰에 맡기고 공부를 했다. 큰 아이 어릴 적엔 아빠가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나가 한 시간을 넘게 산책시키고 돌아왔지만 작은 아이는 아빠를 따라나서지 않아 폰에게 육아를 부탁하게 되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 집에선 폰 보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럽게 되었다.


녀석들은 폰 삼매경에 빠져있고 나는 수업 중인 오전 시간이었다. 연속 세 명의 수업을 하느라 정신없는 세 시간을 보낸 후 나와보니 거실에 검은 봉지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에어컨을 켜지 않는 시간엔 현관문을 열고 지내다 보니 문 여는 소리도 없어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살짝 열어보니 옥수수가 들어 있다. 금방 삶아냈는지 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맛난 냄새가 너무 유혹적인 옥수수! 근데 도대체 누가 이걸 조용히 두고 갔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방안에 있어서 누가 왔다 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폰 들여다보느라 여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명의 후보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강력한 1번 후보는 아래층에 사시는 친정고모이다. 아니시란다. 그럼 그렇지. 우리 고모가 소리 없이 조용히 놓고 가실 분이 아니지~ 2번 후보는 옆집에 사는 ○○엄마이다. 역시 전화해 보니 아니란다. 그도 그럴 것이 낮시간엔 포도밭에 일이 한창 많아 집에 있을 시간도 아니다. 그렇다면 3번 후보 사촌 동생? 전화해 보니 아니란다. 세 명 말고는 내게 이런 친절을 베풀 사람이 없는데 이상하고 모를 일이다.


도대체 누구일까. 고마운 옥수수를 받아 들고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맛나게 받아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지 않고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일단 옥수수는 한 개만 남겨두고 알알이 타서 냉동시켰다. 일 마치고 온 남편에게 냉동시키기전에 맛보이기 위함이다. 냉동시켜서 밥 할 때 한 줌씩 넣어 먹으면 톡톡 터지는 옥수수 알이 별미이고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 작은 아이의 배변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옥수수가 생기면 언젠가부터 해 오던 습관이다.

우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디에 계신가요. 우리 집에 옥수수 두고 가신 분요. 간단히 문자라도 넣어주시지 그리 아무 말도 없으시니 감사 인사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네요. 보내주신 옥수수는 맛나게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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