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름이 지나가는 흔적

by 날마다 하루살이

여름 햇볕이 이렇게 강렬한 줄은 몰랐다. 결혼 전과 달리 결혼 후엔 집안에 필요한 작은 물건 하나하나 나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게 되었다. 형광등도 깜빡이면 사야 하고 수도꼭지도 갈아야 하는 일도 생기고 그릇도 깨지면 사야 했고 후라이팬도 때가 되면 갈아야 했다.

그 품목 중에 신기하게 내 뇌리에 박힌 것이 있는데 바로 빨래집게이다. 이 단단한 플라스틱이(처음 살 땐 매우 튼튼해 보임) 뜨거운 볕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받다 보니 삭아서 부서지는 것이었다. 고장 나서 못 쓰게 되는 전자 제품이나 닳고 닳아서 새로 사게 되는 옷 가지와 다를 게 뭐가 있다고 이 빨래집게가 부서져 쓸모없게 되는 일이 이리도 색다르게 느껴졌을까. 아마도 '플라스틱'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결코 부서지지 않는 소재?라고 잘못 생각했었나 보다.


플라스틱이 삭아서 새로이 집안 물건을 바꾸게 되는 일 중 또 하나가 빨래 바구니이다. 커다란 바구니는 빨래를 옥상에 널어두려고 옮기거나 또 다 마른빨래를 걷어올 때 담는 용도로 쓰인다. 우리 집에선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처음 바구니가 망가졌을 때 어디서 사야 할지 망설였었다. 다행히 집 근처에 적당한 마트가 있어서 살 수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게 참 많구나.. 플라스틱도 삭아서 버릴 수도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니...


얼마 전에는 결혼할 때 이 집에 살게 되면서 창문마다 설치한 블라인드 손잡이의 플라스틱이 망가졌다. 똑같은 소재로 다른 방에도 같이 설치했는데 유난히 공부방의 것만 빨리 삭아 버렸다. 처음 설치를 부탁했던 커튼집에 다녀왔다. 아직도 가게를 열고 계심에 감사했다. 주인아주머니께서 가게 일을 접는 날이 오지 않길 바랐다. 플라스틱이 삭는 다는 것을 알게해준 세번째 물품이었다.


빨래집게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트에 가면 그 색깔만큼 다양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잘못 샀다가는 손에 익지 않은 각도로 쓸 때마다 불편을 겪어야 한다. 지금 삭아서 버리는 빨래집게는 내가 잡기에 편하고 손에 익어서 매번 구입하던 것인데 어느 날 마트에 봤더니 다른 종류만 있어서 다른 것을 집어 왔는데 쓸 때마다 약간의 불편함이 좀 거슬린다. 내가 좋아하는 각도와 그립감! 그 작은 물건에도 내가 마음을 두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 익숙함이 몸에 베면 너무 편리하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지만 작은 차이는 매번 확인하고 꽂아야하는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해서 매일 쓰는 물건을 더 신경쓰고 고르는 이유이다.


물건 하나에도 내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런 물건과 이별하는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얼마 전에도 신혼 때 구입한 반찬 그릇 하나가 깨져서 버리게 되었는데 어찌나 아쉽던지! 그걸 고를 때 설레였던 내 마음까지 버려지는 것 같아 더 아쉬움이 컸다.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겠지. 익숙한 것도 때가 되면 보내줘야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빨래집게를 보면서 느낀다. 그동안 수고 했다. 빨래집게야~

해마다 요맘 때 이런 일이 잦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제일 먹고 싶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