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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기를 기다리다

카레 만드는 여자

by 날마다 하루살이

큰 아이가 말라깽이다. 나도 어릴 적 말라깽이였는데 유전인자 때문인지 너무 안 먹어서 발육이 안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유난히 안 먹던 아이였다. 신생아 시절에도 인큐베이터에 있던 아기들 중에 가장 작았다. 신생아 실을 나와서 집으로 왔을 때에도 분유를 너무 적게 먹어서 남편은 요 녀석을 "thirty boy'라고 부를 정도였다. 80ml, 100ml 점점 늘려야 하는 분유량에도 언제나 30ml 정도만 먹고살았으니 부모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안 먹는 나머지 걱정을 쌓아두다가 결국에는 영양상태가 어떤지 대학 병원 가서 검사를 해보기로 했었다.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너무 안 먹으면 발육에 문제가 있을 테니 담당선생님께서는 영양제를 추가로 분유에 타서 먹길 권하셨다. 처방받은 영양제를 넣고 분유를 타지만 먹는 양이 늘진 않으니 계속 걱정되는 상황은 이어졌다. 그 당시 난 알아버렸다. 생명의 신비함을.

"이렇게 조금씩만 먹어도 생명엔 지장이 없구나..."

좋아해야 할지 계속 걱정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자랐고 이유식도 시작하게 되었다.

서툰 솜씨로 만든 이유식을 받아먹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물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먹는 양이 현저히 적었다. 하지만 또 아이는 자라났다. 신기한 일이라 생각했다.


이유식을 먹는 시기가 지나고 밥을 먹게 되면서 먹는 것이 조금 다양해졌지만 입이 짧은 게 변하 지는 않았다. 그나마 먹는 몇 가지라도 먹어주는 것에 감사했다. 그때 주로 먹었던 것이 파리바게뜨의 뽀로로 빵과 삶은 계란, 요플레 정도였다. 거의 주식이라 할 수 있었다. 매일 빵집으로 출근했고 요플레도 떨어지지 않게 신경 썼다. (요플레통은 먹고 깨끗이 씻어서 볼링 놀이를 하기에 좋았다.) 요 몇 가지 먹는 단계를 벗어나자 '햄'이라는 제품을 먹게 되었는데 역시 거의 주식이 되다시피 했다.


주먹밥을 해서 바깥으로 산책을 일부러 나가기도 했다. 집에선 안 먹으니 돌아다니면서 입에다 쏙쏙 넣어주면 그나마 받아먹었다. 다른 집 애들은 먹을 것을 보면 좋아라 하고 달려드는데 우리 아이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어서도 아침은 거의 먹지 않고 보냈다. 그러더니 한 4학년쯤부터는 가끔 아침을 먹고 가기 시작한 거 같다. 그러더니 6학년이 된 요즘은 꼭 챙겨 먹으려고 한다. 신기한 일이다.

언제 한번 카레를 먹기 시작했는데 아침이면 카레를 찾는다. 간편하게 먹기에 좋았나 보다. 나도 바쁜 아침에 차려주기 간편해서 더불어 좋다. 요즘 내가 떨어뜨리지 않고 냉장고를 채워두는 메뉴가 되었다.


여러 가지 넣지도 않는다. 당근, 양파, 새송이 버섯, 돼지고기 이렇게 네 가지만 넣고 끓인다. 불 앞에 오래 있으면 힘드니까 재료는 될 수 있으면 작게 썰어서 조리한다. 좀 볼품없어 보이지만 내게는 최선의 선택이다. 가끔 연근을 넣으면 왠지 건강식을 먹는 기분도 든다. 이렇게 한 번에 잔뜩 끓여두면 그냥 며칠 아침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

요즘은 유난히 불 앞에 서 있기 힘든 계절이다. 어제는 야채를 더 잘게 써는 내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지 않던 녀석은 요즘 때가 되면 배가 고프다고 말을 한다. 녀석이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찾는 일마저도 내겐 신기한 날들이 있었다. 그 정도로 먹는 것에 관심 없던 녀석이 요즘은 동생에게 이거 먹어봐라 저거 먹어봐라 잔소리를 한다. 난 속으로 웃는다. '너도 못지않았다 요 녀석아~'


그 당시 걱정거리였으나 지금은 걱정거리가 아니다. 둘째 녀석도 하루에 한두 끼 정도 먹고 산다. 물론 과자나 포도나 복숭아 통조림이든 다른 먹거리를 먹으니 걱정은 많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최대 강적 큰 녀석을 겪어 봤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잘 먹게 되는 시기가 오더라. 괜히 먹는 거 가지고 실랑이하지 말자. 어떤 일이든 자연스러운 게 좋지 않은가. 엄마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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