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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Sep 12. 2024

너의 성별을 알게 된 날

2011. 9. 2.


~2011. 9. 2~

오늘은 ○○○ 교수님 (기형아 검사 담당) 진료다. 예전에 첫 수술해 주신 분인데 , 날 기억할 수 있을까?

초음파실에 누워 있었는데. 선생님이 먼저 인사해 주셨다.
"오랜만입니다."
날 기억하고 계신 걸까 아님 차트를 보고 자신의 수술 기록을 봤기 때문일까.

암튼 선생님은 조심스레 초음파를 보시면서 이것저것 설명하시다가,
"아기가 아빠를 닮았네요~"
라고 하신다.
우리 서방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데.. 라며 생각하다가 순간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확인차 물었다.
"아들이란 뜻이에요?"
"네~ 아빠가 아주 좋아하시겠어요."
라시며 무언가 계속 보여주셨다.
난 또 혹시나.. 해서,
"그게 혹시 성기인가요?"
했더니
"아직은 작지만 맞습니다~"

순간 좋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울서방이나 아버님, 어머님... 좋아하실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하니. 너무도 잘된 일 같기도 하면서, 내가 딸을 낳아서 그렸던 그림들이 좀 멀어진 서운함이 밀려왔다. 나의 '소소한 재미'가 날아간 것이다. 하지만 울서방이 기뻐할 걸 생각하니 좋기도 했다.
녀석이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도 보았다.

예상대로 우리 서방은. 엄청 좋아했다. 겉으론
"아들보다도 건강하다니까 더 좋다"란다.

<며칠 후>

지난번 메모에 적어두지 못한 내용이 있다. 난 사실 딸이든 아들이든 감사히 받겠노라 했었다. 하지만 딸이라면 더 좋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치만 그 실망감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많이 섭섭했다.

그로 인해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부모마음..!
자식에 대한 기대를 접는 연습..
앞으로도 마음 접을 일들이 엄청 많아진다고들 한다. 뜻대로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받아들이는 연습을 지금부터 난 시작했다. 실전에 잘 적용될 진 잘 모르겠지만 날 먼저 잘 다스려볼 작정이다.


아들일지 딸일지 초미의 관심이었다. 시댁 어른들 포함 남편까지 아들이길 바랐지만 난 딸을 낳아서 예쁜 원피스를 입히고 손잡고 다니는 즐거운 상상을 했었다. 아장아장 폴짝폴짝.. 그럴 때마다 펄럭이는 치맛자락이 얼마나 이쁠까 상상하면서... 하지만 그냥 바람일 뿐 순간 지나가는 해프닝이었다. 그 당시 잠깐 가졌던 바람이었다.


세상일이 모두 뜻대로 되지도 않거니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꼭 나쁜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겐 지금 너무도 사랑스러운 두 아들이 태어나 우리에게 온갖 기쁨과 행복, 여러 가지 충족감을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정말이지 아들이든 딸이든 문제가 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게 되는 존재임엔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작은 생명에게 사랑을 주면서 소중한 시간을 공유하다가 결국 지금처럼 커져버린 마음을 마주하는 것엔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지 않았을까.


선생님은 성기가 잘 보이는 사진을 따로 찍어서 주셨는데 얼마뒤 추석 명절에 모인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게 된 우리 아기는 우리 부부에게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기다림이었다. 삼 형제 중 제일 맏이에게 아이가 없었으니 걱정거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 아기 사진으로 인해 조용하고 좀 무거운 시댁 분위기가 한층 풀리는 계기가 되어 기뻤다. 거의 표정이 없으신 아버님까지 웃게 만들었으니 새 생명은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기대되고 즐겁기만 한 날들은 이어졌다.

다음 장을 또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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