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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Aug 23. 2024

말하지 않는 놈

자전거를 배우다

큰 아이가 얼마 전 자전거가 얼마쯤 하느냐고 물었다. 2-30만 원쯤 할 것이라고 답해줬다. 그랬더니 100만 원쯤 하는 줄 알고 사달라고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원하면 사주겠다고 하고 날씨가 좀 풀리면 사기로 일단락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는 줄 몰랐다. 큰 아이 어릴 적에 집에도 자전거가 있긴 했지만 (산 것은 아니고 누군가 줬던 자전거) 별 흥미를 느끼지 않아서 그냥 처분했던 일이 있었다. 밖에 나가서 잘 놀지도 않는 아이라서 그냥 그렇게 자전거는 우리 집에 잠깐 다녀간 손님으로 잊히고 있었다.


집돌이로 지내던 녀석이 6학년이 되면서 달라졌다. 가끔 친구들을 만난다며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친구들이 집으로 와서 놀기도 하였다. 친한 친구도 없이 혼자인가 싶어서 고민했던 나는 내심 기뻤다. 녀석에게도 가까이 지내는 몇몇 친구들이 있구나! 기뻐할 일이었다.


이번 여름 방학을 보내면서는 저녁 먹을 즈음 어김없이 녀석의 전화벨이 울린다.

"응. 이따 ○시까지 갈 수 있을 거 같아"

거의 매일을 저녁 시간에 나가서 한 9시쯤 들어오는 것이다. 더운데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놀지 친구랑 노는 것이 재밌나 보다 했다.

늦은 시간이니 처음에는 걱정이 되어서 자꾸 전화하게 되었다. 집에서 좀 떨어진 아파트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고 해서 밤길에 혼자서 걸어올 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뭘 했는지 들어올 때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뭘 하고 노는지 묻지 않았다. 단 누구와 놀았는지만 물었다. 어울려 다니기에 괜찮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매번 입에 올리는 친구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가끔 집에 놀러 왔던 아이들의 이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이 잘 맞는 아이인가 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어느 날 오후에 식후 혈당이 안 떨어져서 산책을 한 번 더 나가려고 집을 나섰다. 오후 3시 이후로 건물 그림자가 생기는 길가를 걸으면 그늘이어서 조금은 뜨거운 열기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눈이 잘 안 보여서 가까이 와야 사람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나는 내 눈앞에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두 남자아이가 나란히 자전거를 끌고 나와 길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앞에 아이는 모르겠는데 뒤따르는 아이가 왠지 우리 큰 아이 같은 것이다. 가까이 다가오니 정말 맞는 것이 아닌가!

"아니, ○○~ 이거 자전거는 누구 거야?"

"친구 거요."

"근데.. 너, 자전거 못 타잖아~"

옆에 있던 친구가 답을 한다.

"○○이 자전거 탈 수 있어요. 제가 가르쳐줬어요~!"

"요즘 매일 저녁에 이거 배우러 다닌 거야?"

"네~!"


아니 이런 일이!!!!

몸으로 하는 것은 죄다 어설픈 동작만 나와서 자전거를 사달라고는 하는데 과연 배울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녀석이 3일 만에 탈 수 있게 되었다며 친구가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보통이라면 본인이 처음 자전거를 타게 됐을 때 얼마나 감격하며 자랑하고 싶을까. 주변에 대고 모두에게 떠들어댈 만한 일이 아닌가.

"나, 자전거 탈 줄 알아요. 오늘 성공했어요!!!"

라고 말이다.


참으로 신기한 녀석이다. 그렇게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있을 이야기였다. 자전거를 꼭 사줘야 하는지도 고민했었을 것이다. 조잘조잘 얘기하지 않는 성격이긴 해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그 친구에게 맛난 것이라도 대접하고 싶다. 우리 아이에게 그런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다니! 갑자기 그 아이가 너무 대견하고 이뻐 보였다. 더불어 또래 집단에서 잘 어울려 살고 있는 큰아이에게도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이런 일은 좀 얘기해 주면 안 되겠니. 신기한 녀석과 고마운 친구였다. 조만간 초대해서 피자라도 대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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