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친구 엄마의 소개로 시작된 아르바이트가 여태껏 나의 일이 되었다. 대학 때는 아이의 집으로 방문하여 수학을 가르쳐주었고 대학을 졸업하던 그 해에 수학 개인 교습은 나의 정식 직업이 되었다.
엄마가 대학교 3학년 때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집에서 엄마를 돌봐 드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행복했고 다행이었다. 내가 사는 이곳은 작은 읍단위 도시이고 그 당시 지금처럼 이곳은 학원이 활성화되어있지도 않은 곳이어서 나는 꽤 많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러니까 20살 이후로 계속 수학 과외를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결혼 후 유산기가 있던 때와 첫아이와 둘째를 낳았던 잠깐의 출산 공백기를 빼고는 매일 책상 앞에 있었으니 꽤 많은 아이들이 나를 거쳐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중에는 공부를 잘하여서 좋은 대학에 좋은 직업을 얻게 되는 아이도 있었고 공부가 어려운 아이도 있었다. 요즘 흔히들 학원에서 실시하는 레벨 테스트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공부를 하려고 오는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가르쳤다. 요즘에는 성적 미달이면 학원에서 잘리는 경우도 있다 하니 내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이다. 어찌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를 잘라낸단 말인가.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고 싶은 맘이 나의 기본 생각이다.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에 만난 한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그 많은 아이들을 경험했는데도 적응되지 않는 아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난 근본적으로 화를 잘 내는 성격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다그치는 성격도 되지 못한다. 가령 숙제를 안 해왔다고 하면 혼내는 대신
"그럼 선생님하고 이번 시간에 다시 해보자~"
하고는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 공부할 수 있기를 기다려주는 쪽을 택하고 지금까지 버텨왔다. 다그쳐봤자 공부하지 않는 아이는 소용없고 조용히 흘러가더라도 스스로 하는 아이들은 잘 따라준다. 선생님이 뭘 해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도 오랜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내게 과외 인생 최고의 난제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이 아이는 수업 내용 하나하나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궁금증이란 명분으로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꺾지 않는 아이였다. 나도 힘들고 아이도 힘든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매순간 "왜요?"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은 소모적인 신경전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무엇보다 그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더 힘들어지게 되었다.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공감능력이라든지 인간적으로 기본적인 교감하는 것부터 문제가 있어 보였다.
처음으로 내가 먼저 그만두어야겠다고 맘을 먹게 되었다. 학생 엄마에게 무작정 문자를 남겼다. 만나고 싶다고. 만나서 무슨 얘기든 하고 싶었다. 한 시간을 한 페이지 가지고 씨름하는 일이 허다했다. 나의 상황을 어머님께 설명드리고 공부를 계속할지 그만둘지를 결정하고 싶었다.
일단 만나자는 문자를 넣어두고는 걱정이 앞섰다. 엄마가 괴팍한 성격이어서 오히려 따지고 들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예전에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던 터라 약간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었고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치닫기 전에 멈추고 싶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폰과 돌려줄 과외비를 챙겨 들고 걱정 보따리도 가슴 한편에 들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조심스레 들어선 카페에서 두리번거리는 내게 먼저 다가와 손을 꼭 잡아주시며
"커피는 제가 살게요~"
라시며 한사코 주문하려는 나를 말리시며 커피를 주문하셨다. 꼬옥 잡은 그 손에서 진심이 느껴졌고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전에 나의 마음은 한층 편해졌다.
그 손에서는 '선생님 맘이 어떠실지 제가 다 알고 있어요'라는 마음이 전달되었다. 내가 문자를 보내기 직전에 그쪽에서도 문자를 썼다 지웠다 하셨단다. "선생님께서 너무 힘드실 거 같아서 제가 먼저 연락드리는 게 예의일 것 같았어요"라고 고마운 말씀을 먼저 꺼내주셨다.
엄마가 아이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서로 맘을 열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는 아이가 어릴 적부터 겪고 있었던 문제에 대해 더 넓은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다. 내 입으로 차마 먼저 꺼내기 힘들었던 "상담 치료"도 지금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털어놓으셨다. 어려운 이야기까지 꺼내놓아 주심에 난 더 감사했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부족한 자식을 향한 모성. 모성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간 맘고생도 엄청 많았을 거 같은데 단단하게 다지려고 수없이 닦아냈을 그 마음을 난 헤아릴 수조차 없을 거 같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도 나도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간다. 엄마의 마음가짐을 나도 다시 다져보는 계기가 되었다. 헤어질 때는 미리 준비해서 사들고 온 빵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내가 상처받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집을 나설 때와 달리 집으로 돌아올 때는 좋은 친구를 알게 된 거 같아서 가슴이 따뜻해졌다. 알고 보니 나이도 같았다. 난 이제부터 집 가까이에 친구 한 명이 더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