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개학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제 두 번째 주를 맞았다. 오전 시간이 분주해지는 것은 다른 집들 이야기이다. 우리 집에서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은 큰 아이와 나뿐. 그것도 대부분 간단히 미리 만들어 쟁여 둔 카레를 살짝 데워주면 끝이다. 작은 아이가 아침을 잘 먹지 않으니 간편하게 식사를 마칠 수가 있다. 우리끼리만~
오전 7:30. 나는 큰 아이와 아침을 먹는다. 물론 우리 집 큰 녀석은 식사 시간이 아주~~ 길어서 나는 그 녀석과 상관없이 밥을 먼저 먹고 일어선다. 내겐 중요한 일과를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혈당관리!
"엄마, 운동 갔다 올게~~~"
매일 아침 같은 루틴으로 오전을 시작한다. 아침을 먹으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집 뒤 작은 산을 한 바퀴 돌아온다. 원래 다니던 산책길이 있었는데 방학 중에 한 두어 주 쉬었더니 혈당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조금 더 힘든 코스를 돌아온다.
아담한 산길인데 남편이 같이 걷던 어느 날 '운치 있는 길'이라고 말해주었다. 난 '산책'이란 명분도 포함되어 있지만 혈당을 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나온 것이어서 그런 산책길에 그다지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저 '걸어야만 내가 산다'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서는 그런 여유가 발현되는 것이었다. 그래, 내가 좋아했던 이 남자의 한 부분이었지. 잊고 있던 이 남자의 향기를 한 번 되새기는 말이었다.
그 코스는 아무래도 혼자 걸을 때는 운치 있다기보다 조금 무서울 때가 있다. 그래도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시도하고 있다.
한 바퀴 돌아오면 30분 정도 걸리니까 집에 도착하면 오전 8시쯤이 된다. 어느 날엔 내가 운동 다녀올 때까지 밥을 먹고 있는 녀석을 발견할 때도 있다. 참으로 신기한 녀석이다. 먹을걸 앞에 두고 우찌 그리 여유가 있을 수 있을까. 녀석 먹은 그릇까지 포개어 아침 설거지를 마치면 8:30 집에서 아이들이 학교를 향해 출발하는 그 시간까지 난 자유다.
작은 녀석 치카 독려 한마디만 하면 이제 녀석들이 제 할 일 알아서 하는 나이가 되어서 내가 따로 챙겨줄 일은 없다.
녀석들이 등교하고 나면 걸레를 집어든다. 참고로 우리 집엔 청소기가 없다. 신혼 초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도로 가에 위치한 이층 집의 그 어마어마한 먼지폭탄에 대해 알게 된 후 청소기를 아예 치워버렸다. 청소기 거름망을 매일 청소해야 하니 더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걸레질 한 번으로 깔끔하게 청소를 마친다. 그럼 9:30쯤 되는데 식후 2시간 혈당을 체크하는 시간이다.
오~~~ 제발~~~ 간절한 바람을 가슴에 품고 매일 하루 세 번씩 혈당을 잰다. 들쑥날쑥하지 않았던 때는 하루에 한 번씩만 체크했는데 요즘 방학 시작 이후로 혈당이 요동치는 바람에 매번 체크하게 되었다. 매일 비슷하게 먹고 비슷한 코스를 돌아와도 매번 혈당이란 녀석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내게 직접 말해주지 않으니 난 알 수가 없다. 혈당 측정기가 내보이는 세 자리 숫자에 나의 하루 기분이 달려있다.
다행히 오늘은 평소보다 5분 더 긴 코스를 다녀와서인지 (이유는 모름) 혈당이 아주 안정적이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기분이 좋으니 몸도 가볍다. 청소를 마치고 옆집에서 가져다준 가지를 꺼내어 볶아두었다. 가져다준 8개 중 4개만 볶았는데 반찬통 2개가 찰 양이다. 든든하다. 또 며칠은 지낼 수 있겠구나. 기분 좋은 김에 오랜만에 커피도 탔다. 우와~~~ 얼마 만에 마시는 커피인가! 설탕 넣지 않은 프림커피라도 내겐 힐링의 순간이다~
잠깐의 운동으로 요동치던 혈당이 점점 잦아드는 것을 느낀다. 다리에 힘도 더 생긴 것도 느낀다. 혈당 관리가 힘들긴 해도 어쩜 내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혈당, 요 녀석 아니었더라면 운동이라고는 평생 따로 하지 않았을 테니까. 오랜만에 기분이 좋은 아침이다.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