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근래 몇 년 동안 다니던 A미용실을 과감하게 바꿨다. 미용실이란 공간이 드나들기에 편안함을 준다면 내겐 더 큰 의미는 없었다. A미용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적어도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전문가로 가게를 열고 일을 한다는 것은 어느정도 그 분야에서 기본은 되어 있으리란 기대는 따져볼 이유도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기본 위에 다정하게 손님을 대하는 면모를 갖췄다면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했다. 그간 옮겨다닌 미용실에서 상처 아닌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A미용실로 옮기기 전에 몇 군데 미용실에서 불편한 처우를 몇 차례 받고 나서는 친절하고 싹싹한 A미용실 미용사가 맘에 들었다. 더구나 그 미용사는 내 막내 동생의 고등학교 동창이었으니 "언니, 언니"라며 다정하게 말 붙여주는 상냥함도 계속 발길을 끄는 요인이 되었다.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미용실이 생겨서 좋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미용실만 다녀오면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것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이리저리 돌아봐도 새로 한 머리 상태가 넘 맘에 안 드는 것이다. 내가 못 생긴 얼굴이라곤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요 몇 년 사이 너무 못생겨 보이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생긴 자연스러운 색소침착으로 여기저기 기미도 생기고, 나이의 훈장인 주름이 생겨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기엔 나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 왜 이렇게 초라해보이지?'라며 우울증상까지 가려는 맘을 붙잡아야 했다.
친절한 미용사는 내게 큰 도움을 준 적이 있어서 더 고마운 마음에 계속 발길을 주었다. 몇 해전 어지럼증상으로 머리조차 감기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일주일에 한 번씩 미용실을 방문하여 머리를 감겨 달라고 부탁했었다. 소정의 요금을 내고 맘 편히 드나들었으니 그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나의 스타일은 어디 가서 되돌리느냐 말이다. 미용실이 정해지면 온 가족이 모두 같은 미용실을 다니게 된다, 아들 녀석 둘과 남편까지 네 식구이다. 그만큼 자주 드나들었으니 정도 많이 들었고 이런저런 오가는 이야기도 쌓였다.
남편은 머리 자르고 오는 날엔 작은 불만을 몇 차례 늘어놓더니 급기야 바리깡을 주문해서 내게 잘라줄 것을 요구했다. 난 생전 해보지도 않던 셀프(?) 미용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자신은 짧게만 자르면 되니까 겁먹지 말고 해 보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다. 지금까지 서너 차례 정도 시도했는데 남편은 내 실력이 나아지고 있다고 칭찬해 주었다. 남편이야 그렇다 치고 내 머리는 어쩔 것이냐 말이다.
난 힘든 결정을 해야 했다. 미용실 옮기는 것이 뭐 별일이냐겠지만 난 이런 일이 어렵다. '사람의 마음이 관련되어서'인가 보다. 내가 오지 않으면 궁금할 테고, 좁은 동네 우연히 마주치기도 하는데 어찌 얼굴을 마주 볼 것이냔 말이다. 하지만 난 과감하게 결정했다.
내가 최악으로 맘에 안 들게 잘렸던 작년 여름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또 잘린 순 없다는 생각에 방향을 확 틀어버렸다. 맘 바뀌기 전에 B미용실로 미리 예약을 해 두고 정해진 날짜에 방문했다.
이것도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B미용실은 A미용실로 옮기기 전에 다니던 미용실로 뜬금없이 몇 년 만에 와서 예약을 하고 갔으니 그간의 사정 이야기로 새로운 시작을 맞아야 했다.
이럴 때면 내가 좀 낯이 두꺼운 철면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좀 미안한 말투로 그간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자긴 괜찮다고 유쾌하게 넘어가줬다. 다행히 우리 둘째와 B미용사의 셋째가 같은 학년이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 얘기로 분위기는 녹아들어 갔다.
"언니는 짧은 머리가 잘 어울렸는데..."
(역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군)
"안 그래도 여기서 마지막으로 했던 파마가 넘 맘에 들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 느낌이 안 나서 속상했지~~~"
짧은 칭찬으로 그간의 소원함이 다 풀어질리야 없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난 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머리를 자르고 거울을 보는 순간부터 표정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역시 미용사도 실력차이가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B미용실에서 커트를 한 뒤 요 며칠 나는 자주 거울을 보게 되었다. 헤어스타일만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내가 너무 나이 들어 보여서 속상했었는데 나이 들어서 안 예뻐 보인 것이 아니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울리지 않는 머리를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더 초라해 보였나 보다. 산뜻하게 머리를 자르고 내 정신 건강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