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호두나무로 만든 거실의 광장
우리 집 거실은 조금 독특한 편이다. 보통 거실에 있어야 할 소파가 주방에 있고, 주방에 있어야 할 식탁이 거실에 있다. 거실 식탁은 모두 모여서 이야기하고 공부하고 책을 읽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손님들이 오면 같이 둘러 앉아 먹고 마시는 장소로도 사용된다. 우리 집의 중심이 되는 곳이 거실의 식탁이다. 손님 맞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신혼 초에 거금을 들여 8인용 식탁을 구매했다. 가족이라곤 아내와 나밖에 없을 때 세 가족 정도를 초대할 수 있는 크기로 구매했는데, 이젠 우리 가족만 다섯 명이 되었다.
이제 주방의 소파는 가족의 휴식장소와 아빠 엄마의 사랑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이들을 안아주기도 하고, 딸과 엄마가 편히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밤이면 아내와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형광등이 하나도 없다. 노르웨이에서는 주로 LED 조명을 쓰는 것을 보고 우리 집도 대부분의 조명을 백열등색의 LED 조명으로 바꿨다. 형광등은 밝지만 차분하지 않은, 어수선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간접조명을 많이 사용한다. 촛불도 자주 사용하려고 한다. 특히 깊은 대화를 할 때에는 촛불이 있으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기분이 든다.
우리 집 구성이 이렇게 된 건, 2009년 노르웨이로 처음 출장을 갔을 때의 일 때문이다. 그때 직장 상사가 나를 집으로 초대해 준 일이 있다. 그는 손수 생선 수프와 양고기 스테이크를 만들어 대접해 주었다. 식사 도중 들어온 막내딸도 같이 식탁에 앉아서 즐거운 저녁을 나눴다. 고등학생인 막내딸이 같이 식탁에 앉아 친근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은 당시의 내게는 무척 신기했다. 식탁이 거실 한가운데 있는 것도, 형광등이 없이 조명과 촛불만 켜져 있는 것도, 음식 준비와 설거지 모두 상사가 했다는 것도 문화 충격이었다. 그 모든 게 인상 깊어 나는 앞으로 내가 꾸릴 가족의 모습으로 마음속에 심어두었다.
이후 그 상사와 친해지면서 집 안의 모습에 대해 하나하나 물었다. 무엇보다 식탁이 거실 중심에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 물었고 그의 대답은 우리 집 거실에 식탁을 놓은 이유가 되었다.
“우리 집의 식탁은 광장의 역할을 해. 모두 모여 이야기하는 장소지.”
고대 그리스에서는 광장을 아고라(Agora)라고 불렀다. 아고라는 ‘모이다(아게이로)’라는 그리스 동사에서 나온 말로, 민회가 열리는 장소 또는 교류하는 광장을 뜻한다. 그리스인들은 광장에 모여 경제생활과 예술 활동을 교류했고 정치, 철학, 사상을 공유하고 논쟁했다. 이후 유럽의 많은 도시국가 사람들은 광장을 중심으로 생활해 왔다. 광장은 언제나 도시와 인간을 연결해 주는 공간이었다. 종교가 중심이던 시대에는 교회 앞에 광장이 생겼고, 도시국가가 발달하면서는 시청 앞에 광장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모여 정치 현안이나 도시의 중대사를 의논했다. 도시의 공식 행사나 축제도 광장에서 열렸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의 가장 큰 광장은 왕궁 앞 칼 요한 거리에 있다. 노르웨이의 부유함과 문화의 우수성을 나타내듯 계절마다 꽃이 바뀌고, 국립 미술관이나 오페라 하우스의 이벤트 포스터나 깃발이 고풍스럽게 장식되어 있다. 도쿄에서 가장 큰 광장이라고 여겨지는 곳은 황궁 앞 거리다. 양 옆으로 고풍스러운 소나무가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고 차도는 큼지막함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차분하다. 반대로 왕궁 건너편 마루노우치 일대는 현대적인 초고층빌딩들이 늘어서 있어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광장을 지나가면 항상 조용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분위기에 압도당하곤 한다. 서울의 광화문 광장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고 또 국민의 목소리를 모아 세상을 바꾸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광장은 그 나라 혹은 도시의 얼굴이며 분위기를 나타낸다. 노르웨이 상사의 말대로 거실은 그 집의 광장이고, 그 가정의 얼굴이다.
거실의 한쪽 벽에 TV가 있고 그 맞은편에 편안한 소파가 놓여있는 모습,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거실 풍경이다. 이러한 구조는 TV와 소통하겠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환경에 한없이 약하다. 우리가 아무리 마주보고 얘기하고 싶어도 이 소파에 앉아 TV를 트는 순간 TV가 모든 관심을 가져간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집에는 거실을 책꽂이로 둘러놓기도 한다. 심지어는 독서실에 있을 법한 칸막이 책상이 놓여 있는 집도 있다. 침대가 거실에 있는 집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거실 풍경은 가정의 방향성과 가치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가구는 단연 식탁이다. 진한색의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8인용 식탁인데, 나와 아내는 이 식탁을 평생 사용하겠다면서 신혼 시절 꽤 거금을 주고 샀다. 물론 노르웨이로 첫 출장을 갔을 때 받은 영감이 없었다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상사의 집을 보고 우리 집의 광장으로 삼은 식탁인 것이다. 우리 가족이 지향하는 가치를 소통과 대화로 삼고 싶었고 이 호두나무 광장을 집의 중심으로 삼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주방에 있던 식탁을 거실로 가지고 나왔다. 거실을 책을 보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예쁜 조명도 샀다. 당시 세 식구였음에도 8인용 식탁을 샀던 이유는 친척이나 친구들을 초대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그 식탁에 다섯 식구가 둘러앉아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거나 식사를 한다. 물론 공부도 하고 아이들과 게임도 한다.
이 식탁은 우리 가족의 하루를 책임진다. 내가 아침식사를 하면서 신문을 읽고 있으면, 딸이 와서 어린이 신문을 보면서 조잘거린다. 그러고 나면 쌍둥이들이 엄마와 아침을 먹으면서 이곳저곳 어질러 놓고, 오후에는 학교에 다녀온 딸이 엄마와 숙제를 한다. 저녁에는 온 가족의 특별한 저녁 메뉴가 차려진다. 식사 후에 내가 책을 쓰거나 읽고 있으면,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대화가 시작되고 곧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공간이 된다. 8시가 되어 쌍둥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나는 딸의 영어공부를 도와주거나 게임을 한다. 9시가 넘어 딸아이까지 잠자리로 가면, 아내와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아이들 이야기, 회사 이야기, 아내의 새로운 취미 등 소소한 일상을 나눈다.
이따금 식탁이 크고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면 그날 이야기의 주제나 분위기에 따라서 주방의 소파로 자리를 옮겨 아내와 한잔하기도 한다. 한 집에 부부가 대화할 수 있는 장소가 두 곳이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식탁은 멋지고 화려한 카페고, 주방의 작은 소파 테이블은 선술집이 된다. 주말이 되어 우리 부부의 지인들이 놀러오면 식탁은 또 한 번 홈파티 장소가 되고, 보드게임장이 되기도 한다.
며칠 전 신문에서 최근 ‘졸혼(결혼을 졸업하는 행위)’이 유행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최근 집을 가족이 모이는 공간이 아닌 1인 가정끼리 모인 ‘셰어하우스’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도 한다. 집에 나갈 때도, 돌아온 뒤에도 서로 인사하지 않는 가족, 집에 돌아오면 각자의 방에만 있는 가족,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영 불편한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거실이 집의 광장으로, 모두가 교류하고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오늘 저녁 우리 집의 거실이 어떤 풍경인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