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뒤틀림과 해방감
내 삶에 페미니즘이 녹아들기 시작한 건 스무 살 때였다. 사회학을 배우며 '사회와 나', '나와 너', '나와 집단'과의 관계성을 인지했고, 당연하게 교육받아왔던 상식과 개념에 도전하면서 페미니즘은 내 일상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사회학을 배우며 넓어지는 다양한 지평 속에서도 여전히 '가족'에 대한 개념은 아주 좁고 단일했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나의 배경이 항상 부끄러웠고, 정상에 편입되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빠르게 대학을 졸업하고, 무던한 직장에 취업하여 결혼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내가 가진 가족의 '비정상성'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누구의 시선에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어지는지 질문하면서부터 모든 개념들은 다시 분석되어야만 했다.
왜 가족은 남성과 여성, 이성애적 결합으로만 구성될 수 있는가? 왜 서로 사랑하는 동성은 가족이 될 수 없는가? 왜 혈연이 가족을 잇는 유일한 기준이 되는가? 왜 핵가족이 초역사적인 것으로 전제되는가? 왜 아이를 낳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가족에 대한 개념은 당연히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딸을 임신하고, 세상과 단절되어야 했던 엄마에게 아빠의 죽음은 살아있기에 버텨야 하는 삶을 의미했다. 엄마의 손을 꼭 붙잡은 두 아이를 보며 엄마는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다시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마주하고,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일굴 수 있는 경험이기도 했다. 임신으로 처음 만난 첫사랑과 바로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에게 사회는 두 번째, 세 번째의 사랑을 선물하기도 했다.
모성신화는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과 헌신을 강조하지만, 이 신화 안에서는 어머니와 자녀들 모두 행복할 수 없다. 이 신화에 응하지 않는 순간 '비정상적인 엄마', '사랑받지 못한 나'라는 개념이 공고해진다. '신화'는 '현실'이 아니다. 모성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될 수 없다. 사랑의 양상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며, 사랑의 크기와 정도 또한 단일한 무엇으로 개념화될 수 없다. 모성신화의 절대성 안에서 나 또한 나의 모녀관계를 '정상적이지 못한 것'으로 규정하였으나 애초에 '정상'이라는 개념은 허구적이다. 모든 것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존재한다. '초역사적인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세상을 바라보던 왜곡된 렌즈는 사라진다.
나에게 페미니즘은 곧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연습이었고, 세상이 공고하게 다져온 기본 개념과 전제에 대한 질문이었다. 여자는 '핑크', 남자는 '블루', 여자는'음', 남자는 '양', 여자는 '자연', 남자는 '문명', 여자는 '감정', 남자는 '이성'이라는 너무나 '상식적인' 전제들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History를 Herstory로, 즉 2등시민으로 배치되어왔던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에 묘한 뒤틀림을 느낄 때, 그리고 그 당연함을 다시 질문할 때, 다른 각도에서-다른 시선으로-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나의 페미니즘은 그렇게 묘한 뒤틀림에서, 그리고 깨달음에서, 그리고 해방감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