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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Aug 22. 2019

페미니스트의 이성애 연애

경계와 범주를 벗어나기

20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으로 만들어지며' 마주한 성별규범에 저항하는 정신으로 뭉쳐있다. 그러나 불편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저항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다보면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고, 애써 참고 넘어가자니 속에서는 천불이 끓는 답답함에 속이 터진다.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삶은 매 순간과 공간마다 대상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하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해나가기 위한 꽤나 지난한 과정이다.

 

특히 이제 갓 성인이 된 20대에게도 '모태솔로'라는 말이 성횡하는 것처럼 청춘들의 연애가 당연시되는 현실에서는 연애와 낭만적 사랑에 대한 관념들에 저항하기가 무척 어렵다. 이성애를 지향하는 20대 페미니스트들의 이성애 연애는 더욱 많은 고민들을 수반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가령 페미니스트인 내가 남성과 연애를 해도 되는지, 이것이 곧 "적과의 동침"은 아닌지(?) 혹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 남성이 소위 '한남'은 아닌지, 그가 한남이라는 판단은 과연 무엇을 통해 내려질 수 있는지 등등... 페미니스트로서 이성애 연애를 이어나간다는 의미에 대한 많은 혼란을 느끼게 된다.


페미니즘을 처음 마주하며 가졌었던 나름의 펀견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모든 남성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연애-비혼-비출산의 노선만이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해결책이라고 여겨졌다. 이러한 생각이 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했던 것은 나의 현실은 절대 이러한 노선을 따를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성애자였고, 연애관계를 좋아했고, 특히 가족도 친구도 아닌 타인과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이 된다는 그 관계성이 좋았다. 연애를 통해서만 나의 가치를 확립받을 수 있다는 낭만주의의 오랜 관념은 나에게도 꽤 오랜시간 영향을 미쳤고, 연애를 하지 않는 나를 인정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연애 그까짓게 뭐라고.


페미니스트의 연애는 혼란하다(!) / 출처.재윤의 삶 (@jyjy9)


그 다음으로 미쳤던 생각은 '성녀 대 창녀'라는 여성에 대한 이분법으로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성적 억압들에 대한 저항이었다. 섹스를 가볍게 여기고, 연애를 가볍게 여기고, 속보다 겉을 따지고, 어린여성과 늙은 남성들의 매칭이 조장되는 현실에서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키링남'정도는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삶이 '모' 아니면 '도'로 구분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으로 왜곡된 연애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기까지는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이는 몇번의 연애를 지내고, 나이들어가며 느끼게된 자연스러운 깨달음 이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왜곡된 관념을 마주하며 얻은 성찰이기도 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페미니스트의 이성애 연애는 이래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들이 오히려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고, 상대를 폄하하게 만들고, 왜곡된 관계가 되도록 이끌었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옭아왔던 역설에 벗어나고서야 다시 페미니스트의 삶을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는 페미니즘은 인간이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차이, 혹은 탄생 이전 부터 성별로 인해 나누어져왔던 모든 경계에 저항하고 그것이 마땅하고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학문이자 실천이다.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며 대립각을 세우거나, 그들을 '후리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니라, '어떻게 이렇게 미운 그들과 함께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가 곧 목적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것이 곧 여성들이 억압되어오고 단절되어왔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미운 그들'을 인정하는 것은 성별로 인한 위계들이 공고했던 현실을 인지한다는 뜻이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법'을 고민한다는 것은 서로가 이러한 역사성을 인지해야만 가능하다.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잘 살기 위한 노력은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만도 아니다. 각을 세우고 여성에 대한 혐오에 반격하는 하나의 운동에 나는 동의한다. 여성을 멸시하고 하찮게 취급해온 역사 안에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라고 강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운동은 단 하나의 방법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어떤 대상과 어떤 위치에서 어떤 공간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다. 페미니스트로서 나에게 이성애 연애는 상대방과 어떻게 평등한 관계를 맺어나갈것인지, 사회가 규정하는 '연애'에 속하는 정도의 길을 거부하고 나와 너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물색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 이러한 나의 노력에 함께 응해주지 않는 상대라면 굳이 그러한 인간을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물론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될 수는 없지만)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이성애 연애는 서로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연애가 아니더라도 내가 해야하고 나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내가 고민하고 걱정하는 주제로 함께 대화 가능한 사람을 찾는 것. 이 관계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것. 그것을 깨닫고 가는 것이 곧 페미니스트의 연애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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