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튀밥포대 속에서 마법사가 되다
옥수수 튀밥의 추억
옥시기는 환타스틱 한 세상을 열어주기도 했다. 초등 저학년 때도 난 책을 좋아했고 또 몽상가로 많은 생각과 상상을 하며 자랐었다. 그 시절 내게 옥시기란. 밭농사도 옥시기였고 옥시기가 식량이었다. 일단 옥시기밥은 거칠어 보리밥 보다 맛이 덜했다. 그것마저도 식량으로 충분하지 못했다.
여름에 옥시기를 통째로 쪄 먹을 때는 그래도 맛은 있었다. 옥시기로 만든 올챙이 묵도 자주 해 먹었다. 지금도 춘천 중앙시장을 가면 사시사철 옥시기 올챙이 묵을 먹을 수 있어 춘천을 갈 적마다 들어 어머니의 손맛을 추억하며 찾아가 한 그릇 뚝딱 먹는다. 추억을 소환하며 먹으니 언제나 맛있다.
오늘은 옥시기 튀밥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어린 시골마을에도 벽걸이 달력에 성탄절이 표시되고 어머니는 그때 성탄절에 먹거리로 옥시기 두 됫박을 큰맘 먹고 튀밥을 튀겨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튀밥을 튀기러 건너마을로 갈 때 내 두동생들도 늘 같이 따라갔다.
이미 그곳에 가면 튀밥틀이 돌아가고 도착순으로 옥시기 통들이 주욱 늘어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네 뒷박을 튀기는 친구네가 참 부러웠었다. 뻥뻥 터질 때마다 사방으로 튀밥들이 튀었고 그것을 몇 개 주워 먹는 일도 행복했었다.
드디어 한낮을 다보내고 나서야 우리 순서가 되고 두 됫박이 튀겨져서 노란 포대자루로 가득 차고 그것을 둘레 메고 집으로 돌아올 때 두동생들도 득의만만 몸짓으로 포대자루 뒤를 따라왔다. 그때 우리 삼 남매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들이었다.
그 며칠 나는 튀밥포대에 머리를 처박고 눈을 뜨면 말 그대로 환타스틱 한 세상이었다. 달고 구수한 튀밥냄새도 무지무지 깊어서 좋았고 나는 그 어떤 과자나라 보다도 튀밥나라 포대 속이 좋았다. 어떤 날은 그 포대 속에 머릴 처박고 잠이 들어 꿈을 꾸는데 나는 정말 날아다니고 있었다.
천등산 도토리나무들에서 옥시기 튀밥들이 달렸고 나는 날아다니며 막대기로 알밤을 털듯이 털었고 동생들과 엄마는 그것을 주워 나르는 기이하고도 행복한 꿈이었다. 천등산 골짜기마다 옥시기튀밥들 즐비했고 마을사람들도 그것을 땅에서 장대로 터느라 바빴다. 나만 유일하게 새처럼 날라서 신나게 털어댔다. 꿈속만큼이나 나는 옥시기 튀밥포대 속을 온몸채로 들어가 환상을 휘젓고 다녔다.
나를 괴롭히던 동네 형들도 내가 튀밥포대 꿈속에서 만나면 백전백승이었다. 자치기, 비석 치기도, 숨바꼭질, 오징어 가이상 그 모든 것으로 승부를 해도 내가 다 이겼다. 말 안 들으면 코피가 나도록 두들겨 팼다. 옥시기 튀밥포대는 내게 신기한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때 겨울만 되면 나는 마법사가 되었고 망상가가 되었고 동화쟁이가 되었다. 그때 포대 속에서 꾼 꿈들을 두동생들에게 살을 부풀려 이야기를 해 줄 때면 동생들도 친구들도 넉이 빠져서 들었다.
난 그때부터 사실이야기 꾼이었고 또 책을 좋아하는 소년이 되어 있었다. 째지게 가난했지만 마음과 영혼은 풍요로웠다. 그때 형성된 나의 세계가 완고해서 지금도 초긍정 투성이 인간이고 예쁜 세상과 사랑을 가지러 세 상속 속들이 파고 돌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 학교에서 급식으로 나누어 주던 옥시기빵도 내겐 많은 환상을 만들어 주었다. 맛도 너무나 좋았는데 아직도 그때 그 빵맛을 못 찾았다. 난 그때 이미 그 옥시기 빵을 구름처럼 타고 하늘을 나는 상상을 많이 했었다. 옥시기빵과 튀밥이 내게 형성해 준 그 성곽들로 인해 나는 지금도 성곽의 성주가 되어 상상 속을 누빈다.
그래서 내 삶은 방랑처럼 끝없이 끝없이 세상을 파고든다. 그것이 예정처럼 가야 할 나의 길임을 신앙한다. 그때 가슴 뛰는 세상을 나는 살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