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얀 토끼가 가져다 준 희망

하얀 토끼가 가져다준 희망

by 오백살공주

하얀 토끼와 나

얼마 전 강원도 원주에 갔다가 놓아기르는 토끼를 만났었지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제가 어린 시절 토끼박사로 유명했었답니다. 주체 못 할 정도로 많이 키워었답니다.


배가 몹시도 고프게 자라나던 초등학교 시절에서부터 청소년 시절까지 하얗고 순한 토끼를 기르면서 맛본 깊이모를 희망과 설렘들, 까닭 모를 비전과 능동적인 사고를 배양하며 세상에 대한 꿈을 키우던 일들이 떠 오르네요. 봄만 도래하면 대지에 풍겨 나오는 기운에서 얻는 충동적인 의욕을 키우며 파란 새싹만 들판 여기저기에서 푸르게 자라나기 시작하면 번식력이 몹시도 뛰어난 토끼와 항상 봄을 함께 했었습니다. 내 작은 노동력으로도 토끼는 관리하기가 수월해서 좋았고 일 년에 네 번 정도의 새끼를 번식을 하는데 특히 봄날에 낳아주는 새끼는 언제나 하얀 귀여움으로 경이로운 생명력을 부여해 주어서 마음 가득히 희망을 채워 주었지요. 토끼를 기르는 해에는 어미토끼 한 마리로도 대략 이삼십 마리는 거뜬히 늘렸고 겨울날에 동네 어른들의 술 추렴안주로 팔아서 늘 골병으로 앓아누우시던 어머니 약값과 식량대용 옥수수로 맞바꾸며 추운 겨울을 나기도 했었지요.


그때는 임신한 토끼의 배만 만져도 새끼가 몇 마리 들었는지를 알 수 있었고 토끼똥만 보아도 건강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지요. 토끼장에서 기르는 토끼도 있었고 땅속에 굴을 파 놓고 기르던 토끼도 있었는데 굴속에서 자라는 새끼들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느 날 주먹만큼 자라서 굴 밖으로 나오면 꼭 무슨 덤으로 얻은 것처럼 유독 기쁘곤 했었답니다. 주로 잡종토끼를 사육하다가 나중에는 뉴질랜드 화이트종과 친칠라 순종을 어렵게 구해 와서 준 전문성을 가지고 사육하기 시작했지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백여 마리까지 사육했고 졸업 후에는 틈틈이 농사를 지으며 300여 마리까지 키웠습니다. 앙고라토끼를 사기 위해 농촌진흥청에 까지 갔었을 정도로 토끼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털을 깎아서 그램으로 팔기도 했고 나중에는 가죽이 몹시도 부드럽고 좋은 렉스토끼 (당시에는 염소가격과 같았음) 순종까지 구입해서 길렀습니다.


토끼는 정말이지 사육비가 전혀 들지 않았고 풀은 동네에 지천이었으며 아침저녁으로 잠깐만 관심을 기울여도 왕성하게 자라나고 왕성하게 새끼를 번식해 주어서 소년가장이었던 우리 집의 재산 1호였었지요.


봄만 되면 토끼들 번식과 함께 내 희망들이 하얀 토끼털처럼 소담스럽게 자라나서 배가 고프고 고단했어도 늘 손아귀에는 힘이 넘쳤고 마음은 날아다닐 듯 마냥 부풀어 있었습니다. 푸른 풀만 보아도 미래에 대한 희망에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득의만만했답니다.

열네 살 가을에는 동네 이장님을 졸라서 송아지까지 빚을 얻어 사다가 기르기 시작했지요. 마침 외삼촌의 보증으로 쉽게 빚을 낼 수가 있었지요. 그동안 토끼를 기르는 정성과 초식동물 사육능력을 검증을 받은 상태라서 쉬웠답니다. 토끼가 사육도 손쉽고 밑천이 들지 않는데 반해서 판로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앙고라토끼털값과 가죽값은 국제시장에 민감해서 등락이 심했고 대량의 고기 판매가 쉽지가 않아서 열여덟 나이가 되던 해에는 자연히 토끼 사육을 접었지요. 자연스럽게 비육우용 소 몆 마리와 농번기에 밭갈이와 새끼를 낳는 모우용 암소 한 마리로 자연스레 대체되었지요.


그 어렵던 시절 봄날이면 토끼는 제게 엄청난 희망과 충동을 안겨주며 청소년 시절을 별 탈 없게 인격을 형성시켜 주었답니다. 성질의 온순함에서 오는 안정감, 하얀색에서 오는 깨끗하고도 맑은 정서, 왕성한 번식력에서 오는 노력에 대한 보상감 내지는 까닭 모를 폭발적인 기대감, 푸른 풀잎들을 무한히 제공받을 수 있는 자연의 위대함 등등...... 아마도 마음에서 느끼는 풍요와 모나지 않은 정서들은 그때 형성 되었답니다.


무슨 일이든 매달리면 마치 [올인] 가까울 정도로 몰입을 하며 부지런하게 세상을 헤쳐 나가는 법 또한 그때부터 습득한 습관이랍니다. 남에게 관대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냉혈 할 정도로의 날카로운 절제를 하게 되는데 어려움을 헤치고 나갈 때에는 최고랍니다. 우유부단, 게으름은 지금도 정서에 맞지가 않거든요.


저는 지금도 마음속에 토끼를 항상 키우고 있답니다 특히 새싹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나고 일조량이 풍부해지는 봄날만 되면 몸살에 가까울 정도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이 세상의 모든 걱정들이 소멸되며 오직 희망과 사랑과 의욕만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봄만 되면 많은 계획들을 수립하고 그것을 일 년 내내 차질 없이 실천하며 에너지를 풍부하게 양산하게 됩니다. 다 어린 날에 그 양순하고도 하얗게 귀여운 토끼가 내게 준 선물이랍니다.


노후준비로 시골 어느 구석에 자리를 잡고 나면 제일 먼저 토끼를 두어 마리 사다가 하얗고도 경이로운 생명 번식(알 수 없는 행복이 여전할 것 같음)의 기쁨을 만끽하고 자연에 순응하며 그렇게 순하게 살아갈 생각을 합니다.


세상이 너무나 약육강식에 몰입되어 있고 이념의 이기들이 범람하면서 메마름들이 넘치니까 덩치 큰 나도 무섭기까지 합니다. 이런 세상을 살자니 온순하게 사는 토끼의 모습이 그리워 회상하며 적어봤습니다. 물론 좋고 아름다운 일들이 많아서 언제나 감동하며 열심히 살고 있지만 말입니다^^

모두 아름다운 꽃과 아름다운 봄 햇빛, 그리고 마냥 싱그러워지는 이때 싱그러운 삶을 경영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 역시 능동적이고도 감성적인 예쁘고 멋진 삶을 꿈속처럼 살 거랍니다.~~~~~♡♡



몇 년 전에 써 놓았던 글인데 봄이 당도하는 봄을 느끼고 싶어 이렇게 올려봅니다. 이젠 그 예쁘던 동심은 무뎌지고 투박해지고 알 수 없는 이기의 고집들만 날카로워지는 것 같아서 기이한 비애감도 적지 않네요. 그래도 늘 어린 날의 예쁜 정서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동심을 일깨워 봅니다.


너무나 바쁘고 마음이 고단한 시절들이 흐르고 있네요. 나조차 분실하고 사는 것 같네요. 그래도 나를 일깨우는 따듯한 마음들이 있고 별 같은 희망들을 무한히 던져주는 초롱한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있어 잘 지내고 있답니다. 하 수상한 시절은 곧 지나가겠지요. 옛글 하나로 안부를 던집니다. 더위 조심하시고 이황에 사는 삶, 신나게 살아 냅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