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계절의 변화시기가 도래하면 나는 마치 허물을 벗는 구렁이처럼 그렇게 의식에서부터 신경세포 속까지 변화를 맞는다. 일조량이 풍성해지기 시작하면서 햇빛의 색깔에도 금색의 생명력이 묻어나고 불어오는 바람에도 봄내음이 배어나면 내 말초신경에서부터 물이 오르는 버드나무처럼 그런 버들강아지 같은 생기가 돋는다. 가슴에서부터 알 수 없는 설렘들이 새끼를 낳는 토끼집처럼 부기미를 틀며 자라난다. 언 땅들이 녹으면서 흙내음을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면 나는 미세한 대지의 깊은 숨소리를 듣는다.
농부의 자손으로 유년시절에서부터 맛본 대지의 유순하면서도 숭고한 자세는 너무 아름다웠고 나는 그 기운을 전율처럼 받아들이며 새싹처럼 자랐다. 그럴 즈음의 맞이하는 새벽은 그 어느 때 보다 경이롭다. 봄이 오는 새벽의 미명이 밝아오면서 일체의 모든 생명들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내 가슴에서 똑같이 신경세포에 하나하나 생기들이 반짝인다. 그때마다 나는 마치 의식을 행하듯 익숙한 농부의 행동으로 봄을 맞는다. 열몇 살 나이였지만 장정품앗이를 거뜬하게 해 냈었다. 자연이 내게 부여해 준 형언 못할 힘이었다.
그 봄이 시작되면 내가 기르던 토끼나 닭들도 생명의 번식기에 접어든다. 염소도 여린 새싹이 움틀 때쯤에 새끼를 낳았다. 만물의 소생명들이 길고도 장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다 보니 생명의 봄만 되면 나는 봄을 타기 시작하는 것이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의식 내면에도 살이 오르기 시작하고 눈빛에도 맑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고 걸음걸이가 가벼워지고 노래까지 흥얼거리게 되며 만사가 다 초긍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때 흥얼거리는 곡들이 다 봄을 노래하는 가곡들이거나 동요였다. 그 순간은 부자도 안 부러웠고 내가 최고의 부자 대열에 끼인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내 세상이 되는 거였다. 열네 살부터 소를 몰며 밭을 갈았는데 그 흙을 뒤엎는 맛에 취해서 '이랴' '이랴'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쳤고 꼭 땅에 산소를 공급하는 기분이 들어서 힘든 줄 몰랐다. 그렇게 봄은 내게 경이롭고도 해마다 생경하기만 했다. 그렇게 살던 내가 도시로 나와 봄을 맞이할 때면 밭을 안 가는 것뿐이지 내 감성의 촉수들에 봄버들 강아지처럼 물이 오른다. 그래서 이때부터 내가 하는 일에 능률이 몆 곱절 오르는 것이다. 영업의 전선에서 깃발을 휘날릴 때가 항상 봄이었다. 시골 농부의 일은 아니어도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면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는 성실하게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봄은 나에게 예감과 영감을 주는데 나는 감성적이어서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한파 같은 추위가 시작되면 나는 내게 다가올 봄을 미리 상상한다. 그러면 감각기관들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코끝에는 봄내음이 미리 그려지고 입에서 불려지는 노래는 여지없이 [강 건너 봄이 오듯이]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등의 봄노래들을 흥얼거리며 봄앓이를 겨울 초반에 벌써 시작한다. 햇빛도 금색으로만 보이고 각 기관의 촉수들도 일거리를 만난 농부처럼 마냥 곰실거리기 시작했다. 폭냉들이 전국을 얼리지만 마음에는 아지랑이 가물거리고 새싹들이 여리게 솟아나고 꽃들이 후드러지게 마냥 피어나는 것이다. 나는 그 봄에 미리 취해서 춤을 너울너울 무녀의 대처럼 추면서 신들린 듯이 겨울을 흥겹게 넘긴다. 청주라는 꿈의 도시에 드림마니아로 바쁘게 살지만 겨울을 건너며 몸이고 의식이고 겨울부터 흔들거리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농부 같은 도시의 뚝멋남자이다.^^
오늘은 밤에 다시 청주에 머뭅니다. 봄을 [강 건너 봄 오듯] 기다리면서요. 어저께 당도한 한파를 맞이하며 영혼은 봄의 향연을 여는 것이지요. 오늘은 수요이고 아직 겨울 초입이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노래는 [강 건너 봄 오듯이]입니다. 그리고 뚝멋남자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