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始發)의 10월, ep.05 | 복직과 퇴사

정말 미워했던 사람에게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후회

by 어영

누군가 퇴사를 한다는 것, 복직을 한다는 것. 회사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10월에 일어난 복귀와 퇴사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누군가의 복직,

나와 정말 친하게 지냈던 수석님이 일찍 육아휴직을 마지고 복귀를 하시게 되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었다. 팀에 내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 것인가.


누군가의 퇴사,

작년에 나를 심리 상담 직전까지 내몰았던 이번 7월에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다는 소식만으로 한 달을 스트레스 속에 살게 했던 전 파트장님의 퇴사 소식이 전해졌다.

1월부터 6월까지 전 파트장님과 함께 일을 하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도록 거절 멘트를 거울 앞에서 수도 없이 연습했고, 7월 복직 이후 복도에서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다시는 이런 사람 때문에 무너지지 않겠다며 매일 아침 다짐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이 팀에서 누군가는 한 명이 떠나야 이 일이 끝나는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와의 치열한 다짐 중, 매니저님과 동기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일이 생겼다. 이 또한 9월 말이다. 식사를 하며 매니저님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현영아, 이전 파트장님과는 좀 어때?'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조금 스트레스받는다고. 괜히 예민하게 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이런 말을 한 나에게 매니저과 동기가 한 말은

'그래? 그래도 파트장님은 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것 같던데.'

'그래도 그렇게 행동하면 네가 더 안 좋지 않을까?'

어떤 걱정인지는 마음으로 알고 있지만, 순간 욱해서 말하고 말았다. 사실 파트장님이 뒤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이런 말을 내가 들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업무적으로 가 아닌 여자여서, 여자들은 일할 때 너무 묻고 따지는 게 많아서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들어가면서 꿋꿋하게 일했는데, 저는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1-2년의 시간은 더 필요하다고.'


그날부터 다시 지옥이 시작됐다. 내가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 예민한가? 내가 잘못했나? 작년에 내가 그렇게 못났나? 문제가 다시 시작되었다. 작년과 같이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나에 대한 의심을 먼저 시작하고, 그 의심을 끝없이 하고, 결국 나의 탓으로 모든 문제를 돌린다는 것이다. 작년의 나를 다 털어낸 줄 알았는데 다 털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마음속에 꽁꽁 감추어 놓았을 뿐이다. 또 나를 모른 척했다. 이것보다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모른 척하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갑자기 퇴사를 하신다는 소식을 접했다.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 퇴사하신다는 소문이 들려왔고 정말 후련할 줄 알았는데 내 마음은 또 아니었나 보다. 후련하면서도 찜찜하고, 찜찜하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진짜 후련하고 속 편할 줄 알았는데. 괜스레 나 때문인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복직을 하자마자 맡은 프로젝트의 고객사가 좋지 않았고, 업무적으로 내가 함께 했으면 그 정도로 안 좋아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에.

너무 찜찜했다. 차라리 먼저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면, 그 상태로 그분이 퇴사했다면, 내 마음은 같았을까?라는 의문이 있다. 마지막 인사라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면?

이 모든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다. 날이 선 가위로 잘랐어야 했는데, 무딘 가위로 잘라 깔끔하게 잘리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이 일로 손해를 본 사람은 나인데, 해결하지 못한 사람도 나다. 하지만 이걸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


그렇게 누군가의 복직과 퇴사가 함께 이루어졌다.
든든한 복직이 있어 좋은 마음보다는, 그 사람이 사라져 버렸으니. 진 것 같다.


※ 해당 글은 2020년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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