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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이 Aug 06. 2023

4. 글에 대한 글

출간 계약을 앞두고

"너 글은 좀 쓰잖아. 그쪽으로 길 찾아보면 되겠네."


"뭐? 너 완전 미친놈 아니야?"


따뜻한 칭찬과 조언에 대뜸 미친놈이냐는 질문을 던지긴 했지만 내 인성에는 문제가 없다.

저 조언을 한 사람은 오래 만났던 전 남자친구이고, 그 조언의 근거는 내가 그 애에게 보냈던 구구절절한 연서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랑이나 이별과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일은 대체로 제멋대로 흘러간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세상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사랑이나 이별에도 타당한 근거와 논리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살면서 겪었던 역경은 모두 인생의 훈장이 되었다. 한 번에 성공하는 것보단 두 번에 성공하는 게 좀 더 있어 보였다. 세 번을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운 좋게도 결국에는 원하는 걸 대부분 성취했다. 그럼 이전의 경험들은, '야, 난 이런 일도 겪었어.'라며 라떼를 제조할 때 야무지게 쓰였다.


그러나 스물넷의 내 입장에서, 사랑만큼은 내 맘대로 되어야 했다. 세간에는 가벼운 연애들이 가득했지만 나와 우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진득하게 사랑한다면 공주와 이웃나라 왕자는 아닐지라도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정도의 엔딩은 봐야 한다는 게 내 상식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았다. 알고 보니 우리도 호르몬의 구덩이 안에서 정신없이 휩쓸려가는 '인간 1'일뿐이었다. 그걸 알게 해 준 게 그 애였다.


"우리는 끝났어."


그건 지구가 태양의 꼬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도 충격적이었다. 내가 주도한 내 사랑이, 세상에 흩어져 있는 다른 연애들과 한치도 다를 게 없다니. 어째서? 삶이 고작 한 문장에 휘청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땐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자면 그 애는 코페르니쿠스고 갈릴레이였으며 나는 본인이 지식인인 줄로 굳게 믿고 있던 띨띨이였다.


나는 비록 띨띨했지만 노력했다.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한 사랑은 보통의 연애와는 다르며, 갈등마저도 우리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기 위한 재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난 그 애를 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 애에게 할 말을, 하루에 대충 삼천 자씩 생각해 낸 거다. (그 정성으로 자소서를 썼다면 무스펙으로 나사에도 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 애는 도무지 날 만나주지 않았으므로, 별다른 수가 없던 나는 말을 하는 대신 한글 파일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워 죽겠다'로 시작해서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와 '나쁜 새끼'를 거쳐 '우리는 운명이 아닐까'로 끝나는, 숙취의 형상을 띈 멀미 나는 글들이었다. (몽땅 맨 정신으로 썼다는 게 반전이다.) 싸이코처럼 백 페이지를 한 자리에서 쓴 건 아니고 대략 2년에 걸쳐 쓴 글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더 싸이코 같긴 하다.)


그러다 그 애와 진짜 이별할 각오를 해낸 날, 나는 그 글들을 하나의 파일로 묶어 그 애한테 메일로 보내버렸다. 이제 나는 너를 떠나보낼 것이니, 내 감정의 찌끄러기는 이 글의 수신인인 니가 감당하라는 낡아빠진 멘트도 함께였다.  


그날 나는 그 애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잘 살아, 잘 지내, 나도 그럴 테니까.' 하고 허세를 뚝뚝 흘리며 '전송'을 클릭했으나, 몇 년 뒤 우리는 지인의 결혼식을 앞두고 머쓱하게 다시 얼굴을 맞댔다. 애달픈 이별을 끝으로 평생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엔딩은 1세기 전에나 통하는 거였다. 안타깝게도 현대인의 연애는 대체로 여운이 없다. 살다 보면 지인의 결혼식에서 지난 연인과 함께 육회를 퍼먹을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끝난 인연이었으니 나는 그 애한테 더 이상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나는 그 자리에서, 지금의 내 인생이 얼마나 무계획적이며 답이 없는지에 대해 한참을 토로했다. 그러자 그 애는 내게 조언이랍시고, '너는 글을 잘쓰니 그쪽으로 길을 찾아보라'는 말을 해버린 거다. 냉정한 인간인 줄은 알았지만 먹물 대신 눈물로, 잉크 대신 콧물로 쓴 절절한 내 마음을 보고 고작 그딴 생각이나 했다니. 미친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애는 이십 대 중반까지 공부를 하고 과외를 하고 술을 먹고 취하느라 글 쓸 일이 없었던 나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긴 했다. 쓰지 않고선 살 수 없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쩌다 글쓰기로 칭찬을 받는 것의 9할은 그 애의 공이다. 그러니 그땐 힘들었지만 이젠 그 애의 이야기도 라떼의 재료로 숙성시켜 여기에 쓴다. 음, 여전히 열받는 맛이다.




좀 더 살아보니 그 애와 마찬가지로 세상도 내 말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사랑을 할 땐 내가 태양인 줄 알았고, 이별을 할 땐 그래도 행성 언저리의 지위는 되는 줄 알았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나는 그냥 우주먼지에 불과했다. 대단한 세상 속에서 내 삶은 변두리로 점점 밀려났고 나는 그 꼴을 1인칭으로 똑똑히 관찰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1인칭 주인공으로 행복하던 때가 나았나 싶은 나날들이 이어졌다.


삶은 아름답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별 일 없었지만 살아낼 당시에는 매번 시끄러웠다. 입을 다물고 문제집만 풀면 칭찬받던 날은 끝나 있었다. 언쟁이라도 한 날이면 '아, 그때 이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싶은 기똥찬 대사들이 떠올라 온 밤을 앓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시 그 사람을 불러내서 끝난 싸움을 재개할 순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해 본 적이 없으니 내 말싸움의 끝은 늘 패배였다.


말을 한다는 건 너무 어려웠다. 대꾸할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생각할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 머릿속으로 초안을 쓰고 퇴고해야 했다. 음절마다 '발행'버튼을 누르는 꼴이라 내뱉는 순간 수정이 불가능했다. 그런 미션을 매 순간 성공적으로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경이를 느꼈다.


불행히도 고귀한 성정을 갖지 못한 나는 주로 분해서 글을 썼다. 억울하거나 답답하거나 벅찰 때도 썼다. 글은 끝도 없이 고칠 수 있는 데다가 내가 원하는 순간 원하는 모양으로 세상에 내보일 수 있다. 표정이나 말투를 의식할 필요조차 없다. 어차피 말로 하다 보면 다 못 할 게 분명했으니 쓰는 편이 더 유리했다. 쓴 글들을 모아 단 하나의 제목을 붙인다면 '그때 못한 말'이다. 그래서 내 글에는 교양이 없다. 원래 못한 말을 몰아하다 보면 가장 먼저 소거되는 게 교양이고 두 번째가 이성 정도다.


그래도 쓰다 보니 독자가 생겼다. 너무나도 개인적인 경험이었는데 '나도 그랬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특이한 경험을 내놔도 그랬다. 어른이 된다는 건 육개장 재료가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비슷하게 시달리고 비슷하게 흐물흐물해진 비슷한 사람들은 도처에 있었다. 평범해서 별 볼 일 없는 삶이지만 보편적이라는 이유로 들여다봐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다행히 산다는 건 다 고만고만했다. 고만고만한 글은 고만고만함을 무기로 퍼졌다.


"스트레스받을 거면 안 쓰는 게 낫지 않아?"


의도치 않게 퍼져나가는 글과 그 뒤에 매달린 반응들을 밤새 맹추격하는 나를 보며 남자친구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건 쓰는 사람의 입장에선 복된 일이었다. 의미가 곡해되는 것은 두려웠으나 누군가는 뭔가를 새롭게 알게 됐다고 했고, 누군가는 주어를 바꾸면 자기 얘기라고 했다. '저는 외계인입니다.'라고 썼으면 반박조차 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모든 논리를 끌어와 침을 튀기며 반박했다. 그건 곧, 내가 외계인이라는 글보다는 반박할 가치가 있는 글이란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울과 불안이 틈입할 때마다 썼다. 손 끝에 불행을 적셔 세상에 널어놓으면 햇살 같은 사람들은 악착같이 그걸 바싹 말려놓았다. 굳이 개활지에 나를 드러내는 습성은 그렇게 생겼다.




몇몇 분들의 덕담을 들으며 작가의 꿈을 꾸기도 했다. 출간기획서를 써서 출판사에 투고하면 된다는 정보도 얻게 됐다. 다행히 대학에 다니는 동안, '별 것도 아닌 말을 길게 늘여 그럴듯하게 쓰는 법'을 4년이나 학습했다. 자간과 줄간격을 오묘하게 조정해 가며 반 쪽짜리 글을 네 쪽으로 늘려 쓰는 것엔 선수였다.


야심 차게 한글 파일을 켰다. 그러나 나는 '출간의도'를 채 한 문장도 적지 못하고 투고를 포기했다. 아무리 이쁘게 봐도 내가 쓴 글들은 일기에 불과했다. 이 글을 누가, 왜, 심지어 돈을 지불하고서 읽어야 하는지 나는 빈 말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스스로도 출간 의도를 설명할 수 없는 책은 나와선 안 됐다. 내가 아무리 책의 물성을 사랑한다고 해도 내 책의 의의가 교보문고의 풍경이 되는 것에서 시작하고 끝난다면 굳이 세상에 나올 이유가 없었다.


작가의 꿈은 깔끔히 버렸으나 쓸 말은 계속 생겨났다. 수상한 시절은 바싹 마른 장작이 됐다. 계속 쓰다 보니 몇 건의 출간 제의를 받았다. 시대의 아픔과 시스템의 끔찍함이 만들어 낸 우연이었다.


출간 제안을 받을 때마다 놀랐다. 글로 밥벌이를 하려면 이 정도의 필력을 가져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분들은 글의 주인인 나조차 설명해내지 못한 내 글의 의의를 간단명료하게 짚어내셨고, 이 글이 책이 되어야 할 이유를 내게 설명하고 설득해 주셨다. 너무 말씀을 잘하셔서 죄송하지만 당장 내 교실로 불러들여 대신 통지표를 쓰게 하고 싶었다.


미팅은 몽땅 즐거웠다.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해서 사람을 만날 자리를 피해온 나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오랜만에 다른 직업인을 마주하는 것도, 그들의 피난처와 이상에 대해 듣는 것도 좋았다. 많이 읽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 느껴지는 찌릿찌릿한 지점들이 있다. 무심하게 내뱉는 단어가 너무 멋지다던가, 나는 생각지도 못할 통찰을 마주한다거나, 지식의 저변이 얼마나 넓길래 이런 자료들까지 순식간에 정리해오시나 싶은 그런 지점들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팅을 끝낼 때마다, 엉뚱하게도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신년이 된 지 8개월이나 지났으니, 이 목표는 정확히 2024년 1월 1일부터 지킬 예정이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어쨌거나 책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분들에게 "아, 저는 제 책이 많이 팔릴 거라는 생각은 안 해서요. ^^"라는 막말을 내뱉은 데 대해선 지면으로나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계약을 상정하고 만난 자리에서, 대뜸 출간을 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는 말을 내뱉는 철없는 정신머리도 깊이 자책하고 있다. 작가가 되는 건 막연하고 오랜 꿈이었으나, 썩고 곪아버린 교육계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나니 내가 뭔가 대단한 역할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한 발 물러서게 됐던 것 같다.


다행히 여러 편집자님들과의 만남을 거치면서 점차 생각이 정리되었고, 좀 무섭긴 한데 어차피 아무도 안 읽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니(편집자님 : ???) 용기가 생긴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이제 곧 첫 출간계약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시대가 이렇다보니 마음은 무겁고, 묘한 부담도 있지만 뭐가 어떻게 되든 새로운 도전이 될 거다. '나도 재밌게 살고 있거든'이라는 매거진 이름은 사실 거짓말이었는데, 가수는 노래 제목을 따라간다고 하니 브런치 작가인 나도 매거진 이름을 졸졸 따라가 보려고 한다.



**모든 게 독자님들 덕입니다. 댓글 오백번씩 읽고 빵긋빵긋 웃습니다. 일일이 감사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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