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죠?
스마트폰은 똑똑하다.
산타할아버지는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알고 계시고
스마트폰은 내가 자기를 얼마나 들여다보는지 알고 있다.
게다가 혼자 알면 될 것을, 굳이 충성스럽게 내게 보고한다.
-님, 님 지난주보다 핸드폰 10퍼센트 더 오래 썼고 어쩌고 저쩌고 쫑알쫑알.
그 대쪽 같은 똑똑이에 따르면, 나는 이번주에 매일 여섯 시간도 넘게 그걸 들여다봤다. 하루에 일곱 시간을 자고 여덟 시간을 일하는데, 그 와중에 핸드폰을 여섯 시간씩이나 보다니. 아무리 퇴근 후엔 집에만 있는 인생이라지만 이게 가능한가 싶다. 그러나 사실 놀랍지는 않다. 나는 스마트폰 없이 빈 시간을 채우는 방법을 이미 오래전에 잊었기 때문이다.
증상은 심각하다. 나는 일단 스마트폰이 없으면 샤워를 하지 못한다. 법륜스님 말씀이든 침착맨의 침소리든, 옆에서 20분 이상 떠들어줄 사람을 찾은 후에야 온수를 틀 용기가 생긴다. 늦잠을 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반려영상만은 찾아내고 샤워에 돌입한다. 양치를 할 때에는 좀 엽기적인 모양새다.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들고 이를 닦는 것은 물론이고, 물로 입을 헹굴 때에도 곁눈으로 스마트폰을 째려본다. 나는 수년 전에 코인에 삼만 원을 투자하여 만 오천 원을 번, 무려 수익률 50% 달성 신화의 주인공이지만, 이틀 치 용돈이 초단위로 요동치던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렇게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진 않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 후, 이젠 오로로록 하며 입을 헹굴 때마저도 가자미 눈으로 그걸 쫓아가는 신세가 된 거다.
근데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느냐고 물으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접하는 거의 모든 컨텐츠는 '요즘 MZ 세대가 OO한 이유 ㄷㄷ'하고 별 이유도 없이 덜덜 떠는 게시물과 '은근히 논란 중이라는 OO' 처럼 새로운 논란을 창조하는 게시물, 그리고 'OO 했는데 제가 잘못한 건가요?'라는, 읽다 보면 둘 중 하나는 인간말종으로 수렴되는 게시물의 스펙트럼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컨텐츠는 대뇌용 흑당 탕후루나 다름없으므로 접하는 즉시 도파민 스파이크가 일어난다. 그러나 내용은 곧장 뇌에서 휘발된다. 머릿속에 남는 것도, 새롭게 얻는 통찰도 없다. 진짜 문제는 그 자리에 분노와 혐오가 끈적하게 남는다는 거다. 사람들은 매 순간 논란을 만들어내고 공격할 대상을 찾고 말과 글을 난사한다. 때로 아주 점잖은 태도로, 사격을 중지하겠다거나 중립기어를 박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매우 이성적인 척하는 그들은 사실 명분만 주어지면 언제든 사격을 재개하고 중립기어를 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며, 쏴댈 글을 가장 빵빵하게 장전하고 있는 잠재적 공격자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그 총알밭을 굳이, 매일, 하루 여섯 시간씩 쳐다보고 있다. 그건 불안하고 짜증 나는 일이다. 나는 선생이고 여자이며 끄트머리 MZ세대이므로 때로 난사 범위에 내가 포함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엔 내가 몸담고 있는 교육계가 난리통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난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을 하나하나 쫓아다니며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흘러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20년 전 담임에게 뺨을 맞고 대뜸 나에게 시비를 거는 머저리들에게 일침을 날리며. 그러는 내내 속이 썩어갔다.
그러나 또 어쩔 땐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법 흥미롭게 상황을 관전한다. 내 나름대로 탐정놀이를 하고, 여론의 심판대에 선 사람이 어떤 욕을 먹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다 내가 그걸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즉시 못난 나를 혐오하기 시작한다.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내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타인혐오와 자기혐오, 염세와 선민의식은 절대 넘어지지 않는 이인삼각경기 선수처럼 합을 맞추어 내달린다.
그렇게 세상 모든 논란 앞에서 기웃거리다가, 난 드디어 지쳐버렸다. 심리상담을 예약하는 과정에서 간단한 설문에 응답하다가 문득 내가 얼마나 무너져있는지 깨달았다.
일단 놓아야 했다. 일상도 힘든데 굳이 여가시간마저 수렁에 빠뜨릴 이유가 없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스마트폰에서 등만 돌리면 그만이다. 내 책장엔 손도 대지 않은 양서가 롯데타워만큼 쌓여 있고, 나에겐 아울렛에서 산 피스타치오 색깔의 러닝화도 있다. 한때 열심을 다하다 지금은 그만둔 미술 도구들도, 뜨다 만 가방도, 당장 불러내어 함께 식사를 할 동네 친구도 있다. 단지 그 모든 자원을 활용할 의지가 없을 뿐이다. 페레로로쉐를 앞에 두고 브로콜리를 씹어 먹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아무리 건강에 좋아도 그렇다.
살다보니 이제 내 의지로는 스마트폰과 멀어질 수 없는 지경에 왔다.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야자시간에 친구와 몰래 오목을 둔 것 외엔 별 다른 일탈 없이 공부만 한 것도 다 스마트폰의 부재 덕이었다. 날 바보로 만든 원흉은 LG 옵티머스 뷰2와 아이폰 6s, 갤럭시노트10과 아이폰 13이 틀림없다. 그 애들이 내 일을 대신해주고, 달달한 가십거리를 마닐마닐하게 주물러 뇌에 쏙 넣어주는 바람에 내가 정신을 놓아버린 거다. 그러니 그것들의 죄를 물어 줄줄이 수갑을 채운 후 한강물에 던져버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아마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잠자리채를 들고서라도 그것들의 탈옥을 도우러 가겠지. 내 소중한 아이폰13의 방수등급이 IP68 씩이나 된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말이다.
의지로 해내지 못할 거면 강제로 없애버려야 했다. 초단위로 세상의 소음을 전달받는 스마트한 인생이 버거워 2G 폰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는 동문회 총무로서 카카오 뱅크 통장을 관리해야 하고, 길찾기 없이 도시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으며, 법륜스님의 영상을 그 시절 'NATE' 버튼을 눌러서 보다간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극단적 디지털 디톡스는 새로운 경험과 글감을 가져다줄지는 모르나 이틀도 넘기지 못할 게 분명했다. 뭐가 됐든 지속을 하고 봐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2G 폰 대신, 영상 화질이 구리고 화면도 조그마하며, 무엇보다도 앱 하나를 실행할 때마다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게 고역이라는 스마트 폴더폰을 대안으로 찾은 상태다. 그 정도라면, 꼭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쓰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꼭 필요할 때라면 쓸 수 있을 것이다. 성격이 느긋하고 온화한 사람은 그 인고의 시간을 기꺼이 참아내어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관찰하겠지만, 난 더럽고 치사해서 안 보고 말 게 분명하다. 급한 성질머리에도 장점이 있다. 역시 세상에 나쁘기만 한 건 없다. 게다가 폴더폰은 스티커로 꾸밀 수도 있고 열쇠고리를 걸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전화를 끊을 때 탁! 하고 신명 나게 닫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요란한 글에 새 핸드폰 사진 하나가 없냐 하면, 사실 아직 여전히 고민 중이기 때문이다. 유심을 옮겨 꽂는 순간 사라질지도 모를 카카오톡 사진과 동영상도 아쉽고, 이 변화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으며, 멀쩡한 핸드폰을 두고 새 제품을 사야 한다는 점도 상당히 곤란하다. 그러나 하루에 예닐곱 시간씩 뇌에 힘을 빼고 사는 것도 더 이상 할 짓이 못 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건, 이 글을 올리고 나면, '아, 그냥 스마트폰 계속 쓰기로 했습니다.'라고 말을 바꾸는 게 민망해서라도 디지털 디톡스를 감행하지 않을까 하는 얕은 속셈 때문이다.
과연 다음 글은 새 핸드폰 소개일까, 머쓱한 포기 선언일까.
+) 내 매거진 표지 실화인지......
제목이랑 너무 잘 어울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