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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이 Sep 24. 2023

6. 남의 일기 구경하기

를 제안합니다. (내 일기 읽어 달라는 말)

일기 쓰기엔 몇 가지 난관이 있다.


우선, 펜을 쥐고 글씨를 쓰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이다. 

글자 쓰는 속도는 생각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 일기를 손으로 쓴다는 건 웬만한 인내심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다. 생각은 이미 다섯 문장을 넘어갔는데, 손으론 겨우 '오늘.. 은.. 친구랑.. 만났.. 다...'를 쓰고 있는 순간은, 좁은 길에서 네 명이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는 느낌과 흡사하다. 속이 터진다는 말이다.


어렸을 때 일기 쓰는 게 싫었던 것도, 쓰는 행위 자체가 귀찮아서였던 것 같다. 


(어차피 쓸 생각도 없었으면서 괜히 노력은 해 본 척했던 3학년의 나)


한컴타자연습으로 '별 헤는 밤'을 마스터한 4학년 즈음에는 컴퓨터로 일기를 써서 인쇄한 후 일기장에 턱 갖다 붙이는 요행을 부리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 해엔 제법 일기 글밥이 늘었다. 쓰는 것도, 고치는 것도 쉬워지니 일기도 쓸만해졌다.


일기장도 문제다. 그걸 유형의 형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내 손으로 방 청소를 하지 않는 습성과 맞물리면, 수시로 엄마에게 발각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일기가 의무가 아니게 된 나이부터는 일기에 날것의 진심을 담기 시작했으니, 엄마에게 들킨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사춘기 학생들의 마음을 아는지, 문구점에서 파는 일기장엔 은색의 작은 자물쇠가 달려있기도 했다. 그러나 난 그 자물쇠를 열 유일한 열쇠를 늘 2주 내에 잃어버렸으므로,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철 지난 일기장은 갖다 버리기도, 계속 간직하기도 애매하므로 성가신 존재다. 게다가 난 일기장을 사놓고 그걸 절반 이상 채운 적이 없으니, 초반 네다섯장만 빽빽한 수첩이 한가득이다.


그러나 이젠 그 모든 난관에서 벗어났다. 쉽게 쓰고 몰래 쓸 플랫폼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매일 쓸 필요도 없다. 마구잡이로 일기를 써놓고 뒤늦게 그걸 꺼내보는 건 상당히 재밌는 일이다. 나는 대체로 무계획적이기 때문에, 일기를 블로그 세 개에 나누어 적고, 때로 한글 파일에 적기도 하며, 노션에 적기도 한다. 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덕분에, 가끔 잊고 있던 기록을 발견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코트 주머니에 넣고 잊은 천 원짜리 지폐(5만 원 지폐라고 썼다가 고쳤다. 나는 5만 원 지폐는 절대 잊지 않는다.)를 다시 발견하는 기분이다. 


오늘도 버려둔 블로그에 갔다가 예전에 쓴 일기를 발견하여 몇 편 올려본다. 신성한 브런치스토리에 욕까지 고대로 노출하는 건 민망하니 욕은 가리고 올리겠다.






범죄도시2를 보고 손석구 배우에게 반해서 재관람한 다음날 쓴 일기인가 보다. 

너무 대충 쓴 일기라, 저기서 말하는 '글 하나'가 뭔진 모르겠다. 

차돌박이가 비싸서 이삭 토스트와 딸기바나나주스를 시켰나 본데, 목이 마른데도 물을 안 마시고 참았나 보다. 엄마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봐도 미련하다. 게다가 이삭토스트는 고작 걸어서 십 분 거리인데 그걸 배달을 시켰네. 다음 주부터 인생을 똑바로 살겠다고 했지만 난 지금도 똑바로 살고 있지 않다. 유감이다. 그러나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쓴 걸 보니, 큰 걱정도 없었나 보다. 




좀 우울한 시절에 쓴 일기도 있다.


이땐 바빴다. 당시 써놓은 글만 읽어도 여유가 없어 보인다. 업무도 많았고, 대학원에도 다녔고. 아이들도 학부모도 쉽지 않아 수능 기출문제까지 뽑아 풀었던 해로 기억한다. 선생이 돼서 수업 준비 대신 공문이나 읽는 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고, 그래서 더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은 저 상황에선 벗어났다. 실제로 울었던 게 소문이 나긴 했으나 그건 지금의 내 인생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고, 그때의 동료들과는 모두 흩어졌다. 

그냥저냥 다 지나갔다. 늘 그랬다.






아래 일기처럼, 좋은 일만 모아서 쓰는 일기도 추천한다. 몇 년이 지나서 봐도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아침에 커피를 마셨다. 온몸에 카페인 퍼지는 기분이 짜릿하다.
오늘 온 공문은 편철만 하면 돼서 좋다.
일기를 아무도 안 미루고 다 냈다. 1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잔소리 안 해서 좋다.
일기 댓글 쓰는데 카페인덕인지 유난히 멘트가 술술 나왔다. 물론 글씨는 엉망이다.
오늘은 좀 늦게 출근했더니 일찍 온 학생들이 계단에 매달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왜 늦게 왔어요 하고 보채는 걸 보니 순간 좀 귀여웠다.
연필에 테이프를 둥둥 감아 요상한 장난감을 만든 시현이에게
가지고 나와. ㅡㅡ하고 한심한 표정을 지었더니 반 애들이 다 웃었다.
압수~ 하고 교과시간에 몰래 가지고 놀았다. 재밌었다.
오랜만에 대청소해서 집이 좀 봐줄 만했다.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미술시간이다. 재밌을 것 같다.
벌써 금요일이다. 일주일이 금방 갔다.
나는 월요일이 진짜 싫은데 애들이 월요일 좋아~라는 이상한 노래를 불러서 피식 웃었다.
화요일은 수업이 너무 많아 힘들다. 그래도 수요일은 5교시라 좋다.
수요일 대애박 급식 맛있다 짱이다 짜릿하다.
선생님 덩치를 봐라 하고 튀김 다섯 개 먹었다. 선생 된 보람을 느꼈다.
인터넷으로 산 신발이 발에 꼭 맞아서 처음 신고 출근하는 내가 너무 멋져 보였다.
문제에 밑면의 넓이가 주어지면, 높이만 곱하면 곧바로 부피가 나와요~ 괜히 원주율로 나눠서 반지름 찾지 마세요~ 시간낭비야. 바보야 바보!
했는데 주원이가 그렇게 구하고 있었다.
애들이 "주원이 선생님이 바보라고 한 행동 하고 있어 ㅋㅋ" 했다.
나는 인자한 표정으로 괜찮아~ 바보일 수도 있지. 했다. 다 웃었다. 뿌듯하다.


(*주원이는 저런 농담을 즐기는 아이였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작년 겨울에 쓴 일기다.


날이 춥다. 

알람을 초단위로 맞추기 시작했다. 

이불속에 있을 수 있는 최후의 시간을 계산하느라 졸린 와중에도 머리는 바삐 돌아간다.

학교에서 시간 계산을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는 건

아침잠과 샤워 시간을 살뜰하게 쪼개어 쓰게 될 어느 미래를 위함일 거다.

황진이는 동짓날 밤 한 뭉텅이를 이불속에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밤에 펴겠다고 했던가.

황진이는 밥벌이의 무서움을 모르나 보다.

나라면 주저 없이 12월 어느 월요일 아침에 그 밤을 펼칠 것이다.


작은 방에 숨 쉬는 건 나 하나라, 보일러를 트는 데 주저하게 된다.

8년씩이나 돈을 벌었는데, 이 정도 사치도 부리지 못하는 게 못내 억울할 때가 있지만

폭등했다는 가스비를 생각하면 억울함마저도 연료 삼아 태워버려야 할 것이다.


성적 작업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돼서 곧바로 퇴근했다.

의사 선생님 일정으로 인해 병원 예약이 미뤄진 덕에

오랜만에 텅 빈 저녁을 맞이했다.

미뤄놓은 빨래를 돌리고, 집 정리도 손톱만큼 해치웠다.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있는데,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면서도 막상 책은 펼치지 못하고 있다.

역시 독서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순간은 책을 펴는 순간이다.

우리 집의 집요정은 책표지 위에 앉아있는 게 분명하다. 아마 50kg은 족히 나갈 것이다.

아무래도 좋으니 내일 새벽 축구를 볼 때면 내 옆에 앉아 수다라도 같이 떨면 좋겠다.


난 텅 빈 집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친구와 함께 포르투갈전을 볼 때 소리를 꽥꽥 지르는 나를 발견하고 알게 된 사실이다.

혼자 축구를 볼 때면 모든 소리를 안으로 삼켰던 거다.

현대사회의 훌륭한 이웃이지만,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 들숨 한 움큼을 집어먹는 게 전부인 것이 내가 원하던 삶의 모양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지독한 침묵과 고요를 나는 꾸준히 사랑한다.


빨래를 널고 나면 일 안 하는 집요정 엉덩이를 걷어차고 책을 펼 것이다.

한아가 무슨 말이든 걸어주겠지, 텅 빈 내 밤에.


충격적이게도, '지구에서 한아뿐'은 아직도 읽지 않았다. 

저렇게 구구절절 일기로 남겨 놓을 정도면 읽을 만도 했을텐데 저걸 안 읽었네.

나는 정말 대단히 대단하다.






그리고 마지막 일기는 밑도 끝도 없이 주식 얘기로 끝나버린 최근 일기다.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하루는 쓰고 하루는 쓰지 못했다.


마음이 3일이라도 간다면 120번의 결심만에 1년을 꽉 채워 보낼 수 있을텐데

하루짜리 마음을 가지고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럴 땐 역시

내가 너무 귀여운 탓인가! 하고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건 오늘은 또 쓰고 있다는 거니까.


인생을 바라보는 이론 중 강아지 산책론이라는 게 있다.

(모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 생각해 낸 건데, 아직 학계의 인정은 받지 못했다.)

산책을 할 때 공원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강아지보다는

옆에 놓인 화단도, 튀어나온 돌멩이도 건드려 보고

옆집 강아지 똥꼬 냄새도 킁킁 맡아가며 '갈지'자로 걸어가는 강아지가 더 행복하다는 거다.


그러니까 좀 두리번거리면서 인생을 살면, 땅에 떨어진 행복을 주워 먹을 기회도 많이 생긴다는 건데

이건 사실 집중력과 인내력이 바닥난 내가 내 인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생각해 낸 이론이다.

강아지들이 직진하는 대신 친구 똥꼬를 킁킁거릴 때 느끼는 행복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제 일기를 쓰지 않은 대신 이불속에서 녹아내리는 기쁨을 누렸으니 이건 분명 남는 장사다.


시간이 빠르다.

나는 일기를 쓰지 않은 하루를 해명하기 위해 인생론까지 끌어다 써야 하니 시간이 더 바삐 흐른다.

1년 내내 잡다한 생각을 하다가 12월을 맞이했다.

내년부터 만 나이를 사용한다고 하니

내년의 절반 정도는 올해보다도 어린 나이로 살게 될 거다.

이놈의 인생.

갈지 자로 걷는 것도 어지러운데 후진까지 시키는구나.

이왕 할 거면 이십 대 때 좀 해 주지. 하고 입이 툭 튀어나오지만

사실 삼십 대를 한 해쯤 더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엄마의 오십 대가, 아빠의 육십 대가 좀 더 늘어나는 것도 좋다.

국가의 법이 바뀌었으니

몸뚱이도 알아서 1년 전의 컨디션으로 돌아가주면 좋겠다.

1년 더 건강해진 몸뚱이가

삼전 주가 멱살도 1년 전으로 잡아끌고 가주면 좋겠다.

오늘의 일기는 확신의 미괄식 구성이다.


그리고 나는 삼전에 아직도 물려 있다. 살려줘요 재용재용




한동안은 일기를 안 쓰고 일상을 흘려보내기도 했는데, 다시 글을 열심히 쓰기 시작한 건 친구 덕이다. 그날의 기록도 아직 남아 있다.


친구와 카톡을 하다가, 일기장으로 쓸 공책을 고르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 문득 나도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또 했다. 그런데 요즘 뭘 했나 떠올려보니, 도무지 한 일이 없는 거다. 

"야, 오늘은 '도넛 두 개 샀더니 모자랐다. 다음엔 세 개 사야겠다.' 이런 생각밖에 안 했는데 이걸로 일기 써도 되나?" 

나는 킬킬거렸고, 친구는 그거라도 쓰라고 했다. 

그래서 쓴다. 아무것도 아닌 것조차 써 놓으면 뭔가가 되겠지.


친구 말은 맞았다. 


저 날 일기를 써 놓았으니 난 적어도 그날 도넛 두 개가 아쉬웠단 것 정도는 알 수 있게 됐다. 

난 이제 도넛만큼은 꼭 세 개 이상을 사겠지. 


그러니 일기를 쓰자. 

일기는 행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행복은 충분한 도넛에서 나오고 

적정 도넛량은 과거의 내가 기록해 놓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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