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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이 Oct 03. 2023

실외배변 인간의 산책

(※똥 얘기 주의)

엿새째 똥을 못 쌌다.  


엿새동안 내가 삼킨 탕수육과 떡볶이, 차돌박이와 김밥을 떠올리면 이건 응급상황 수준이었다.


상황을 이렇게까지 방치한 데엔 이유가 있다. 우선 주중이었으니 함부로 변비약을 먹을 수 없었다. 수업 중엔 똥오줌도 참아야 하는 것이 선생의 도리인 데다가,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쉬는 시간에 똥을 쌌다간 내가 똥쟁이라는 소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보들, 똥을 잘 싸는 게 얼마나 축복인데.

그러나 열 살짜리 애들을 붙잡고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해도 그 애들은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어렸을 땐 특혜라고 생각했던 교직원 화장실은 사실 교직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이제야 느낀다. 역시 잘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려선 안 된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내 경우엔 이럴 때 키위가 직빵이다. 변비약만큼 단번에 큰 시련을 주지도 않으니 대장을 회유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난 주중 내내 응아에 실패하고 화장실을 나올 때마다 내일 퇴근길엔 키위를 사 오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나 하필 그 주는 왜 그렇게 바빴던지. 퇴근 후 일정을 소화하다 꼭 집에 들어와 화장실 문을 마주하는 순간에야, '아 맞다, 키위!' 하고 생각이 나는 거였다. 그러나 그걸 깨달았을 땐 이미 하루치 체력을 소진한 후였으므로 나는 다가올 희망찬 내일을 막연히 그리며 그냥 잠들길 반복했다. 그렇게 안일하게 살다가 일주일이 흐르고 만 거다.

              

금요일 퇴근 후, 일주일 만에 애인을 만나 햄버거를 먹은 후 나는 그에게 은밀하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기야, 나 6일째 똥이 안 나와."     

"앗!"     

남자친구는 흠칫 놀라며 날 쳐다보더니,      

"방금 패티가 두 장이나 들어간 햄버거를 먹었으니까 곧 나오지 않을까?"라는,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의 기분제(祈糞祭)를 지내주었다. 이과와 문과의 머리를 합해도 변비에는 답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똥이 마렵기 시작한 거다. 그의 마구잡이 긍정회로에 내 장이 응답하다니. 공대 출신의 회로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난 쓸데없는 얘길 길게 늘여 쓰는 재능이 뛰어나지만, 독자들에게 내 배변 과정을 읽게 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난단 것 정도는 안다. 나는 응가만 누었지 양심은 누지 않은 의젓한 현대여성이니까. 그러니 이쯤에서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말하자면, 난 '그걸' 해내고야 말았다. 무려 엿새 만에. 공교롭게도 남자친구와 만난 지도 정확히 엿새 만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난 본인을 만날 때마다 똥이 마렵다고 난리를 치는 여자친구인 셈이었다.  


화장실에 몇 번 들락거린 후에, 가벼워진 몸으로 산책에 나섰다. 우린 그 동네를 자주 걷는다. 30분 가까이 도로 곁을 따라 걷다 보면 공원이 나오는 코스라, 요즘 같은 가을날에 걷기엔 딱이다. 나는 그 길에 주로 단지바나나우유나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러는 동안 초등학교 몇 군데를 지난다. 운전 중에 만나는 어린이 보호구역은 그 자체로 공포물이지만, 산책하면서 마주치는 노란 신호등과 옐로카펫, 노란 울타리는 나름 산뜻한 멜로영화의 배경이다.

                

그날 밤길을 걸으며 우리는, 헬멧을 쓰지 않고 킥보드를 탄 채 도로를 질주하는 커플을 보았고, 아무 데나 버려진 탕후루용 종이컵 더미를 보았으며 겁에 질린 아기고양이를 맹렬히 쫓아가는 어린이를 보았다. 그럼 난 "와, 저 사람들 좀 봐. 운전자들은 킥보드가 진짜 무섭겠다."하고 기함을 하거나 "떼잉"하고 혀를 쯧쯧 찼고, 짧은 다리로 전력질주하는 아기고양이를 힘껏 응원했다.

               

길 한쪽에는 깻잎 모양의 풀이 무성했다. 내가 아무리 그게 깻잎이라고 우겨도 그는 동의해주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어떤 풀은 뜯어먹고 어떤 풀은 뜯어먹지 않게 된 건 조상님들이 그게 식용인지 아닌지 하나하나 몸으로 시험해 본 덕이겠지. 그럼 나도 후손을 위해 저걸 뜯어먹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어쩜 깻잎보다 더 맛있을지도 모르는데. 산책 중에 이천 년 후 식사할 후손까지 생각하는 나의 어여쁜 마음을 누군들 알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 깻잎더미를 지나쳤다.


그런데 그 순간, 또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한 거다. 나는 그 풀을 뜯어먹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 좋아요 누르고 싶어."


언젠가, 강아지들이 산책할 때 쉬와 응가를 누는 건 그 장소가 맘에 들어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는 말을 주워 들었다. 그러니 좋아요를 누르고 싶다는 건, 똥이 마렵다는 우리만의 암호였다.      


남자친구를 만난 지 네 시간 만에, 네 번째 밝히는 변의였다.

그는 어둠 속에 잠시 멈춰서서 날 바라보며 말했다.

"... 자기 실외배변 하는 스타일인가 봐?"               

야외 데이트 내내 응가타령을 하는 나를 본 그의 결론이었다.


"... 개 같단 소리야?"     

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에이... 개라기보단, 강아지 같단 말이지."   


뭐가 다른지 모르겠으나 그는 '개'에 포장지를 둘둘 말아 '강아지'로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거대불독이 된 기분이었다. 얼굴이 누렇게 뜬 황토색 불독.


아닌 게 아니라, 난 산책 중에 똥꼬를 열어젖히는 강아지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두 발로 걸어다녔을 뿐인데 장이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걸 보면, 네 발로 걷는 강아지들의 장은 사람보다 두 배는 더 흔들거리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내 똥도 통제하지 못하는 주제에 동네 강아지들의 장운동까지 살필 처지가 아니었다. 여차하면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사고 화장실 이용권을 얻을 작정으로, 열심히 눈을 굴리며 걸었다. 횡단보도에 다다르자마자 초록불이 뜨는 순간이면, 기막힌 신호운에 식은땀까지 흘려 가며. 하늘에 뜬 게 상현달인지 하현달인지 생각하던 낭만적인 산책은 진작 끝나 있었다.


"쫌만 더 가면 공원이야!"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슬쩍 들어 보니 공원 화장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응가가 마렵고 화장실이 보일 때, 최대한 빠르게 걸어가는 게 맞을까, 장을 달래며 침착하게 걷는 게 맞을까. 다년간의 배변 경력자인 나는 그걸 깊이 고찰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적정 속도를 알았다. 화장실은 자꾸 뒷걸음질을 쳤고 나는 엉거주춤 걸어갔다. 그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생은 혼자구나.

낭만적인 달밤의 산책길에, 난 별안간 삶의 진리를 깨달아버렸다. 똥을 참다 돈오의 순간을 마주할 줄은 몰랐다.


공원의 공용화장실은 똥이 마려운 행인에게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했다. 그야말로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이었다. 화장실을 나오고 보니 아까 눈앞을 빙빙 돌던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선명했던 별자리들, 예컨대 두루마리휴지자리와 변기자리는 얼굴이 노랗게 떴을 때만 보이는 환상이었나보다.

     

이모네 집 몽실이는 산책을 좋아한다.

풀냄새를 맡으면 똥을 눈다.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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