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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생에 애벌레였나 봅니다

넓은띠녹색부전나비와 20일간의 동거

by 플랫폼

평소엔 흐릿하기만 했던 꿈이 그날따라 너무나도 또렷하고 선명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려는 설렘의 감정들이 너무 과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나친 긴장 때문이었을까. 난, 백척간두에 놓여 있었다. 그날 나의 끝을 보았다. 지구별을 완전히 떠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을. 그건 내가 현생에서 할일을 다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늘 아직 할일이 남아있노라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꿈을 꾼후에


집채만한 사마귀 한마리가 포효하듯 날 뒤쫓아오고 있었다. 마치 넌 내 손아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어, 라고 외치는듯 가히 위협적이었다. 드디어 왕사마귀와 내가 눈이 마주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 그의 숨결까지 솔솔 느껴졌다.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 살인의 의지들이 점점 더 날 압박해오는 상황. 난, 나뭇줄기 끝에 아슬아슬 매달려 나를 구해줄 메시아가 와주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육신을 움직이려 해보았지만 더이상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영혼과 육신은 이미 내것이 아니었다. 몸을 비틀어봐도, 그럴수록 내 몸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묶여있는 듯 점점 옥죄여 올 뿐이었다. 더이상 선택은 사치였다. 마치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속을 계속해서 맴도는 듯한 이 느낌. 이제 정말 행운에 맏길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무력함과 함께 절망의 순간들이 날 엄습했다. 조롱하는 듯한 괴생명체에 비해 난 한없이 초라하고 미약했다. 결국, 이렇게 난 끝나는 것인가. 하던 찰나, 어디선가 시끄러운 싸이렌 소리가 울려왔다. 그 의문의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 주인님! 일어나세요. 기상 시간임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알람소리였다. 간밤에 맞춰든 그 알람소리에 겨우 꿈속을 탈출했다. 꿈에서 깬 후 한동안 잠자리에서 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남은
설레임과 동시에 긴장이라는
원치 않는것도 함께 온다



새벽 4시하고도 몇 분이 더 지난 시간. 식은땀이 송송 맺히기 일보 직전. 괜시리 머리에 쥐가 나고 눈은 오작동을 일으키듯 모호했다. 난, 분명 사마귀한테 잡아먹힐 뻔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창문을 열어 젖혔더니 차가운 공기가 아지트로 구렁이 담넘듯 스며 들어왔다. 불길한 꿈일까. 꿈자리가 모호하고 요상했다. 오늘 국망봉 광릉요강꽃 보러 가기로 했는데. 신이주신 황금연휴 첫날.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결정장애가 다시금 되살아난 느낌. 3, 4, 5일은 가족들과 만나기로 했으니. 나만을 위한 시간은 오롯이 오늘 하루 뿐이다.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달리는 고속도로위에서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꿈자리 때문인지 별의별 상상을 다 해가며 허둥지둥 애마를 몰아간다. 마치, 구름위를 둥둥 떠가듯 좌불안석이다. 혹시 난, 전생에 벌레였던건 아닐까. 요즘 내가 시간만 나면 벌레찿아 산천을 떠도는걸 보니 벌레였을 거라는 가정도 무리가 아닌듯. 그날따라 고속도로도 꽉꽉 막혀 그렇찮아도 심드렁해진 플랫폼의 마음에 대못질을 해댄다. 사고라도 난것인지 물을 잔뜩먹은 하마처럼 엉금엉금 기어가기를 계속한다.


그렇게 국망봉을 향해 가던 길, 아들에게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은둔형외톨이의 삶에서 탈출한지 불과 얼마되지않던 그 아들이라서 웬지 불안했다. 무슨일일까. 그냥 전화했단다. 그 말속에 시가 박혀 있었다. 과거 그와 난 한동안 갈등속에서 지냈다. 난 바람따라 산천을 떠돌며 수행에 전념하고 있었고 그는 텅빈 방을 홀로 지켰다. 시간은 길고도 질기게도 흘렀다. 때마침 나타난 코로나는 단절을 더욱 부채질했다. 불길이 되어 둘사이를 완전 갈라놓았다.


그때 난, 맨탈 슈퍼을이었다. 세상 갈등앞에서 너무도 초라한 애숭이에 불과했다. 그때 그의 간절해진 눈빛을 처음으로 보았다. 힘듦이란 감정들이 그 눈빛에 그대로 스며 있었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최선의 답은 잔잔한 기다림이라는 것을. 내안의 화의 감정을 조용히 추스리며 견뎠다. 백마디의 말보다 그져 하나의 미소로 답해 주고자 노력했다. 기다림이 나와 그와 우리 가정을 지키는 유일한 선택지였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런일이 있고난 후, 몇 년이 더 지났더니 어느새 나에게도, 그에게도 마음속에 잔잔한 단단함들이 들어와 있었다. 집채만한 파도앞에서 묵묵히 견뎌주고 다시 일어나 준 그에게 감사했다. 내일이면 만날건데 굳이 전화를 했던 이유가 뭘까. 나, 보고싶어서 전화했어? 라고 대꾸해 줄까 하다가 지긋이 참고 말았다. 혹시나 비수에 꽃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올까 봐. 또 기다려 보기로 했다. 기다림의 미학이란게 참으로 신비로운 존재였다. 처음 기다림은 힘겨웠지만 두번째, 세번째는 관성이 붙어 그리 어렵진 않게 되었다.

국망봉 광릉요강꽃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한시간여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달려 도착한 국망봉 자연휴양림. 오를까 아니면 말까. 평소에 이런 꿈같은 건 전혀 믿지 않는 나였지만 오늘따라 오만가지 잡념들이 내 앞길을 막아선다.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몇 번을 망설인끝에 오늘은 특별히 조심 또 조심해서 오르기로 한다. 원래는 견치봉까지 올라가려 했었지만 모든 화의 근원이 과한 욕심이라 하니 그냥 마음 내려놓고 딱 국망봉까지만 다녀오는 걸로. 오늘의 목적은 광릉요강꽃.


님을 만나기위한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해발고도 1,168미터 국망봉 제3코스. 봄의 기운 잔뜩받아 나목들이 제법 푸릇푸릇 해졌다. 배낭을 어깨에 둘러맸을 뿐인데 찌푸덩한 마음도 어느정도 풀어졌다. 먼발치로 능선들을 올려다보니 운무가 산정상을 넘나들고 있었고 산행들머리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산행초반부터 머리 쳐박고 조심조심 걷는거로.


무모한건지 간덩이가 부은건지 산행초반 30분을 조심하라, 라며 그리 일렀건만 산행 들머리 앞에만 서면 일단 서두르고 본다. 자나깨나 머리조심. 그리고, 뱀, 멧돼지 조심. 어젯밤 꿈들이 자꾸 날 뒤따라 다녔다. 눈에 땀이 날 정도로 집요하고 억척스러웠다. 그날따라 넓적배사마귀 녀석은 왜 자주 보이던지. 감정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깎아지른 오르막 길 앞에선 그 조차도 무용지물.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나를 찾아 오르는 길이었는데.


광릉요강꽃 보러 가는길에
그 님을 만났다



스님들이 묵언수행하듯 가다서다를 무한 반복한다. 앞으로 이 오름짓을 얼마나 더할 수 있을지. 내 안에 기득차있는 잡념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떠나온 길인데. 그리고 빈자리에 뭔가를 채울 수 있기를 바라며 오르는 길에 몇 걸음걷다가 하늘쳐다보고 또 몇 걸음걷다가 주저앉아 한숨쉬고. 주변에 사마귀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오름짓하다 된비알 고개라도 나올라치면 다시금 신발끈도 단단히 매어준다. 이름모를 새소리도 요란하고 신갈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미세하게 출렁거린다. 그런데, 신갈나무 잎새위에 괴생명체가 내 더듬이에 걸려 들었다. 분명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그 사마귀는 아니었다. 점점 더 가까이 가보니 부전나비 종류 애벌레처럼 보인다.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속이지.

25년 05월 02일, 국망봉 3코스 오름길 신갈나무 이파리에서 만난 애벌레

과거에 일면식도 없는 꾸물이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올커니. 꿈은 반대라고 그랬지. 내 너를 만나려고 어젯밤 꿈속을 그리 헤매었었나 싶어졌다. 또다시 선택의 기로다. 미안했지만 사전 구속영장도 없이 결국 체포했다. 억울하면 법원판사에게 항의하라고 하며. 다행히 별다른 저항은 없다. 사마귀한테 잡혀먹는것보다 나한테 시집오는게 더 안전할거라고 꼬셔서 보쌈하여 모셔왔다.


오늘 시작부터 운이 터진게 아닌가. 더 올라가 아니면 말어. 하지만 광릉요강꽃한테 문안인사 정도는 꼭해주고 가야지싶어 기어이 또 오른다. 못말리는 꽃사랑이다. 고도를 높이자 발걸음이 점점 눈에 띄게 느려진다. 애벌레는 정상 구경시켜 주려고 배낭에 짊어진 채 올라갔다. 애벌레는 알까. 주인의 자상한 마음을.


해발고도 900미터. 이곳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두근두근 선녀들을 향해 한발한발 내려선다. 설마 숨어버리진 않았겠지. 나의 애절함과 광릉요강꽃의 요염한 자태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는데 매번 당한다. 한 일주일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정상거쳐 하산을 서둘렀다. 견치봉의 미련일랑은 이미 접은지 오래.

나에게 시집온지 4일만인 5월 6일, 용틀임이 시작된다. 전용단계

이제부터 본격적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오늘 하루를 방바닥에 모두 풀어놓고 사육통을 장만하러 또 다이소로 향했다. 어떤걸 사야하나. 난, 그녀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없다. 나비라는 것과 만났던 날과 장소. 마지막으로 먹이식물은 참나무라는 것과 또 부전나비 애벌레일거라는 추측밖에.


새집마련을 마쳐주고 몇 분간 관찰해보기로 했다. 기분이 안좋은건지 옴싹 달싹을 하지 않는다. 불만이 있으면 있다고 배가 고프면 고프다고 바디랭귀지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식성은 그리 까다롭지 않은 듯 한데. 거의 먹지 않는다.

부전나비와 나와의
긴긴 술레잡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시집온지 4일만에 드디어 용틀임이란게 시작되었다. 색상이 조금씩 조금싹 변한다. 그럼 그렇치. 분명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 생리적 변화가 있었던 걸 주인이 무지하여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이윽고 전용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제부터는 식음을 전폐하고 뼈를 깎는듯한 고통과의 싸움일터.


난, 지금부터 할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져 바라보며 언제 변태가 완성되는지 지켜만 봐줄 뿐. 사육통 청소를 말끔히 끝내주고 또 기도했다. 제발 무사히 날개짓하게 해달라고. 내 간절했던 소망을 들어주신 걸까. 만난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5월 9일. 드디어 진통끝에 번데기가 완성되었다.

5월 9일 번데기 완성후 14일만인 5월 23일, 드디어 날개짓을 시작하였다.

한고비는 넘겼고 지금부터는 긴긴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내가 주연이자 조연이면서도 엑스트라이다. 난 참아내고 견뎌내야만 한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점점 지쳐간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아직 변변한 이름도 없다. 세월아 너만 가지 사람은 왜 데려가는냐 는 박인희 노래가 유난히 별스럽게 흘러나온다. 일주일이 그렇게 하염없이 지나갔다. 별소득도 없이. 난, 왜 기다림에 목을 메는건지 모르겠다. 자나깨나 소식이 올까 애타게 기다린다.


이러다 기다림에 지쳐 목이라도 빠져버리지 않는건지 모르겠다. 불타는 금요일, 봄도 이제 끝물이다. 봄꽃소식들이 뜸해지고 철쭉들도 이제 내년을 기약하며 안녕을 고하는 중이었다. 아침, 출근길 전봇대위에서 까치들이 까악까악 울어댔다. 귀한 손님이라도 오려나. 불타는 금요일, 산책이라도 가야하나 싶어 아지트와서 옷을 갈아 입으려는데. 오, 느낌이 싸하다. 그래,

20일간의 꾸물이와의 동거. 결국, 그 바램은 현실이 되었다. 날개짓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앞 날개는 청록이 박힌 코발트색, 뒷날개는 황토색 짙은 회갈색. 고운 녹색빛이 형광등 불칯에 반사되어 온 방안에 반짝거린다. 쪽빛 가득한 자태도 너무나도 눈부시다. 그래. 원래 기다림이란 이런거야. 기다림의 끝은 우려와 달리 달고 좋았다.


내 그녀를 보려고 간밤에 파랑새가 그리 애닮게 울어대고 아침 출근길에 까치들도 축하 퍼퍼먼스를 시끄럽게 해주었나 보다. 잘 견디어 주어서 고맙다고 전해주었다. 모델역할까지도. 다음날 데리고 다시 도착한 국망봉 휴양림. 저수지 물결들이 바람에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고, 나뭇잎들도 그 애닮은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람에 수없이 출렁거렸다.


헤어짐을 직감했던지 내 마음도 나비도 주저했다. 헤어짐은 아픔이다. 사랑의 열매는 달아야 하는데 그리 해피엔딩같지 않았다. 20일간의 꿈같은 이야기가 한여름날의 꿈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난, 전생에 나비였던 걸까. 앞으로 나비와의 동거는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까.

잘가가라. 몇 발짝 날아가는가 싶더니만 다시 벚나무 잎새에 살포시 앉아 이별의 노래를 불러댄다. 그리고 주변을 몇 분간 배회하더니만 훨훨 국망봉 더 깊은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부디, 멋찐 친구만나서 행복하고. 또, 아들딸 많이 많이 나아 잘 기르고. 바이 바이.


계속해서, 나비와의 불편한 동거 시리즈, 05 첫헤엄치기는 위대한 것 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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