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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나비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점심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산책 삼매경에 빠지는 시간

by 플랫폼

요즘, 나에겐 새로운 루틴 하나가 생겼습니다. 사실 난 루틴같은 건 전혀 믿지않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소싯적부터 난 생각이 유난히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쓸데없는 잡념들에 잡아 먹히지 않고 지금껏 목숨줄을 연명하고 있다는 자체가 참으로 산기할 정도. 계획하고 주저하고 더듬거리기만 하다가 미해결상태로 가슴 한켠에 마음먼지로 눌러앉아 있는게 그야말로 산더미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날 괴롭히는 질문과 의문들. 엎친데 겹친격으로 요즘따라 더욱 극성을 부려댑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라도 타듯 말이죠. 그랬던 나에게, 갑작스레 다가온 루틴. 어느날 잡념에 포로가 되어질 징후가 느껴지면 가차없이 난 걸어주어야 했습니다. 걸어주면서 한동안 깊은 명상에라도 잠겨있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알찬 장면과도 마주할때가 있다는 것. 부수적으로 얻게되는 노획물들은 덤이기도 하구요.




봄바람이 내 육신을 부드럽게 간질여대던 을사년 5월의 어느날. 점심시간 한 시간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 무난하던 삶의 트랜드에 조금의 변화를 주기로 했습니다. 이른 점심을 먹어주고 달콤했던 포만감을 잠재우기 위해 나만의 행복발전소를 향해 떠납니다. 럭셔리한 테이크아웃 커피까지 한잔 빼어들고 산책로로 향하는 중. 오늘은 간단히 30여분만 걸어줄 생각입니다.

5월 30일 산초나무위에서 애벌레를 만났다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고 휘파람마져 절로 입가로 스멀스멀 새어 나올것같은 그런 시간입니다. 왠지 기분마져 업이 되어지는 순간. 살다보면 누구나 가끔 이런날이 있기 마련이죠. 그녀와 나, 인연이란 걸 확신하게 된 건, 아마도 첫 만남이 있은 후 얼마간의 후숙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아마도 25년 5월 20일, 그날도 여전히 난 산책 삼매경에 깊이 심취해 있었죠.


조용히 감성노래까지 들어가며 걷기 삼매경에 올인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긴꼬리제비나비 한마리가 나타나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산초나무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다시금 날아 올랐다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중. 완벽한 꽃무늬, 체크무늬가 내 혼을 빼놓을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인 빈티지한 화려함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두리번 두리번 잠시 주변을 탐색하는가 싶더니만 몇 번의 활공끝에 나를 의식한듯 결국 자취를 완전히 감춰버렸습니다. 걷기멍허탈멍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죠. 쥐도 새도 모르게 스마트폰 가지고 촬영을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완벽하게 실패로 끝나버렸습니다.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그런 기분 아실테죠?. 사실 그날은 무슨 영문인지 조차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 장면이 2세를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필사적인 산란 장면이였다는 것을.

25년 6월 6일 사육통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한동안 긴 침묵으로 오염된듯한 사무실, 오후내내 공기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애써 태연한척도 해보았지만 사무실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에 포로가 되어 있었죠. 산책 삼매경때의 조그만 앙금이 날 짓누르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무슨 시츄에이션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이윽고 미련이 되어 내 뇌리를 자꾸 흔들고 있었습니다.




이때 확 떠오른 생각. 무릎을 딱치며 새로운 생탐실험을 하기로 작심합니다. 퇴근후 사육통하나 들고 다시 나만의 행복발전소로 향했습니다. 궁금하면 참기 힘들어하는 내 성격이 한몫했었구요. 그녀가 잠시 앉았던 자리를 물색해 보기를 여러번. 급기야는 고성능 돋보기까지 사용합니다. 심지어 해부현미경까지 동원할 뻔 했다는.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요? 이윽고, 미세한 알의 흔적을 발견해 냈습니다. 발견했다기 보다는 내 집중의 힘일테죠. 안도감과 설렘이 전두엽을 강타합니다. 주섬주섬 가지 몇 개를 채취, 사육통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아지트로 되돌아 오는길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승리감에 도취되어 룰루랄라길이 되고 있었습니다.

25년 6월 11일 용화가 진행중, 사육통 귀퉁이에 실을 묶고 거꾸로 매달려서 고치를 짓고 있다

그날 이후부터, 나의 삶도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지트. 텅빈 집안엔 오직 적막만이 흘렀고 그 적막감에 내 마음은 늘 허전하기만 했었는데. 나비 알들이 입주한 후로 난, 퇴근도 빨라지고 술집 출입까지도 멀리하게 되었다는 웃픈이야기. 다람쥐 쳇바뀌돌듯 무의미한 삶의 노잼들이 깨지는 반전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자나깨나 문안 인사하는게 새로운 루틴이 되어 있었죠. 언어는 달라도 둘이 한몸이라도 되듯 소통에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또 10여일이 지난 어느날, 거짓말처럼 나비 알들의 색상이 미세하게 변화되는가 싶더니만 고맙게도 손톱보다도 작은 꾸물이 두마리가 태어나 주었습니다. 난, 순간 눈물 울컥 할뻔 했습니다. 두마리 파랑새의 발견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죠. 전 알부터 사육을 시작했던 건 사실 처음이라서요. 마치 뉴튼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걸 기다리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명했듯, 이 사소한 발견 하나에 어깨가 들썩거렸고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난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마음이 벅차니 세상도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갑자기 난 마음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미 나비는 보통 몇 십개의 알을 낳는데 그 수많은 알들 중 어른 나비로 날개짓을 성공하는 건 고작 1~2프로밖에 안된다는 사실. 오늘 완전 땡잡은 날입니다. 그 나비가 훗날 나에게 시집온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다는 걸 인정해주는 날이 하루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주인인 반려인간이 새나 사마귀같은 천적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주고 숙식까지 제공해주니 말입니다. 세상에나 내 생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내 정성에, 간절한 기도에 생명의 신인 조물주까지도 감복을 했나 봅니다. 한 줌 희망과도 같은 작은 생명과 나와의 한방살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입니다. 나에게도 반려자가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또다시 산초나무를 채취하러 갔습니다. 얼떨결에 곤충보호자 아니 반려자가 되어졌습니다.


책임감이 배가되고 진짜 엄마처럼 보살피기로 작심해봅니다. 부모처람 좀더 싱싱한 먹이를 먹이고 싶은 건 모든 자식가진 부모들의 공통적인 입장일테죠. 조건없는 사랑 말이죠. 물론, 저는 조건이 한가지 더 있긴 합니다. 꼭 날개짓을 보여 달라는 것. 드디어 애벌레 멍이 시작되었습니다.

25년 6월 12일 번데기가 완성되고 6월 22일 번데기 안에 미세한 색상변화가 감지된다.

조석으로 작은 온기와 미약한 숨결이 느껴집니다. 너무나도 작고 여려서 금방이라도 부셔질듯 연약한 존재를 그져 멍하니 바라보기만을 여러날. 한동안 잘 먹고 잘 싸고 문안하게 잘도 자라 주었습니다. 그 흔한 반찬투정 한번도 없이. 실은 저도 자식 세명 키워본 경험이 있거들랑요.


전 낳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는 줄 알았드랬죠. 결국 수많은 시행착오와 몇 번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경험을 통해 어느정도 산지식을 터득하게 되었지만요. 농사가 만사란 이야기를 철칙으로 알며 애벌레와의 교감에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농심으로 말이죠.




그렇게 별일없는 하루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내 삶의 모토는 별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 번의 탈피도 있었고 자신의 탈피각을 먹어치우는 센스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죠. 그 흔한 사춘기도 없이 무사히 넘어가는 듯 싶더니만, 방심하는 사이 어느날, 유감스럽게도 그 중 한마리가 운명을 다하고 말았습니다. 저 밤하늘에 아주아주 작은별이 되어버렸죠.




괜찮다 괜찮다 수없이 되뇌였지만 전혀 괜찮치가 않았습니다. 모든게 내 잘못같고 울컥하는 감정이 아지트 공기를 점령해 버립니다. 아마도 물방울이 잔뜩맺힌 이파리를 가져다 준 나의 실수. 그것때문에 설사라도 하지 않았을까 그져 추측만 할 뿐. 많이 미안해집니다. 나의 무능함으로 인해 그 작은 생명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뼈아픈 자책만이 앞섭니다.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음도 또다시 깨닫습니다. 생로병사의 비밀, 영원히 풀지못할 숙제이기도 하죠.

20여분후 양수를 터트린 후 계속 세포분열이 진행되더니만 온전한 날개가 되었다

그리고, 남은 한마리를 위해 사육통을 다시 신상으로 바꿔 주었습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죠. 마음이 조금 안정되고 또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먹는게 조금 뜸해지더니 곧바로 수도승처럼 참선모드에 돌입합니다. 본능적으로 먹고 싸고 탈피하고. 퇴근후 잠시의 산책후 돌아와보니 조그만 색깔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변태란게 시작되려나 봅니다. 인간의 산통과 비견되는 뼈를 깎는듯한 고통이 수반된다는. 모든 곤충들의 숙명이랍니다. 인간들의 사춘기는 저리 가라할 정도.




나도 한때는 여러길을 걷던 때도 있었죠. 때론 길을 잃고 방황하던 때도. 그럴때마다 날 지켜준건 자연의 주인공들 이었었는데. 내가 할일이 하나도 없다는게 그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져, 별일 없기를 두손 바지런히 모아 기도해줄 뿐. 무사히 용화가 진행되어 번데기가 되고 날개짓에 성공할 수 있기를. 그져 빌어만 줄 뿐입니다. 얼마간의 진통끝에 드디어 번데기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한고비는 넘긴 셈.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기만 합니다.

날개를 말리는 중

기다림, 그리고 빨리 날개짓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입니다. 또 우화부전만큼은 막아달라고. 이렇게 제비나비와의 인연이 우연히 이루어졌습니다. 운명처럼이요. 내 더듬이가 둔감해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우연이 필연이 되고 또 운명이란게 되기 직전이었죠.

포즈까지 멋지게 취해준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 그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번데기 색상이 변하는가 싶더니만 드디어 빠꼼히 얼굴을 내밀어준 그녀. 10여분의 기다림이 마치 1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던 건 그리움이 너무 애절해서 일테죠. 마음속으로 열띤 환호성을 외쳐주었습니다. 야호입니다. 이날을 위해서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웠는지 모릅니다. 양수가 터져 나오더니만 필사의 몸부림이 몇 분간 계속되었습니다.

창문밖에서도 잠시 모델역할 수행중

영차, 영차 마음껏 응원해 주었습니다. 우화부전이 아닌 기필코 날개를 달고 저하늘을 맘껏 활공하고 말겠다는 강한 집념이 엿보입니다. 저도 맘조려가며 응원해주고 또 기다려 주었습니다. 몇 분이 더 지난후 드디어 완전체의 모습. 황홀합니다. 통쾌합니다. 나도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어깨가 들썩거립니다.




일상이 매일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비나비가 뭐라고. 내마음을 이렇게 들었다 놓았다 흔들어 놓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이 하늘로 붕 떠있는 느낌입니다. 이 순간만큼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아무런 생각도 느낌조차도 없었습니다. 그져 이 순간을 느끼고 즐길 뿐. 마음부자란 이럴때 쓰라고 만들어놓은 단어가 아닐련지.

이게 마지막이었다

수고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기다림이 이토록 황홀한 것이었나요. 이제 그만 보내주어야 할 시간입니다. 그녀와 나, 둘은 헤어짐을 직감했습니다. 더 붙잡고 싶었지만 나와의 관계보다 더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어서 보내줘야 겠지요. 사육통을 들고 원래의 자리로 향합니다. 이별입니다. 부디 참한 짝궁 만나서 아들,딸 많이 낳고 잘 살길.


만남괴 이별. 헤어짐은 늘 아쉬움입니다. 20여일간 마음조리고 알딸딸하게 해준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연거푸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플랫폼도 떠남을 준비합니다. 오늘은 어디로 떠나야하는 걸까요. 누군가 날 절절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져 마음이 떨려오고 저려올 뿐입니다.


계속해서 나비와의 불편한 동거 시리즈, 04 나는 전생에 애벌레인줄 알았어요 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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