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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방살이

06 담색긴꼬리부전나비 날개달다

by 플랫폼

애벌레와 한방살이를 하게 되다니. 과연 내 불완전한 일상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두드리고 또 두드려도 자꾸만 솟아나는 두더지처럼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들 앞에 난, 늘 괜찮아, 를 외쳐댔고 결론은 아무 문제없어, 로 귀결되고 있었다. 어디서 없던 자신감들이 불끈 솟아났던 것인지 모를일. 처음엔 그져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 일시적 의문들이 쌓이고 쌓여 현재의 일상을 만들어 낸것 뿐이었다고.


어느해 무더운 여름이었다. 농장 풀베기 작업을 하던 중 내 눈에 띈 미명의 애벌레 한마리. 감나무 잎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던 그 애벌레가 녹쓴 내 레이다에 걸려 들었다. 결국, 그 애벌레가 나의 잔잔하고 무미건조하던 중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었으니. 물론 문제가 전혀 없었던건 아니었다. 문제가 문제인지 모르는 나의 과도한 자신감이 더 문제였을 수도.


곤충생리에 대한 허접한 지식도, 심지어는 사육 경험조차도 전혀 없었던 난, 곤충세계 속에 한없이 펼쳐지는 신비스런 의구심 앞에서 난 과연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까. 내 마음을 흔들어 댄 그 첫번째 주인공은 가을뒷노랑밤나방 애벌레들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어땠는지 불과 10여일만에 무난한 날개짓을 해주었다. 그게 병주고 약주고의 시작이 될거라곤 그땐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23년 5월 1일

그때부터 난, 물 잔뜩 먹은 스폰지처럼 마음이 온통 애벌레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본능적으로 내가 할일은 바로 이거로구나, 생각했고 그 애벌레와 나와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비교적 무난해 보였고 오직 탄탄대로만을 걷게 될거라고, 가는길은 온통 행복만이 펼쳐질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증명하기까지 불과 며칠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그게 모두가 아니었다. 세상사가 그렇게 만만한 일만이 아니듯 그건 일방적 오해이자 착각에 불과했다.


사람마다 유전적 특성이 다르듯. 곤충들도 생리현상이 모두 천차만별이라는 걸 그땐 왜 깨닫지 못했던 걸까. 3년여 동거생활을 해오면서 수없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 앞에서 난 한없이 초라할 뿐. 이렇게나 내 자신이 작아질 수 있다니. 어느새 내 정체성에도 금이가고 있었다. 처음에 날 지배하던 자신감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건지. 마음이 이토록 쪼그라 들고있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계속 가, 아니면 말어.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다. 초심은 온데간데 없이.


그렇게 애벌레와의 운명은 조용하고도 조심스레 요동을 쳐대고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가 곤충전시장이 되어버렸던 건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반쪽님의 눈치도 봐주어야할 상황. 덕분에 베란다 청소담당은 바로 나로 정해졌다. 아무리 깨끗하게 치운다 한들 반쪽님의 마음을 만족시킬 순 없었지만 다행인지 어떤지 의외로 호의적으로 변한 그녀. 남편의 호기심에 대해 나름 응원해주고 있는 눈빛이 아른거렸다. 난, 처음으로 옆지님도 천사가 될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23년 5월 3일 용화중

지구별 수많은 사람들 중 곤충 애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심지어는 나조차도 애벌레완 그렇게 친할 순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일단 혐오스런 생김새부터 몸체 마디마디마다 가시들이 돋힌듯한 무시무시한 털들. 뱀처럼 꿈틀대는 몸통. 마치 독이라도 내뿜을 것 같은 자극적인 피부색. 뭐하나 이쁘게 봐줄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아주 작은 변화들이 꿈틀대고 있었으니.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왜 애벌레와 난 운명처럼 엮이게 된 걸까. 사람들이 애벌레를 싫어하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깝다. 기어가는 모습은 꼭 굼벵이를 닮았고. 숲길을 지나가다 잘못하여 쐐기나방 애벌레에 쏘여 피부가 퉁퉁 부은적도 몇 번 있었는데. 정녕 애벌레와의 불완전한 동거생활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걸까. 한방살이를 시작하기 위해선 우선 애벌레에 대한 나의 선입견부터 지워야 했다.


난, 처음 모든 애벌레가 해충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건 사람들이 억지로 끼워맞춘 프레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겨우 얼마전 깨달았다. 인간세상, 특히 도시 가로수, 공원의 나무들을 갉아먹는 애벌레는 미국흰불나방, 매미나방, 깍지벌레, 진딧물 겨우 이런 정도다. 또한 조금 몇 마리 발생했다고 나무나 식물 전체가 고사되는 것도 아닌데 꼭 화악농약을 써서 방제를 해야만 하는것인지 강한 의구심마져 들었다. 단 대발생만 아니라면.

23년 5월 7일 번데기 완성

나의 한방살이 애벌레들은 어느날부터 날 아지트에 자꾸 붙잡아 두었다. 어쩌면 반려애벌레라 칭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상황. 그 이후 1박 2일 이상 아지트를 비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고 애벌레 멍,이란게 도대체 뭔지,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얼마나 힘든것인지도 차츰 알아갔다. 생태탐방은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고 자연의 신비를 관찰한다는 건 한편의 동화처럼 나에게 행운과 길라잡이가 되어 주고 있었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나뭇잎 한장이면 충분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애벌레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배워간다. 만족이란걸 모르며 욕망속에 허우적대는 나의 현주소와 대비된다. 숙명처럼 오직 살아내는 일에만 전념하는 애벌레들에게서 내일이란 그져 사치에 불과 할 뿐. 애벌레의 생태를 관찰하는 키포인트. 1년 내내 관찰이 가능한 건 아니다, 라는 사실부터 먼저 인정해야만 했다. 잘해야 4월부터 10월까지. 나머지는 겨울 월동태 기간이라 긴긴 기다림의 시기.


그런 와중에 요즘 애벌레 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이유는 과도한 농약살포와 도시화에 의한 생태파괴. 지구 온난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듯. 중요한 건 해충방제를 위한 화학농약 살포를 꼭 해야만 하느냐는 것. 농약의 살포는 해충뿐만 아니라 수많은 익충들과 사마귀나 무당벌레같은 천적들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

23년 5월 23일 우화

작설하고, 이번 주인공 담색긴꼬리부전나비 애벌레 이야기를 해보련다. 애벌레와의 인연을 맺은지 어언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던, 23년 5월 1일. 난, 경기도 이천에 조그마한 둥지를 틀었다. 혼자면 외롭고 둘이면 조금 부담스러운 1년짜리 독방생활. 반려 애벌레와의 동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이자 자구책이었다. 딱히 오라는 데는 없었지만 갈데만큼은 많았던 나.


살다보면 어느날 심하게 마음 울렁이는 날이 있듯 어딘가로 무작정 떠나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샘솟는 그날이었다. 아지트가 마음 편할수도 있을 텐데 굳이 시간을 내어 어디론가를 향해 떠난다는 건 아직 나에겐 뜨거운 가슴이 남아 있어서가 아닐지. 오늘은 인근 원통산을 오르기로 했다. 나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당당히 보여주고 싶었다.


두근거리는 마음들을 애써 눌러 앉히며 도착한 들머리. 딱히 다른 목적같은건 애초에 없었다. 어쩌면 떠난다는 핑계로 집나간 자아를 찾어 떠나왔는지도 모를 일. 이처럼 마음 뒤숭숭한 날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멍때리며 걸어주는게 최고다. 마음 내려놓고 그져 걷고만 싶은데도 내 인생의 총지휘자인 전두엽은 그런 틈마져도 허럭치 않는다.


걷다보면 갑자기 어떤 행운과 마주할때도 있는 법. 오늘따라 웬지 친근하게 들려오는 산사의 염불소리 들으며 임도를 향한다. 잠시 관음보살께 두손고이 합장하는것도 잊지 않고. 생전 처음 온길인데 처음엔 낯설었지만 웬지 편하고 친근했다. 어머니품속처럼 포근한 길따라 룰루랄라 걷는다. 제발 한마리만 걸려줘. 라고 이상한 주문까지 외워가며 나무들이 내뿜어대는 산소들을 폐부깊숙이 빨아드린다.


너무나 익숙해서 자연의 고마운 마음마져 전혀 느끼지 못하는 나. 늘 그 익숙함에 취하지만 아직도 그 익숙함의 근원에는 전혀 무감각한 현실을 직시해 본다. 나무들. 공기들. 애벌레들. 모두 오늘의 나를 비추는 작은 거울이다. 점점 마음이 메말라가는 내밀한 이야기를 깨닫지 못했을 뿐. 나의 무대를 유유히 걷는다. 그곳은 나의 영원한 행복발전소. 순간 나타나는 이상징후들. 오리나무엔 오리나무 잎벌레들이 벌써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한바탕 소동이 일고 있었다. 길앞잡이와 나와의 기나긴 줄다리기. 약올리기 전문가답게 숨바꼭질 대가답게 다가설만 하면 멀찌기 달아나 버리기를 여러번. 10여분을 옥신각신하다 겨우 한컷 건졌다.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인다. 얼마나 걸었던 것일까. 갈증이 일어 물한잔 목에 넘겨주며 잠시 먼 들을 바라본다. 가을이 영글어가는 들판. 너무나도 평화로운 풍경이다.


내 마음에도 어느새 숨이란게 들어와 있었다. 아름드리 신갈나무 한그루가 눈에 띈다. 이파리들이 구멍이 송송이 뚫려있어 뒤집어 보았더니 살보시한 흔적들이 여럿 감지된다. 그 사이 갑자기 나타난 꾸물이 한말이. 누굴까. 쐐기나방 애벌레로 치기엔 약 2프로 정도가 부족하다. 데려갈까 말까. 올라가다가 아쉬움에 다시금 되돌아왔다. 그렇게 우연스레 다가온 그녀와의 인연. 카페에 검색해보니 긴꼬리부전나비 종류라 한다.

결국 보쌈하여 모셔왔다. 안가겠다고 갖은 아부를 해대는 그의 아우성들을 애써 무시한채 반강제적로. 새로운 숙소도 마련해주고 싱싱한 신갈나무 이파리도 부지런히 공수해 주었다. 이틀후 번데기가 되기 직전, 용화단계로 접어든 상황. 이젠 먹이공수까지도 필요가 없게 되었고 청소 깨끗히 해주고 물떠놓고 빌기만 하면 되었다.


긴장과 함께 뼈를 깎는듯한 맘조림의 3일이란 시간이 더 지나더니 어느새 번데기가 완성되었다. 이제부터는 긴긴 기다림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끝이 어디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다림이란 마음 비우기이자 애절함이다. 언제쯤 그 모습 보여줄까. 궁금증이 증폭된다. 그랬던 어느날. 내 진심이 통했던지 번데기가 점점 색깔이 변해가고 있었다.


25년 5월 23일. 퇴근해보니 놀랍게도 두꺼운 번데기 껍질을 스스로 뚫고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내 마음속에 조용한 감탄이 일고 있었다. 기다림의 열매는 달고 의미 가득했다. 인연일까. 아니면 그져 그런 우연에불과한 걸까. 그 시작부터 난 진심이었다. 그녀와의 만남은 아주 우연이었지만 난 어찌됐든 그냥 흘러보낼 순 없었다. 어찌됐든 23일이란 긴 기다림의 강물을 건넜으니 난 인연이라고 과감히 밑줄을 긋고 싶다.


만남후의 긴 기다림 끝에 결국 인연이 되었다. 그녀의 매력포인트는 두가닥 긴꼬리. 순간 이별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 창공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웬지 뭉클하다. 이렇게 담색긴꼬리부전나비와의 23일간의 동거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허전함과 함께 성취감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다음은 어떤 애벌레가 무미건조해진 내 마음을 흔들어 줄까.


계속해서 07 나비와의 동거 시리즈 나를 춤추게 하는 것들 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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