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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를 만나려고

08 흑백알락나비

by 플랫폼

봄이 점점 정점으로 치닫는 5월. 한적한 오후 무렵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또다시 무안가에 쫒기듯 아지트를 나선다. 봄볕이 제법 따스해진 봄맞이 공원산책을 준비하는 중. 마치 굶주린 하이에나가 먹이찿아 어슬렁거리듯 점점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 정도면 완전중독이다. 어떤 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봄바랑 살랑살랑 불어오고 내 마음은 이미 꾸물이 곁으로 반쯤 기울고 있었다.


그야말로 봄처녀도 플랫폼도 바람나기 딱좋은 날씨다. 봄이오니 플랫폼믜 마음이 출렁이는건지, 플랫폼의 마음이 흔들리니 봄이 설레발치고 다가오는건지 모를일. 봄햇살은 잠시도 꽃쟁이와 애쟁이의 마음을 가만두지 않는다. 날 흔들어 깨우는 봄의 마법에 이끌려 이내 내 마음도 절반쯤 출렁거리기 시작. 봄을 핑계로 내가 날 흔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머리는 굴리고. 몸은 열씸히 놀려주고.


늦점도 가볍게 옆구리가 반쯤 터져버린 꼬마김밥으로 해결해주고. 이웃 숲은 이미 봄의 기운들이 완연했다. 나목들 제법 푸릇푸릇. 노젓기 시작한지 불과 5분도채 돼지않은 상황. 청띠신선나비 한마리 버선발로 제일 먼저 나를 반겨준다. 이들은 겨울을 어른벌레로 나는 얘들중 하나. 추운 엄동설한을 어찌 버텼을까. 해답은 겨울 기온에 맞게 자신의 온도를 조절한다는 사실. 변온동물의 숙명이다.

나비는 휴면상태로 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린다. 그래. 너희도 자신만의 속도로 삶이란 강을 건너고 있는거로구나. 이에 뒤질새라 경쟁하듯 나타난 길앞잡이 한마리. 내가 오는걸 어찌 알았던 건지 봄바람을 쐬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벌써 먹이사냥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어쨌거나 나와 길앞잡이는 사이좋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숲길을 거닐고 있었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이파리들이 제법 연두색으로 푸릇푸릇 해진 숲. 애기세줄나비, 멧팔랑나비는 바람에 팔랑거리며 오후를 즐기는 중. 점점 더 봄의 심장속을 들어가고 있는데 숲은 조용했고 뭔가에 깊이 취해있었다. 나의 유이한 분신이자 행복발전소이자 스승인 자연의 주인공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봄이왔어요 란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나타난 참나무갈고리나방.


신갈나무위에서 꿈나라 삼매경에 푹 빠져있다가 딱걸렸다. 깨워볼까, 말까 잠시 궁리하다 인증샷 한장 가볍게 남겨주고 서둘러 자리를 피해준다. 부처심의 날은 아직 멀었는데 벌써 나와 수행중인 뱀눈나비 가족들. 부처나비인지 부처사촌나비인지. 5월은 부처님의 계절이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점점 오름이 심해지고 이젠 정상도 머지 않았다. 또 만났네. 길앞잡이 몇 마리가 앞다투어 깎듯이 인사해준다.


자신이 길 가이드를 해주겠노라고. 원래 이렇게 친절하지 않았는데 과잉 친절에 어안이 벙벙했다. 메롱메롱 약을 올리듯 성난 망아지마냥 이리저리 날뛰어 댄다. 쫒아가면 힐끗 쳐다보다가 나잡아보세요 하며 저멀리 도망쳐 버리고. 사실 이넘의 애벌레는 땅속에서 산다. 구멍을 뚫어두고 기다리다가 먹잇감이 지나가면 덥석 물어버리는. 도처에서 곤충들의 소리들이 앞다투어 들려온다. 플랫폼의 마음도 이내 바빠지고.

물들어오니 노저어야 할판. 왕자팔랑나비. 왕거위벌레도 봄마실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는 사이 벌써 하산길. 오늘 소득은 빈손. 하지만 룰루랄라길이다. 오르는 동안 내 빈그릇에 무얼 채웠던걸까. 봄날은 그렇게 포근히 여물어간다. 햇볕도 적당하고 바람도 서늘하게 불어주고. 플랫폼의 마음도 화들짝 피어나는 중. 이곳저곳에서 나타나 날 현혹하는 길앞잡이들.


때마침 연두색으로 완연히 영글어 가고 있는 팽나무 한그루가 내 무덤덤한 더듬이에 포착되었다. 심심하던차에 딱걸린 상황. 쨍한 태양열기삼아 광합성에 열을 올리는 중. 그런데. 이파리들이 하수상하다. 누구에게 살보시라도 당한걸까. 이럴땐 무조건 오감을 집중해야 한다. 프로라도 되는것처럼 온몸에 혼을 불어넣는다. 5분여 이리저리 찾아보다 만난 미모의 꾸물이 한마리. 순간 애쟁이의 목에서 야호가 터져 나온다.


완벽한 캐터필라의 모습. 꿈틀꿈틀 기어가는 모습이 전형적인 불도자처럼 캐터필라를 빼닮았다. 어른벌레 시기에 나타나는 가슴다리 이외에 5쌍의 다리를 합쳐 완벽한 8쌍의 다리. 길없는 길을 마음대로 길을 내며 엄금엄금 기어가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결국 사육통에 넣고 아지트로 모시고 왔다. 아파트 청소까지 깨끗이 해주고. 그러는 중 궁금증 하나가 불쑥 수면위로 솟구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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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알락나비는 일반적으로 애벌레로 겨울을 난다. 쭈굴쭈굴해진 팽나무 낙엽 잔해속에서. 변온동물이라서 가능. 그렇다면 이 꾸물이는 그 월동교체에서 자란 봄형일까. 아니면 세대를 한번 더 거친 여름형일까. 꼭 얼굴 보여줄거지. 그리고 기다림과 긴 인고의 시간이 시작된다. 5월 6일 첫만남 이후 사흘이 지난 5월 9일. 내일 시집갈 포스처럼 깜짝 탈피란 걸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십여일이 지난 5월 17일. 그녀가 어느날 새옷으로 단장해 있었다. 색깔은 그대로지만. 풍기는 광채가 제법 눈부셔졌다. 뭔가 변화의 시점이 분명 온듯한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궁금증은 또 증폭된다. 5월 24일. 오랜 기다림과 힘든 진통끝에 드디어 번데기가 완성되고 이내 또다른 기다림. 기다림은 나의 일상이자 새로운 루틴이란게 되어 있었다. 기다림과의 싸움.


날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인사하는게 루틴. 그리움이 짙어져 목각인형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 5월 31일. 마지막날. 나에게 그렇게 목놓아 기다리든 선물이 다가왔다. 알록달록한 날개색. 초롱한 눈망울. 신기했다. 흰색무늬가 더발달한거 보니 완벽한 봄형이다. 검은 바탕 날개에 알알이 박힌 백색의 점들이 완전 알락색. 나비이름이 그야말로 기가막히다. 한국 나비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석주명 선생이 생각난다.


날개의 생김새, 문양에 딱 어울리는 그 이름. 흑백알락나비. 내 너를 만나려고 이렇게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뛰었던 거겠지. 귀한얼굴 보여주어서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줘서. 인증샷도 곱게 찍어주었다. 그러는 사이. 또 헤어짐의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만남과 이별. 어쩌면 만남은 헤어짐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긴긴 여정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 바다를 건너야 한다는.

한동안 멍하니 그 바다위를 헤매이다 결국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파리위에 곱게 놓아준다. 참나무 이파리위에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만 어딘가로 훨훨 날아갔다. 이처럼 그리움은 늘 예고없이 찾아온다. 준비되지 않았는데 불현듯 찾아오는 이별. 며칠이 지나더니 잔잔한 그리움들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아지트 공가가 웬지 모르게 허전했다.


사랑인지 그리움인지. 그녀의 흔적을 지우는데 몇 날 며칠이 더 걸렸다. 그리고 기도했다. 아무쪼록 잘살아 달라고. 더 행복하게 못해줘서 미안했다고. 그녀가 떠난 빈자리는 나에게 많은걸 남겼다. 피할수 없는 이별. 그녀의 숨결과 온기가 도처에서 느껴진다. 지금쯤 좋은 짝 만나 먼 창공을 활공하며 잘살고 있겠지. 흑백알락나비. 얼굴을 기어코 보고 말겠노라고 동안 마음 조렸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알락나비와의 헤어짐이후 그렇게 한동안 마음이 멍했다. 공허함. 그리고 나에겐 긴 멈춤이란게 있었다. 멈춤뒤에 나타난 어색함. 생소함. 불안함들이 또 엄습했다. 또다시 달릴 수 있게 되어 너무도 다행이다. 계속 이어갈수 있을까. 나비와의 동행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는 걸까. 그리움은 다가갈수록 점점더 멀어지는 그녀의 숨결은 아닌걸까.


계속해서, 기다림은 어떤색일까 편이 발행될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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