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색맵시벌과 호랑나비의 위험한 동거
기. 첫만남은 아주 우연이었다
도시속 아지트에서 애벌레와 동거동락을 한다는건 긴 기다림과 인내심이 수반되는 일이라는걸 처음엔 미쳐 알지 못했다. 지금껏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 인생 늦깎이에 얼떨결에 선택되어진 이 길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건지 갈수록 햇갈리기만 했다. 난 미지의 그 길을 왜 가려는 걸까. 호랑나비 애벌레를 처음 만났던 건 가을의 색이 점점 물들어가는 2020년 10월 06일.
그리고 반려동물로 그녀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때쯤일듯. 난, 그날의 아련했던 기억들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포행하듯 산책 삼매경에 깊이 심취해 있었는데 나를 멈춰 세운건 한그루 황벽나무. 후각을 자극하는 참을 수 없는 진한 향기속에 난 스르륵 빠져들고 있었다. 고산지대나 유서깊은 수목원에나 겨우 있을 법한 나무. 도시 생활권에선 흔치 않는 나무가 갑자기 내 앞을 막아선다.
순간 학창시설 수목학 시간에 배웠던 기억들이 희미하게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데. 호기심에 줄기 수피를 꾹 눌러보았더니 마치 굴피나무 수피처럼 특유의 폭신폭신한 텐션이 느껴진다. 운향과 식물 중 향기라 하면 아마도 최고가 아닐듯. 점점 여물어가는 가을 기운따라 이파리가 점점 연분홍으로 물들어 간다. 그 가지끝에 아슬아슬 매달려있는 꾸물이 한마리가 내 녹슨 레이다에 포착되고. 순간 느껴지는 짜릿함과 스릴.
그렇게 호랑나비와의 인연은 아주 우연히 시작되었다. 드디어 파랑새를 찾아 나선 바램들이 여무는 걸까. 난 결국 이 꾸물이들에게 인생2막을 올인해 보기로 했다. 엉금엉금 지렁이처럼 기어가는 것도 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아마도 3령기 쯤되는 애벌레로 보인다. 애벌레와의 동거의 시작을 알려주는 경종과 선택의 기로에 선 나. 데려올까. 말까. 몇 분간의 숙고끝에 결국 보쌈하듯 곱게 모셔왔다.
과연 난 그녀의 아름다운 날개짓을 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어서 호랑나비 한마리가 창공을 향해 훨훨 나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그런데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있다 했건만. 순간 난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여분의 이파리를 채취하지 못한 것. 초보 곤충애호가의 서툰 날개짓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못하는 편협함.
그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먹이식물은 바닥나고 내 마음은 점점 애가탄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운향과 식물 중 이 꾸물이가 먹을 만한게 뭐가 있을까. 순간 떠오르는 혜안.
그렇치. 산초나무가 떠올랐다. 또다시 산초나무 찾아 삼만리에 돌입한다. 마치 하이에나가 먹이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듯 주변 산을 이잡듯 뒤지기 시작. 산초나무야 어디가 있는거니. 한시간여 정신없이 탐색한 결과 드디어 내앞에 나타난 산초나무 한그루. 구세주이자 메시아였다.
다행히 그녀는 나의 애타는 마음을 알았던건지. 그 흔한 반찬투정 한번없이 잘도 먹어 주었다. 일반적으로 자연계에서 일년에 3번정도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는 호랑나비. 4~5월, 6~7월, 그리고 9~10월. 아마도 이 녀석은 아마도 시기상 3화기 개체일 듯. 3화기 호랑나비는 번데기로 겨울나기를 하기 때문에 추위와의 한번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 먹이식물은 주로 산초나무, 탱자나무, 머귀나무, 황벽나무 등 운향과 식물들이다.
그리고 총 4번의 탈피과정을 반복한다고 알려져 있는 자연계 호랑나비 애벌레. 천적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면 오직 속전속결만이 답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고도의 전략이랄까. 4령 애벌레까지는 새똥을 닮았다가 5령쯤이 돼서야 겨우 나뭇잎과 같은 보호색을 띤 완두콩 모양으로 변하는데. 심심하던차에 살짝 가지를 건드려 보았더니 이내 반응하며 노란뿔을 내밀고 지독한 냄새까지 풍겨댄다.
나야 뭐 저들의 속내를 일찍이 알았기에 피할리 만무하겠지만. 자연계 천적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놀라 36계 줄행랑을 칠 수도 있겠다. 이제 남은건 번데기 과정. 이 과정을 완수해야만 무사히 날개짓이 가능한 상황.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고 긴장도도 높아만 간다. 그러나 확신은 없다. 혹여 생리지연으로 발육이 정지라도 되면 어쩌나. 그후 한동안 잘 먹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식음을 전폐하고 갑자기 애벌레 색상이 변하고 있었다.
그러더니만 어느날 나뭇가지에 바짝 달라붙어 필라테스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명주실을 뽑아 이리저리 좌우로 몸을 단단히 고정시킨다. 신기하다. 이내 몇 분째 난 변태멍에 빠져든다. 이어서 뼈를 깎는듯한 산통과 변태과정이 계속되고. 그리고 긴 하루 진통끝에 드디어 10월 10일 번데기로 완전변태가 완성되었다. 안심했다. 하지만 내 앞에 또다른 긴 기다림이 버티고 있었다. 기다림뒤에 또 기다림. 한고개뒤에 또 한고개.
그렇게 한해가 저물어가고 추운겨울. 난 목마와 숙녀처럼 5개월여의 기다림에 점점 취해가고 있었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고 눈이 펑펑 내리기를 여러날. 그러나 모든건 끝이 있었다. 긴긴 겨울이 지나고 동장군의 위세가 한풀 꺾이는 이듬해 봄인 21년 3월 16일. 마침내 번데기의 색상이 희미하게 변하는가 싶더니만 드디어 아름다운 날개짓. 그렇게 운좋게 첫 라운드는 해피엔딩이었다. 150여일간 대장정. 기다림은 결과는 축복.
승. 우연은 필연을 낳고. 23년 8월 25일
그후 3년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내 나이 지천명의 문턱을 넘은지도 어느덧 다섯해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대던 23년 8월 25일. 퇴근후 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또 산책을 나섰다. 불금인 오늘. 나홀로 외로운 아지트에 갇혀있기가 죽도록 싫어서 였는지도.
애써 늑장까지 부려가며 벌써 땀으로 뒤범벅이된 몸을 이끌고 홀로 오르는 백족산. 땀내음따라 날라드는 날벌레 성화에 심신이 점점 지쳐만간다. 그렇게 얼마쯤 올랐던 걸까. 산초나무 위에 무언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괴생명체 하나가 레이다에 포착된다. 호랑나비 번데기일까. 아니면 산호랑이일까. 갈수록 햇갈린다.
선택은 단 하나. 확인해 보려면 일단 모셔오는걸로. 그렇게 또하나의 인연이 필연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인연일지, 우연일지는 두고봐야. 아리송한 상태로 아지트에 도착하자마자 난 나의 하루의 일과를 모두 방바닥에 사정없이 토해내기 시작했다. 내려 펼쳐 놓치 않으면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을 상황. 그 중엔 일상 이야기도 있었고. 또 호랑나비 번데기도 있었다.
그리고 호랑나비에겐 조그맣고 아담한 아지트를 하나 마련해 주었다. 산실로는 안성마춤으로 보이지만 그녀가 맘에 들어할련지. 또, 또, 또 기다림이다. 어느새 기다림은 내 루틴의 일부로 자리해 있었다. 그렇게 4일정도 지난 어느날 아침. 난 애지중지 보관하던 산실을 멍하니 바라본다. 분명 뭔가가 펄럭이고 있는 뭔가가 보였기에. 희미하지만 연약한 날개짓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우. 두번째 호랑나비 어른벌레였다. 반가웠다. 어디서 배웠던건지 나에게 이쁜 날개짓으로 곱게 인사까지 해준다. 거기다가 모델 역할까지도 제대로 해주는 센스쟁이. 현란한 퍼퍼먼스는 어디서 배웠던걸까. 완벽 그 자체였다.
미역국이라도 끊여주어야 하나. 산후조리는 어떻게 하지? 혹시 산통으로 인해 우울증이라도 걸리진 않겠지? 결국 모셔온 보람이 있었다. 노력의 댓가가 뒤따라왔다. 순간 고마워서 눈물이 날뻔. 그리고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문장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하지만, 만남은 곧 헤어짐을 의미했다. 며칠만에 만나서 또 이별이라니. 그렇게 그녀와의 이별은 예외없이 또 시작되었다. 부디 잘살거라. 이쁜 모습 보여줘서 고맙고. 이쁜 짝궁 꼬옥 만나고. 굿 바이. 창공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애처러웠다. 인정없이 뒤도 한번 안돌아보는 그녀. 이렇게 두번째 호랑나비와도 인연은 필연이 되고 유쾌. 상쾌. 통쾌로 마무리 되었다.
전. 호랑나비 인연으로 다가와, 24년 09월 1일
점점 더 어렵고 난해하다. 곤충들과의 한방살이와 생리활동. 알아야 할것도 준비해야 할것도 많고. 또 배로 부지런을 더 떨어야 하고. 그렇게 또 아슬아슬 그 한해가 지나가던 24년 09월의 첫날. 그날은 하늘도 유난히 곰탕으로 꾸물거리던 일요일 오후였다. 난 가까운 저수지 인근 산책로를 따라 유유히 콧바람까지 불어가면서 걷고 있었다. 혹여 어떤 꾸물이들이 날 반겨주려나 기대반 우려반 해가면서.
그런데 학수고대하던 꾸물이들은 나타나지 않고 대신 신갈나무 가지에 번데기 하나가 봄바람에 하늘하는 흔들거리고 있었다. 긴급 호기심이 발동된다. 생김새는 분명 나비인데. 왜냐하면 고치형태가 피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나비들의 용화습성과 고치형태. 그렇다면, 이름은 과연 누굴까. 신갈나무라면 대왕나비 아니면 황세줄나비 정도일텐데.
마냥 넘겨짚을 수도 없다. 번데기의 형태가 전혀 닮지 않은 상황. 그래서 또 큰 마음먹고 또다시 모셔 오기로 한다. 어느덧 보쌈전문가 반열에 어엿이 올라버린 플랫폼. 기여코 얼굴은 봐야 겠다는 신념 하나로 중무장한다. 기다림은 나에게 일상 이상이 되어버린지 오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겠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나고 점점 장기전의 양상으로 흘러간다. 점점 애가 탄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문안 여쭙고. 퇴근후 또 궁금해서 무슨일 없냐고 안부 전하고. 나비가 나에게 도대체 뭐길래 나를 이렇게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건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나흘이 지난후 퇴근해보니. 오메나. 그녀가 날개를 편채로 몸을 말리중이었다.
날 기다리고 있었던걸까. 이름은 당연 호랑나비. 넘, 반가워 기절하는 줄. 그런데 궁금증 하나. 왜 호랑나비가 신갈나무 가지에 고치를 짓고 매달려 있었냐는 것. 아이러니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기사, 며칠전 산벚나무에서도 호랑나비 애벌레를 한마리 본적 있었으니. 의문들이 고구마 줄기에서 고구마들이 주렁주렁 달려나오듯 증폭돤다. 새로운 발견.
그렇게 머리가 쥐날것 같은 숙제하나만 남겨두고 세번째 나비와의 이별도 그렇게 종말을 고했다.
결. 반전은 시작되고, 25년 5월 23일
난, 어쩌다가 애벌레와 한방에서 지내게 되었던 걸까. 남들은 혐오스럽다며 마구마구 손사레를 쳐대는데 전혀 그렇치가 않는 사유. 심지어는 삶의 위로까지 받는다며 떠벌리고 돌아다닌다. 그러는 사이 신록이 점점 녹색으로 짙어만가는 25년 5월 23일.
산초나무에서 애벌레 한마리를 가까스로 발견. 어느덧 결정장애는 나에게서 머언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결과는 단하나. 또다시 보쌈하여 데려오기로. 애벌레에겐 선택권마져 박탈된 상황이다.
이번엔 초령 애벌레였고 보는 재미까지 꽤 쏠쏠하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통한다. 먹는 모습에서부터 똥싸고 설사하는 것까지 온통 뺴닮았다. 눈치 코치에 바디랭귀지까지 총동원. 제발 반찬투정하지 않고 온전한 나비로 발육해 주길 기원했다. 그렇게 또 몇 날이 더 지나갔다. 그리고 몇 번의 탈피후 5월 30일. 변태의 순간은 살을 찢는듯한 고통이 수반되고 날개짓을 위한 강렬한 몸부림은 여전히 계속된다.
힘을 내야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다. 기다리던 변태의 순간. 6월 3일. 그리고, 어느날 나에게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극적 반전. 갑자기 번데기가 색깔이 미세하게 변하더니만 어미 나비로 탈바꿈하는 순간을 내 두눈으로 보고 말았던 것.
기적이었다. 6월 14일. 화려한 날개짓의 순간을 보다니. 그녀의 생일날 난 순간 탄성을 질르고 말았다. 이어서 오방색 날개를 말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날개를 퍼덕거리며. 그리고 방안 여기저기를 날아 올랐다. 마치 나잡아 봐라를 외치듯. 한동안 그녀와 나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창문. 뽕나무 이파리위로 올려주었더니 한참을 망설이며 앉아있었다.
어느덧 그녀도 헤어짐을 직감한것일까. 알, 애벌레, 번데기, 어른벌레 네번의 완벽한 변태과정을 거쳐야만 나비가 되는 운명을 타고난 그녀. 신비롭고, 경이로운 이 생명탄생의 현상을 보고 있노라니 말문이 막혀버린다. 이 경이로운 생명의 흐름속에서 난 무엇을 배웠던걸까. 언젠가 나만의 날개짓을 하게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라도 하는 걸까. 반전은 이따금씩 나의 삶에 조미료처럼 잔잔히 의미을 부여해주고 있었다.
두색맵시벌과의 위험한 동거, 25년 5월 30일
삶과 죽음이 하나라더니. 어젯밤부터 쭈욱 이어졌던 봄비가 온종일 뿌려대다 마침내 주춤해진 금요일 오후. 이른 퇴근후 어둠이 내리는 아지트에서 사육통을 한동안 째려본다. 호랑나비는 잘 있을까. 번데기를 살펴보는데 무언가 희미한 날개짓들이 보여진다. 분명, 호랑나비는 아닌듯한데. 넌 누구니? 기생벌? 그렇다 포식기생의 선두주자 두색맵시벌.
내게로 온지 20여일만에 호랑나비가 아닌 두색맵시벌로 환생을 한 것. 그래서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했던가 보다. 호랑나비 번데기의 배부위가 옆구리터진 김밥처럼 뻥 뚫려있고 속이 텅빈상태로 심하게 훼손되어있다.
죽음과 탄생의 이중주. 애도와 축복사이.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반강제적으로 모셔온 생명이 호랑나비가 아닌 두색맵시벌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내 아지트로 온건 25년 5월 30일. 그리고 4일이 지난 6월 3일 살을 찢는듯한 고통을 수반하는 진통끝에 흠집하나없이 깨끗한 초록색 번데기가 되었다.
그리고 기다림. 얼추 얼굴 보여줄때가 되었는데. 25년 6월 21일. 육신과 영혼이 점점 지쳐갈 무렵. 그렇게 애타게 기다린 결과가 맵시벌이라니. 호랑나비로 태어났지만 결국 호랑나비의 삶을 완성하지 못하고 오늘 두색맵시벌로 환생한 것. 애매하고 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죽음을 애도해야 할지. 탄생을 축복해야 할지. 당황스럽고 묘하고 애매한 감정상태.
그렇게 순간 나와 그녀는 두 눈이 마주쳤다. 5밀리 남짓한 몸체에 외계인처럼 커다란 겹눈 두개가 번뜩거렸다. 현란한 몸색깔. 구슬을 꿰어 잇듯 몇 마디 길게 이어진 더듬이. 영락없는 곤충의 본 모습이었다.
세상에나. 대자연의 신비. 그녀도 내 의도를 알아차린걸까. 괜시리 뻘춤해졌다. 맵시벌도 호랑나비도 자연계속 다같은 생명일텐데. 내가 너무 과도한 의미부여를 한건 아닌지. 내가 심하게 차별을 한건 아닌지. 내가 너무 과민반응으로 대했던건 아닌지 싶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가고 난 창문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 다섯번째 또 호랑나비와의 이별이 시작된다. 하늘아래 두 생명체. 두색맵시벌과 호랑나비를 내 영혼까지 실어 멀리멀리 날려 보냈다. 호랑나비 애벌레의 삶까지 두배로 함께 잘 살아달라고. 내 나이 어느덧 지천명에서도 몇 해가 훌쩍 지난 시간. 이렇게나 신비 가득한 낙원을 만날 수 있게 되다니. 놀라움뒤에 또 호기심이 더욱 발동된다.
이후로 시간만 나면 들과 산을 쏘다니며 마치 파브로의 곤충기 예행연습을 하듯 돌아 다녔다. 내가 자주 다니던 숲속에는 내 허접한 인생길처럼 늘 두갈래 길이 있었다. 그 중에서 난 될 수 있으면 인적이 드문 희미한 길들을 선택하곤 했다. 그리고 꾸물이들과 인연이 계속되었다. 기다림은 어느새 나의 일상이 되어있엇다. 결국 그것때문에 인생2막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고.
기다림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가다보면 무채색이 될 수도 있는 길. 난, 언제까지 이 기다림의 길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지치지 않을까. 혹시 가다가 돌뿌리에 걸려 포기하거나 무너지진 않을까.
계속해서, 여전히 오늘도 기다리는 중입니다만 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