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저수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단연 봄이다. 거역할 수 없는 유혹이자 설렘과 가슴떨림을 선사해주는 계절. 연휴의 시작을 알리는 남녘에서의 첫날은 딱히 한것도 없이 바람처럼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어렴풋이 마주한 둘째날.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겨우 눈을 뜬후 잠자리에서 최대한 밍기적거리기를 여러번. 움직일까 말까. 떠날까 말까. 떠난다면 또 어디가 좋을까.
간절히 원했던 며칠이란 쉼들이 주어졌건만 딱히 갈만한데가 없다니. 이럴땐 누구나 맨붕에 빠져드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 어디든 떠나보자. 이왕이면 봄소식이 살랑살랑 뿜어져 나올만한 한적한 숲속을 향해서. 잔뜩 찌푸덩한 마음을 다잡기위해 맨붕 직전인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주섬주섬 여장을 꾸리고 찐한 원두커피하나 들고 느즈막히 길을 나선다.
그렇게 설레이는 마음을 부여잡고 한시간여 애마를 달려 도착한 곳은 함평 대동제. 가느다란 봄의 햇살이 내리쬐이는 한적하고도 너른 호수였다. 봄의 느낌들이 무수히 서성일만한.
내가 이곳에 온건 호수가 원해서도 또 자연이 만만해서도 아니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면 이름모를 야생화들의 소식이 그져 궁금해서랄까. 이렇듯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 위해선 화려한 봄꽃놀이 만한게 없다.
꾸물거리는 하늘. 속삭이는 봄바람과 함께 두툼한 패딩을 벗어던지고 무작정 걷는다. 이어폰까지 끼고. 잔잔한 발라드풍 노래가사 읇조리며. 그렇게 몇 십분 무심으로 걸어주었을 뿐인데 굳어있던 심신이 어느덧 봄햇살에 눈녹듯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호수 물결이 봄 바람에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이내 내 마음도 덩달아 춤을 춘다. 따스한 햇살 잔뜩 머금은 호수는 윤슬로 빛났고 바람에 실려온 봄내음이 코끝을 자극했다.
이윽고 들판에 소리없이 움튼 야생화와 마주한 플랫폼. 매년 이맘때만 되면 어김없이 꽃쟁이들의 마음을 쿵쾅쿵쾅 하게 하면서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고 소소한 감동까지 선사해주는 봄의 마술사 야생화들.
솜털 뽀송하고 가냐린 줄기의 노루귀. 그리고 꽃샘추위도 불구하고 바위틈과 낙엽더미속에서 자신의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려 준비중인 변산바람꽃. 그렇게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더디게만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피고지는 봄의 전령들. 혹여나 외로울까봐. 위로라도 될까봐 살며시 다가가서 내 조그만 마음이라도 겨우 건네기로 했다. 자연의 꾸물이들은 기상현상을 제일 먼저 알아챈다. 이렇듯 언제들어도 설레이는 단어. 봄은 기다리는 마음이다. 봄의 마법앞에 꽃쟁이들 마음이 수줍어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렇게 한시간여 숲속을 헤매이다말고 다시 호수 한바뀌를 돌기로 한다.
호수는 아직도 겨울이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일부 녹아든 호수위로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그야말로 바람에 취해버린 호수처럼. 삼십여분을 쉬임없이 걸어주었더니 지친 심신이 또다시 되돌아온 느낌이다. 떠남이란 원래 그런것인가.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은 또 어쩔수없이 그런것인가.
걷는내내 그져 행복했다. 내가 봄을 마중하러 굳이떠나는 이유는 바로 그런것이었다. 내 속도대로. 내 방식대로. 내 가슴이 원하는대로 온전한 내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닐지.
산책이란 또 혼자만의 고요에 맘껏 취해보고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무언가 해야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미래에 대한 조급함과 불안함을 모두 내려놓기에 무엇보다 좋은 시간. 내 인생의 봄은 어드메일까. 회색도시의 봄은 또 언제쯤올까. 비록 눈에 띄지않고 귀에 들려오지 않치만 매년 이맘때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의 소리를 듣는다.
오늘도 난 간절한 마음 녹여가며 또다시 올 봄을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