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그리워서

소백평전 눈꽃산행

by 플랫폼

가끔 무언가가 절절히 그리워질때가 있다. 어떤이는 그걸 그리움이라 칭했고 또 어떤이는 한폭의 곱디고운 산수화가 화석처럼 굳어져서 수묵화로 환생되었을지도 모른다, 라고도 표현했다. 어찌됐든 살면서 그리움이 가끔 인다면 굳이 나쁠것도 없는 일. 그러는 사이 어김없이 찾아온 새벽녘. 습관적으로 창문을 열어 젖힌다. 따스한 방안 공기와 서로 뒤엉켜 서로 대치한 상황.


창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잠령군 행세를 해대는 찬기운의 위세에 눌려 금새 닫아버린다. 생각같아선 모두 빈자루에 꽁꽁 담아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싶었건만 꾹 참기로 했다. 나름 새벽 싱그러움을 기대했었다. 가슴 두근거리고 설레임 가득할거라고도 생각했다. 문득 그 연유마져 궁금해졌는데. 아마도 내심 함박눈을 간절히 기대했건만 눈에 비친 허망함이 내 마음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뜨렸으리라.


요즘따라 연일 잠못이루는 밤이 계속된다. 원인을 찾는것조차도 무모한 현실. 매일 다람쥐 챗바뀌돌듯 고루하고 비루한 일상들. 출근하고 퇴근하고 잠들고 주저앉아 한숨짓고. 주도적으로 사는것인지 살아지는것인지 햇갈리기만 하는 현실이다. 프레임에 갇혀버린 다람쥐의 숙명이라도 닮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바람이 일면 누웠다가 멈추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억새의 숙명을 닮아버린 것일까.


삶이 길이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출렁이길 여러날. 길을 가다 원치 않으면 되돌아올 수도 있다. 바람이 불면 잠시 걸음을 멈출수도. 산을 오르다 돌뿌리에 넘어지면 되돌아 내려올 수도. 또한 삶을 살다가 힘에 부치기라도 할때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나뿐이 아니다. 나라도 흔들린다. 좌가 뭔지, 보수가 뭐고 진보가 뭔지. 모두 상대방을 물어뜯는데만 혈안이 되어있다. 거리 거리마다 요란스런 함성소리만이 요란스럽다.


어느쪽에든 반성은 일도 없고 모두 남탓만 해대는 현수막들로 도배된 현실. 무엇이 문제일까. 언제부터 실타래가 이리도 베베 꼬여버린걸까. 반드시 그 고리터분한 생각의 틀을 깨야만한다. 이런저런 상념들에 골몰하는 사이 순간 귓가를 울려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 알람소리가 방안 공기를 갈랐던 것. 밖의 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그래서 서둘렀다. 떠나기 위해서다. 내면의 그리움을 무언가로 채워줘야만 했기에.


그 그리움은 겨울마다 예외없이 찾아온다. 겨울나무와 살을 에이는 듯한 공기. 그리고 칼바람. 많고 많은것중에서 하필이면 칼바람이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다면.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건 나처럼 떠남중독증에 걸려버린 사람들의 공통적인 숙명이었기에. 새벽 5시가 안된 시간. 새벽 찬바람을 맞이하며 애마를 몰고 급히 중간역으로 향한다. 가까스로 몸을 실은 지하철도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했다.


그렇게 3시간여를 달려 오지중의 오지인 어의곡에 도착한 건 9시 40분. 설레임과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더불어 소싯적 기억들까지 뇌리를 스민다. 이제 완연한 겨울이 왔다. 밤새 천사님이 다녀가기라도 한것인지 산과 숲들이 마치 하얀 붓칠을 해놓은 듯 온통 백설들로 가득하다. 이럴땐 어린왕자의 마음이라도 되어 봐야 하지 않을지. 누가 먼저랄것도없이 뽀송한 등로로 들어선다. 숨한번 내쉬어줄 여유조차도 없이.


뽀드득 뽀드득 밟는 소리 정겹다. 여전히 하늘은 지푸덩이었지만 우리들 마음은 온통 설레임 가득. 밤새 얼마나 눈이 퍼부은건지. 그야말로 요지경 세상 같았다. 내가 삶에 지쳐 오락가락 헤매는 사이 시나브로 알쏭달송한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여름내내 푸르름을 뽐내던 나목들. 얼마전 힘들게 이파리를 벗어던져 버리더니만 금새 새옷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참으로 이채로웠다. 가지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눈꽃들과 상고대들.

이윽고 펼쳐지는 된비알 깔닥고개. 결국 아이젠까지 장착한다. 실오라가 하나 걸치지 않는 완벽한 나목들. 더이상 바람따위에도 흔들리지 않아도 되었었는데. 격세지감이다. 이렇게 황홀하게 변할 수 있다니.


이파리가 떨어져 나간 자리마다 상고대가 달라붙어 주인행세를 해댄다. 나목들은 이리저래 피해자 코스프레.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자세랄까. 마치 망부석처럼. 태생적으로 움직일 수 없이 설계된 나목들의 운명이다. 겨울나무는 그렇게 그 자릴 묵묵히 지켜내고 있었다.


눈이 그친 자리. 우린 점점 고도를 높이며 치고 올라갔다. 칼바람이 두 뺨을 때리는 등로. 점점 숨이 차온다. 낙원을 꿈꾸며 점점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 이 황홀한 느낌. 어찌 표현해야 할까. 조화로웠다. 인간과 나무와 바람과 구름들. 그리고 설경들이 만들어낸 풍경들. 이 조화로움을 어떻게 화폭에 그려낼 수 있을까. 그져 마음 깊은곳에서부터 감동이 잔물결처럼 조용히 일고 있었다.


숲의 정경과 산그리메가 이럴게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니. 혹한의 바람들이 얼굴을 때린데도 우린 개의치 않았다. 걷는다는 건 곧 결국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테니까. 이렇게 산꾼들에게 배낭이 어깨위에 매달려 있다는건 없던 힘이 불끈 솟는다는 의미. 바위들도 억새들도 나목들도 어엿한 새옷으로 갈아입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중이었다. 한낱 화장술에 불과한걸까. 아니면 진정한 조물조의 마법인걸까.


주렁주렁 달려 마치 갯바위를 후려치는 파도끝 은빛포말처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바람따라 산줄기들도 이리저리 출렁거렸다. 마치 현기증이 날 정도. 그렇게 칼바람에 맞서 걷다보니 어느새 이몸은 비로자나불의 비로봉에 닿아 있었다. 부처님은 업보로 얼룩진 중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그 봉우리에선 단 몇 분도 버텨내기 어려웠다. 쉬임없이 불어대는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내는건 더이상 역부족.


칼바람을 피해 점점 내려선다. 순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구상나무가 쩌렁쩌렁 울어대고 있었다. 그 소리가 내 내면 깊은곳까지 스며 들어온다. 그렇게 순백의 옷으로 갈아입은 겨울나무는 여전히 그 자릴 지켜내고 있었다. 우리들은 조물주가 만들어낸 설국열차를 타고 점점 백설의 왕국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솜털처럼 빈티지한 옷들을 켜켜이 껴입고 있는 나목들과 몸을 심하게 뒤집고있는 억새들과 순백의 눈꽃들.

우린 마치 솜사탕을 풀어놓은듯 황홀한 정경에 취해 마치 꿈을 꾸듯 걸을 뿐이었다. 나목들은 바람에 꽃비내리듯 미세하게 출렁거리기를 반복했다. 이내 우리들 마음도 따라 출렁거리고. 천년주목도. 반쯤 고사한 신갈나무도 그리고 몸을 비비꼬는 구상나무도. 산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하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의 포근한 품처럼.


난, 왜 산에 오르는 건지는 이미 정답이 나와 있었다. 산에 오른다는 건 늘 대자연과 숲의 주인공들에 한발짝 다가서는 일. 말없이 산길을 걷노라면 마음이 절로 차분해지고 더더욱 경외심마져 인다. 수없이 올라도 산은 항상 새로움 가득이다. 순백의 결정체들과 산호초를 빼닮은 눈꽃들의 향연들. 추워서 솜털옷들을 몇 겹 껴입었나. 벌거벗은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눈꽃들.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널뛰기 중이다.


산은 너무나도 정직했다. 그리고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자연의 보고이자 약육강식의 서열이 지배하는 곳. 그래서 항상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한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멀리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마루금의 그리메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터질듯 부풀어 오른다. 마치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는데도 마음은 한없이 편안하기만 했다. 걸을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다. 걷는다는것은 살아있다는 증표이니까.


길섶에 보잘것 없어보이는 돌멩이 하나에서부터 잔뜩 웅크리고 있는 억새들. 그리고 나체상태의 나목들에 이르기까지. 살갖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의 그것까지도 깊숙이 느껴보고 싶었다. 자신이 아닌것들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겨버린 현실. 어찌하면 집나간 마음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을까. 오늘 걷는일이 잃어버린 마음의 한쪽을 다시 회복하는 기회이길 빌어봐도 될까. 잔뜩 웅크린 마음과 영혼을 살리는 길이 되어주는 걸까.


나목들이 벗어버린 낙엽들조차 모두 제모습 감춰버린 소백평전. 겨울의 속살이 한없이 펼쳐진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제위치로 되돌리기조차 힘이들고. 잠시 뒤돌아서서 오늘 걸어온길 바라본다. 아스라했다. 마치 행복을 이어주는 길처럼.


순백의 미려한 양탄자를 깔아놓은듯 온종일 부드러운 꽃길만을 걸은듯했다. 누군가 순백의 양탄자위에 이렇게 멋드러진 사랑의 증표를 새겨놓았다. 그 마음 아름다웠다.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쓴 눈물의 러브레터같았다. 나도 행복가득하길 마음하나 얹혔다.


이런날은 정말 첫사랑에게 편지라도 간절히 써보고 싶어진다. 몸은 고달픔인데 정신은 기쁨으로 넘쳐나고 있는 상황. 하산후 주막집에서 두부김치와 막걸리를 주문했다. 산해진미였다. 이 맛 무엇에 견주리까. 눈꽃은 참으로 묘하고 신비한 힘을 가졌나 보다. 무심으로 칼바람 맞으며 걸었을 뿐이었는데. 마음한켠이 허전하고 단단히 얼어 있었는데. 무척이나 위로가 필요한 날이었는데. 누군가의 등에 간절히 기대고 싶었었는데.


미워했던 마음들이 어느새 따신 봄볕에 눈녹듯 녹고 있었다. 이윽고 소싯적 추억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내면의 마음 깊은곳까지 건드린다. 십년묵은 체증이 뻥 뚫린 그런 느낌. 아시려나. 이유가 뭔지는 아직도 아리송. 특별할것 없는 첫눈. 기억을 되듬어보니 내 삶에 특별한 첫눈이란 겨우 기억의 저편일 뿐이었다. 하지만 올해 첫눈은 갈길바쁜 날 잠시 멈춰세우게 했다. 첫눈보러 떠나온길 마음속에 무언가가 꽉꽉 채워진 느낌.


그 근사함들. 온전하게 느끼고 담아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이 세상 가장 참기 힘들고 애절한게 그리움이 아닐지. 그 중에서 첫눈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절절하다. 앞으로도 소백평전 칼바람이 계속 그리움으로 남았으면 싶다.


2025년 12월 14일 소백평전에서 칼바람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