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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Jan 13. 2024

편안해지고 싶었는데 편리해지는 나

23년 11월 1주차 회고

악기 레슨을 받은 적이 있다. 회사가 지쳐서 새로운 취미를 수소문 했던 것이었다. 선생님은 성실했고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나와 잘 맞았다. 참 좋은 사람이라고, 레슨을 관두고도 이어질 좋은 친구같은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어느 순간부터 학부모, 그리고 학생, 그리고 원내 다른 강사들에 대한 뒷담을 하였다. 그 중엔 정말 선생님이 처량해보일 만큼 나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공감하기 어려운 얘기도 섞여 있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수업실에 들어가면, 지친 기색을 솔직히 드러내며 수강생, 학부모, 강사에 대한 불만, 본인의 삶 스트레스, 자영업자의 애환 등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게 모자라 나에게 하소연 하려 DM도 보냈다. 타자치기 어려우면 전화도 걸었다. 진상 학부모와 나눈 대화는 통으로 캡쳐해서 보냈다.


나는 당시 회사가 힘들어서 돌파구로 매주 30분의 힐링을 바랐던 거였다. 그러나 거꾸로 나에겐, 난 매달 급여가 일정하게 나오고, 상식적인 어른들이랑 일하니까 상황이 낫다는 스탠스였다. 음악의 즐거움이 상회했었는데, 감정 배설구가 된 괴로움이 그걸 넘어서고, 압도하게 되었다.


공짜 수업이었으면 감당했을텐데 수업료는 사실 나에겐 꽤 고가였다. 하소연을 끊어버렸을 때 수업에 감돌 냉기를 상상만 해도 곤란했고, 무엇보다 이런 고민들을 들어주면 이 관계가 무탈히 흘러갈거라 생각했다.


어느 수업날, 갑자기 수업실 내 기류가 냉랭해진 걸 느꼈다. 사담이 갑자기 아예 사라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오던 개인 연락도 갑자기 다 끊겼다. 수업 중의 웃음기도 아예 사라졌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냥 묻지 않고 그대로 계약일이 끝나기만 기다렸고, 종료 후 다시 배우러 가지 않았다. 그녀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이번 주에 우연히,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겐 그러지 않았단 걸 알았다. 나한테만 그랬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랑은 그래서 오히려, 아직도 몇 년을 돈독하고 좋은 사이로 지내는 걸 보며. 나에게 모든 창구를 통해 음악교육업에 대한 환멸을 쏟아냈던 것과 상반되게, 참 교육인으로서의 비전과 보람을 인터뷰에서 얘기한 것도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 이후 음악수업 받는 것에 회의감이 너무 커서 쉬다가 최근 새 학원을 다니게 됐다. 음악의 즐거움을 모르는 바 아니고, 무엇보다 한두달 안에 갑자기 실력이 늘려면 사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 선생님도 오늘 본인의 학부모 관련 하소연을 나에게 쏟아냈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연습 계획이 다 틀어지고 있어서, 내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정말 거의 한마디 대꾸를 안 했다. 무응답인 상대에게 언제까지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 책상을 치우고 쓰레기를 버리는 시늉 등 비언어적 사인들도 동원했다.


그녀는 정확히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다. 다른 수강생에게 과연 이런 말을 할까? 아닐 거 같다. 지난 선생님이 떠오르며 마음이 괴로웠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최근 친구가 학원 다니냐며 조언을 요청했다. 이 일들 꾸러미가 너무 큰데, 말로 옮기게 될 듯 해서, 그냥 안 다닌다고 말하고 말아버렸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나는 편안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데 왜 결국은 편리한 사람이 되고, 귀달린 마네킹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파토나는 순서의 상황들은 왜 반복되는 걸까. 왜 남한테 안 그러는 사람들이 나한테만 그러는 걸까. 돌아보고 싶어서 이 글을 썼지만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너무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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