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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영 Aug 15. 2020

잊혀진다는 것에 대하여

처고모상을 당해


고향으로 가는 차에서 아내는 전화로 고모 상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 연세 90세인 처고모는 치매 증상으로 수년간 기장에 있는 요양병원에 위탁되어 지냈셨다. 해운대에 함께 살았던 아들을 여러 해 전에 앞세워, 그 며느리나 시골에 사는 다른 아들들이 치매든 모친을 모시고 한눈팔지 않고 수발을 들기 어려워 요양병원으로 모셨을 것이다. 낮에 아무도 없는 자식들 집에 홀로 계시는 것보다, 삼시세끼 제공, 매일 목욕, 필요시 물리치료와 오락 등 양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요양병원이 처고모님에게 나은 편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외롭고 어색해 하시지만 익숙해지면 병원을 집보다 편안해 하신다. 처고모보다 나이가 몇 살 적은 장모님도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명절 같은 날 집으로 외출을 오실 때에 빨리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다. 장모님보다 더 정정해 보이셨던 처 고모님이 먼저 돌아가셨다.  


작년 가을쯤 요양병원으로 처고모를 뵈러 갔다. 머리칼을 짧게 잘라 밤톨 같은 머리통으로 눈을 반짝이며 사직동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민첩하게 몸을 놀리셨다. 방문자가 누구인지 분간은 못하시더라도 당신이 젊은 시절에 사셨던 사직동 주공아파트의 기억은 끝까지 붙잡고 계셨다. 내가 장가간 집 최재순 여사의 윗 시누이인 처고모는 내가 처가를 갈 때나 처가 친척집을 방문할 때 늘 그곳에 먼저 와 계셨다. 작은 체구에 웃음끼를 담은 부드러운 얼굴로  낯설어하는 나를 반겨 주셨다. 남동생인 장인어른이 유복자를 남기고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을 안타까워하시던 처고모는 늘  처가 식구와 행사를 챙기셨다.    


고향에서 어머니를 뵙고 형제들을 만난 다음 오전에 출발하여 부산 영락공원에 마련된 상가에 갔다. 처형들과 동서들도 시간을 맞춰 도착했다. 처고모를 꼭 닮은 아들 둘이 제주로 상가를 지키고 있었다. 한 명과 며느리는 구면이고 다른 사람들은 안면조차 없다. 처형들은 아버지 대신 자신들을 알뜰히 챙겨주었던 고모 기억에 눈물지으며 옛 얘기를 나누었다. 난 반갑게 맞이하던 처고모의 기억은 있되, 얘기로 이어질 만한 사건이 없었던지라 뒤로 물러나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였다. 화자들의 안타까워하는 표정과 환하게 웃는 처고모의 얼굴을 겹쳐 떠 올랐다.



한 사람이 우리 기억에서 지워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좋은 기억과 우울한 기억들이 혼합된 과거의 역사가 나의 현재를 만든다. 한 사람을 떠내 보낼 때 그에 대한 추억도 함께 지워진다. 잠시 멈춰 그와의 기억을 정리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 기억은 퇴색되고 종래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억의 창고에서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너무도 익숙한 한 곳에서 또 어쩌다 낯선 곳에서 문득 그 사람 기억에 소스라치게 될 것이다. 더러는 스멀스멀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으로 눈물을 짓게 되는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상대방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길 바라는 것일 게다.  상대방이 기억의 창고에서 나를 끄집어내는 순간 나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에. 짧은 순간이나마.


막내의 군 입대로 레드 베타 한 마리를 돌보는 일이 나에게 주어졌다. 한 일 년 정도 잘 살았는데 아내의 안 하던 짓, 갑작스러운 수돗물 갈이로 죽었다. 한 삼일 애도를 표하다가 파란색 블루 베타 한 마리를 샀다. 얼마 후 추가로 한 마리를 더 샀다. 정기적으로 소독 기운이 빠진 수돗물로 갈아주고 헤엄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먹이를 주고 정성을 쏟았다. 그러다가 블루 베타 한 마리가 설날 삼 일 전에 배를 뒤집고 죽어 있었다. 거의 한 달간 먹이를 잘 먹지 않았고 움직임이 적었던 베타를 안타깝게 지켜보았었다. 지난 1년간 잘 살아 준 것이 고마왔다. 이제 수명을 다했다. 생명체에서 사물로 변한 것을 보고 사체를 집어 잔여 음식물 처리기에 넣었다. 그냥 보내주리라. 그의 영혼은 내 기억 창고 속에 담겼으리라. 언젠가 내가 그를 기억 속에서 꺼내 다시 살리는 순간이 있을 것인가? 아마도 적으리라. 왜냐하면 어제 나는 죽은 블루 베타를 대신할 또 다른 베타를 사기 위해 E 마트에서 서성거렸으니까. 대체물이 있다는 것은 현재만을 볼뿐 과거는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기에.


인간을 대체할 수단은 없다. 처고모에 대한 기억은 유일하다. 연한 옥색 한복을 즐겨 입던 처고모의 밝은 얼굴과 환대를 누가 대신했던가? 없다. 그분은 내 기억 창고 속에서 영원히 계실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그분은 살아 내 앞에 설 것이다. 그때 나는 그분으로 인해 행복해질 것이다.  처고모에 대한 기억은 모두 좋은 것들 뿐이었으므로...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간다. 굴곡과 환희가 겹치는 생을 마치고 우린 어떠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인가?

우리는 유한의 인생을 살아간다. 저 산너머 파랑새를 찾아 가지만 정상에 이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어쩌면 살아온 모습은 제각기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은 성공적인 사람은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은 아니었더라도, 각자가 원했던 가치를 이루었다면 그는 성공적인 삶을 영위한 것이다. 달리 어떻게 망자를 평가할 것인가? 누군가 우리가 걸었던 길을 기억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억에 어떠한 모습으로 남길 원하나'라는 질문은 우리 삶의 태도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 반듯하게 또는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창고에서 살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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